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김응선 목사가 타인종목회에 첫발을 디딘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갈팡질팡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시리즈의 세 번째로,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목사와 교인들 사이를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이 되어준 심방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파송 받은 교회가 위치한 일리노이주 탐슨(Thomson) 이라는 동네는 미시시피 강가에 있는 인구 550명의 전형적인 미 중서부의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수박과 호박 그리고 옥수수가 주 수입원인 이 작은 동네에도 무려 4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하나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였고, 또 하나는 북침례교회(Northern Baptist Church) 그리고 나머지 둘은 연합감리교회였다. 그중 한 교회는 탐슨 연합감리교회(Thomson UMC)였고, 또 다른 한 교회는 탐슨에서 약 6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이제는 몇 가구 남지 않은 아고페이(Argo Fay)라는 작은 마을에 10여 명이 출석하던 아고페이 연합감리교회(Argo Fay UMC)였다.
탐슨 사람들은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당시에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 이주해서 100여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가족들조차 아직도 타지 사람이라고 여기는 동네였다. 그 정도로 동네 주민들은 서로서로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고, 거의 모든 교인이 이리저리 인척 관계로 얽힌 신앙공동체였다. 그래서 “교인 앞에서 절대 교인의 흉을 보지 마라.”라는 것이 전임 목사가 내게 중요하다고 얘기한 첫 번째 충고였다.
그런 마을에 그야말로 낯설고 말설은 외국인 목사가 파송되어 왔으니, 분위기가 어떠했겠는가. 당연히 영적인 지도자나 목회자로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사회든지 삶과 죽음 그리고 위기가 있기 마련이며, 세례나 견신례(confirmation) 또는 결혼과 장례라는 목회자가 영적인 지도자로, 제사장적 기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교인과 마을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은 교인과 목회자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힐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교회에 처음 파송 받고, 교인들을 이해하고 사귀기 위해 나는 교인들을 심방하기 시작했다. 특히, 교회의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양로원과 건강상의 이유로 외출이 불편하여 집에 갇혀 지내는 교인들(shut-ins) 그리고 70세가 넘은 어르신들과 환자를 심방의 우선순위로 삼았다.
또한 주위의 양로원과 병원을 방문하여 새로 파송 받은 연합감리교회 목사라고 나를 소개하고, 필요하면 불러달라는 말과 우리 교회 교인이 입원하면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목사를 알아보든 알아보지 못하는가와 상관없이 나는 한동안 화요일과 목요일을 심방하는 날로 삼아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첫 3개월을 그렇게 보낸 후부터는 매주 화요일을 심방하는 날로 정해 정기적인 심방을 이어갔다.
그런데 목사인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믿어지는가? 물론 나의 영어 듣기 능력이 부족한 탓도 컸지만, 연로한 이들의 틀니가 헐거워졌거나 나이가 들어 발음이 불분명해져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다가 돌아온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심방을 가서 피곤함에 못 이겨 의자에 앉아 잠든 날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에 나올 수 없었던 노인들과 양로원을 열심히 심방하는 목회자를 보고 교인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심방은 자신의 집과 마음에 목회자를 받아들이는 출발 지점이다. 나에겐 교인들과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목사 사이를 이어주고 좁히는 결정적인 도구였다.
그 후로도 나는 새로운 곳을 파송을 받아 갈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교회의 임원들과의 만남이 아닌 교회에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과 양로원 심방이다.
교회의 참석이 어려운 까닭에, 집에만 있는 노인들과 양로원에 있는 분들은 성만찬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그들을 심방할 때 성만찬을 베푸는 것이었다. 운반과 보관이 편리한 휴대용 성만찬 세트를 준비하여, 예배 중 성만찬 집례 중에 축사한 후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성만찬용 포도 주스와 웨하스가 함께 담긴 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심방을 위해 썼다.
1993년도에 내가 사용하던 간단한 휴대용 성만찬 세트는 나름 첨단 목회 도구였는데,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아무튼 심방을 마치고 나면 동네에 전화가 한 바퀴 돈다. 김 목사가 우리 집에 방금 왔는데 너희 집에 곧 갈 것 같다 또는 김 목사가 아직도 우리 집에 안 왔는데 당신 집에서 나간 지가 얼마나 되냐 등등이 그것이다. 집에만 갇혀 있던 그분들의 말벗이 되어주려는 사소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그분들은 진심으로 나의 심방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때가 되면 타지에서 지내던 그분의 자녀들이 나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곤 했다.
모든 심방이 의미 있지만, 특히 병원 심방은 어려우면서도 무척 의미가 있다. 탐슨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강을 건너 타주인 아이오와주의 클린튼으로 가야 했고, 조금 더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100마일 정도 떨어진 아이오와시티의 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

큰 수술을 하는 환자들은 보통 전날 밤에 입원해 다음 날 새벽 5시면 수술 준비를 시작하고, 수술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수술을 앞둔 교인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아예 새벽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한 샤워로 정신을 차린 다음, 운전을 해 병원에 도착하면, 수술을 앞두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환자와 가족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고,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새벽 시간에 나타난 목사에게 질리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은 감동 받은 표정이었다.
내가 수술 후에 심방하기보다는 수술 전에 심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이유는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나 가족이 겪을 마음의 두려움과 초조함을 함께해주려는 의도였다.
긴장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다음, 수술 준비를 마치면 미리 준비한 성경 구절을 환자와 가족들에게 읽어주고, 병원을 심방할 때 항상 가지고 다니던 안수용 기름(Anointing Oil)을 바르며 기도를 드린 후, 수술 경과를 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 심방 때, 환자를 위한 기도 드리기 전에 다양한 성경 구절을 읽어주었는데, 그때 주로 사용했던 성경 구절은 시편 103편 1절-5절과 121편 및 말라기 4장 2절 등이었다. 그리고 환자의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름을 부어 안수하나니 하나님의 치유의 은사가 임할지어다. (In the name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I anoint you with oil. May God’s healing grace be with you!)"라는 기도를 빠지지 않고 꼭 해 주었다.
심방에 성경, 성만찬 그리고 안수용 기름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으면, 난 딱히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설명할 만한 신학적 깊이가 없어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목사의 심방이 교인들에게 위로가 되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나같은 덜렁거리며 천방지축 갈팡질팡 목사의 심방 때문에도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위로를 받고, 더욱 충실한 교인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겼다는 사실이다.
교인들은 목사가 자신들을 사랑한다고 느끼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나처럼 심하게 덜렁거리고, 천방지축 갈팡질팡하는 목사라도, 그리고 여러모로 조금 부족해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을까?
4편에 계속…
시리즈 보기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1: 타인종교회로 첫 파송을 받아 가는 분들에게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2: 축하하고 축복하는 장례 예배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4: 김 목사는 스포츠광(?)이다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5: 연약함을 드러내는 목회(Ministry of Vulnerability)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6: 교인을 불안하게 하는 목사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7: 푸른 눈의 수녀님과 3년 동안 나눈 사랑 이야기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8: 검은 머리 휘날리며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9: 전임 그리고 후임 목사와의 관계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10: 영어도 못 하는 목사가 교회를 부흥시켰다고?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11: 결혼식 주례도 할 줄 모르던 목사?
덜렁이 목사의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12: 물만 말고 술도 좀 쓰라
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