(편집자 주: 김응선 목사가 타인종목회에 첫발을 디딘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갈팡질팡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시리즈의 두 번째로, “주보와 예배 준비 그리고 경황없이 집례한 첫 ‘장례 예배’에 관한 이야기”다.)
파송을 받은 후, 영어 말고 들었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첫 예배 준비와 주보였다. 물론 그동안 미국 교회를 출석하면서 배운 것도 있고, 주보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 모아둔 주보도 적지 않았지만, 주보를 혼자 직접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연합감리교회에 예배서(Book of Worship)가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래서 목사 취임 예배도 감리사가 보내준 취임 예배 형식에 전적으로 의지해 드렸었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미국 교회 목회를 앞두고 찾아오는 후배 목사님들에게 예배서(Book of Worship)를 한 권씩 선물했었다.
그런데 예배서 한 권으로 예배 준비가 다 끝났다면, 얼마나 목회하기 좋았을까?
문제는 예배로의 부름(Call to Worship)과 참회의 기도(Prayer of Confession) 등 한국말로 해도 쉽지 않은 일들을 나의 짧은 영어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써야 하는 목회서신과 행정에 필요한 각종 서식 및 추천서 와 각종 편지(위로 편지, 축하 편지 등)는 예배 준비 못지않게 적응하기 쉽지 않은 목회 현장의 과제였다. 지금이야 교회에 사무원이 있어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처음 파송 받을 당시에는 목사가 교회의 유일한 스텝이어서, 주보를 비롯한 모든 사무 행정을 혼자 도맡아서 해야 했기에 그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때는 부족해도 참 많이 부족한 목사였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해가며,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찾은 자료 중 가장 유용했던 것은 3년 단위로 쓸 수 있는 레이본 베일러(Lavon Baylor)의 책 3권이었고1), 그 밖의 다양한 예배 자료와 편지 모음집 등을 통해, 설교 준비보다 오래 걸리던 주보와 행정 및 여러 자질구레한 준비과정에 소모되는 시간은 절약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자료를 잘 구비하는 것도 목회를 잘 준비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그 첫 파송지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막무가내 목회자였던 셈이다.
첫 파송지에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교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기는 치러야 할 텐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도, 전도사 수업을 받았던 한인 교회에서도, 미국 교회의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데다, 미국식 장례 예배를 집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에, 어떻게 장례 예배를 인도해야 할지 그저 암담하기만 했다.
그래서 우선 상을 당한 가족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기도한 후, 장례식장(funeral home)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장례 담당자(funeral director)를 만나, 내가 장례 예배는 처음이라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구했다.
장례 예배 순서는 연합감리교회 찬송가 뒤에 있는 것을 따라 하고, 장지에서 드릴 하관 예배 순서도 혼자 허둥지둥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순서 역시 예배서(Book of Worship)에 있었다. 알면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모르면 이렇게 고생하는 법이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며 만든 나의 장례 예배에는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다. 목회 초기부터 장례 예배 때 꼭 하는 이 순서는 바로 설교 전에 참석한 사람 중 고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받은 사람이 있는지 묻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과 그것을 함께 나누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나는 장례 설교에 철저하게 소천하신 분의 삶을 회고하고, 축하할 만한 내용을 찾아 소개하고 감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배서도 장례식을 Celebration of Life and Death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는가!
그날 그 장례식 날은 엄청나게 무더운 날이었다. 그래서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예배를 드렸는데도, 얼마나 더웠던지 제단의 초가 타서 닳는 것이 아니라, 더위에 녹아 흘러내렸다. 예배를 마친 후, 땀이 범벅이 된 나를 찾아온 고인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냥 하는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이후 우리 교회에는 센추럴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일 년 후에는 사택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었는데, 이 모든 것을 그 가족들이 설치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장례 예배를 한 번도 집례 해 본 적이 없는 목사를 통해 가족들은 그렇게 위로를 받았을까?
그리고 그런 거짓말 같은 기적이 나의 목회 현장에서 일어났을까?
나는 종종 다른 목사님들이 성경구절을 인용하거나 신학자의 말을 사용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참 부럽다.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설교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도 설교 듣기를 옛날에 부모님이 하시던 꾸지람을 듣는 것만큼이나 싫어해, 설교가 조금이라도 지루해지거나 어려워지면 집중을 못하고, 단지 예배 시간에 목사라는 체면 때문에 반듯이 자세하고 앉아있는데, 별로 은혜스럽게 생기지 못한데다 짧은 영어와 굳은 발음으로 그렇게 어렵고 심각한 설교를 하면 과연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설교를 설교처럼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다만 그들의 마음을 성령께서 움직여주시기를 기도하고 바랄 뿐이다. 또한 가능하다면, 사람들도 나의 설교를 설교라 인식하여 근엄하고 거룩한 자세로 듣기보다 가볍고 편하게 들으며 생각하고 동의해주기를 원한다.
장례식이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나는 일상 설교든 장례 설교든 신학적인 언어를 사용한 엄숙하고 교훈적인 설교를 잘할 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장례식 설교는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인과 함께했던 축복된 삶의 순간을 나누며, 그 여정 가운데 경험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래서 내게 장례식은 이 땅에서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땅의 여정을 축하하며,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축복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내가 집례하는 장례식은 물론 눈물이 있지만, 웃음이 더 많이 터진다.
지금은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설교를 마친 후, 고인의 삶을 슬라이드 쇼를 통해 회고하고, 이어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초청한다. 장례식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고인의 아름다운 삶을 기억하고 나누며, 그 나눔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을 경험한다.
3편에 계속…
1) 레이본 베일러(Lavon Baylor)- “Taught by Love - A, Led by Love -B, Gathered by Love – C”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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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