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김응선 목사가 타인종목회에 첫발을 디딘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갈팡질팡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시리즈의 일곱 번째로 “영어 설교에 대한 불안감과 영어 울렁증을 완화시킬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푸른 눈의 수녀님과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의 특집 방송이 나왔다. 나는 그녀를 그저 노래를 참 잘하는 가수로만 알았는데, 그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날 때쯤엔 그녀가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콘서트를 앞두고, 자신의 노래와 밴드가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낼 때까지 연습하고 맞추며 노력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주어진 달란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달란트와 더불어 쉬지 않고 노력한 연습의 결과였다.
그 모습에 난 엄청난 도전을 받았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도 달란트를 가진 사람도 노력을 하는데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난 어쩔 수 없다고 그저 주저앉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부족한 영어지만, 더욱 노력하고, 설교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후로 나에게 설교를 앞두고 하는 습관이자 버릇이 있다.
나는 나의 영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준비를 항상 서두른다. 설교 원고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수요일까지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토요일 오전에 교회 강대상에서 설교를 2-3회 소리를 내어 연습하고, 약간의 수정을 하고, 주일 아침 일찍 교회로 가서 다시 2-3회 연습하고 교정할 것 추가할 것을 추가하면 최종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 습관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 심지어 다른 교회에 초청을 받아서 설교를 해도 그 루틴은 지킨다. 그래야 덜렁거리는 실수를 안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고도 완전히 외우고, 설교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지만, 부족하다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병원에 있던 딸아이가 퇴원해서 집에 왔다.
일리노이주 정부는 행여 아이가 청각 및 언어 장애를 겪거나 지체장애인이 될 경우를 대비해, 수화(sign language) 교육과 물리 치료(Physical Therapy)를 비롯한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를 받도록 했고, 특별히 언어 치료 (Speech Therapy)는 미시시피강 건너 아이오와주의 작은 도시 클린튼에 소재한 카톨릭 프랜시스코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마운트세인트클레어 대학(Mount St. Clare College)의 부설 언어재활센터(Speech and Language Center)에서 이루어졌다.
매주 딸아이를 데리고 센터로 가 치료를 받게 했는데, 하루는 푸른 눈의 한 수녀님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고선 조심스럽게, “혹시 발음교정(Speech Therapy)을 받아볼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비용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녀님은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인해 정상적인 발음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선천적인 질환으로 발음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발음교정치료사(speech pathologist)였다. 아마도 수녀님은 나의 형편없는 발음에 충격을 받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제안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지금도 나의 영어 발음은 별로지만, 당시 나의 영어 발음은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매주 목요일, 딸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나는 이 수녀님과 만나 30분은 세상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머지 30분은 수녀님 앞에서 설교를 읽은 후, 발음과 문법을 교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설교 내용에 대한 건설적인 비평까지 도와주셔서, 영어는 물론이고 신학 공부까지 했다.
첫 달 공부가 끝날 즈음, 나는 수녀님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400불짜리 체크를 만들어 가지고 갔다. 물론 이 액수는 내가 받은 도움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수녀님은 목회자가 무슨 돈이 있냐고 하시며 그마저도 찢어버리시고, 1시간에 15불, 한 달에 60불이면 족하다고 하셨다. 내가 미안한 마음에 안 된다고 하자, 그럼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셨고, 결국 염치없이 수녀님의 말씀대로 수업료를 내고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3년에 걸쳐, 나는 그 수녀님과 만나 대화하고, 가르침과 격려를 받으며, 귀한 시간을 보냈다.
수녀님이 해주신 많은 말씀 가운데, 나는 아직도 수녀님이 수업 마지막 시간에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탐 목사님, 나는 당신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그것은 당신보다 그 사람의 문제일 것입니다. 외국인이 미국 사람처럼 발음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미국 사람도 자신의 영어를 모두 완벽하게 발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어 때문에 기죽지 말고 목회하십시오."
이 말은 곧 한국식으로 말하면, “하산하거라. 나는 더 이상 너를 가르칠 것이 없도다.” 아닌가.
이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본다. 나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수녀님은 왜, 어찌하여, 그 발음을 어찌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씀하신 걸까? 도저히 가망이 안 보였던 걸까? 아마 한계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뉴욕에서 큰아들 내외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찍은 셀피.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세월이 흐르고 흘러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2016년 시카고 근교에 있는 오레곤 연합감리교회로 파송을 받았을 때, 나의 파송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날아온 큰아들은 예배 후 이렇게 나를 놀렸다.
“아빠, 영어가 많이 늘었어요. 하하하~”
나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우리 아들은 내가 로젤 연합감리교회를 섬기던 시절, 고등학생으로 북일리노이 연회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는 운동인 Nothing But Net 홍보대사로 섬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일리노이 연회가 주최한 시카고 지역 신문 방송 인터뷰에 목사들과 함께 우리 아이가 홍보대사 자격으로 참여했는데, 구체적인 데이터를 묻는 말에 줄줄 답을 하는 우리 아이에게 이목이 집중되었고, 결국 대부분의 질문에 아이가 대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한 목사가 묻더란다.
“마틴, 혹시 네 아빠가 토마스 킴 아니니?”
“네, 맞아요.”
집에 온 아들이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나를 닮아 나만큼 천방지축은 아니지만, 영락없이 제 아빠처럼 덜렁거리며 걷는 우리 큰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의 설교 원고를 봐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어디 가서 영어로 설교를 하게 되면, 항상 내 설교를 봐주는데, 내가 원고를 보내면 3-40분이면 교정을 마친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설교를 봐주는 데 이골이 나서 그렇게 빨리 교정을 끝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대화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 이유가 아니었다.
노스웨스턴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뉴욕법학대학원을 마친 우리 큰아들은 “미국에 표준말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또 문법 역시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게다가 아빠는 27살이 되어서야 미국에 왔는데, 어떻게 미국 사람들과 똑같이 발음하고 미국 사람들처럼 그들의 방식대로 글을 쓸 수 있겠어요. 영국식 영어, 남아프리카 영어, 호주 영어, 미국 영어가 모두 다 조금씩 다르고, 그 어느 것도 문법과 발음을 절대화할 수 없는데, 아빠가 한국식 발음을 하고, 설교를 위해 한국식 영어 표현을 사용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틀린 것이 아니라, 아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빠만의 영어인 거죠. 나는 아빠 영어가 나는 자랑스러워요. 미국 사람 중에도 아빠처럼 제대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빠가 쓰는 영어 기사에도 아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표현법이 있는데, 난 그것이 너무 좋아서, 가능하면 원고를 전혀 손대지 않으려 해요. 오직 명백하게 다른(틀린 것이 아니란다.) 표현, 특히 전치사와 같은 것만 최소한으로 고치죠.”라고 덧붙이며, 자신이 내 원고를 교정해주는 것을 하나님과 교회에 바치는 봉사의 일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며칠에 걸쳐 쓴 나의 기사를 3-40분 만에 교정을 마치는 이유였다. 언론학을 전공한 녀석이 그렇게 말하니, 귀가 얇은 나로서는 그 녀석의 말을 믿을 수밖에 하며, 정말로 믿어버리기로 했다.
파란 눈의 수녀님과 아들의 도움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역을 하고 있는 나는 2015년 아들이 변호사가 되었을 때, 아주 뻔뻔스럽게 나의 지분을 강조했다.
“내가 너에게 내 원고를 교정할 기회를 주어고, 그것을 예쁘게 보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주셔서 어린 나이에 네가 변호사가 되었으니, 앞으로 돈 벌면 아빠에게 잘하고, 내가 은퇴하면 잘 모셔라.”
나를 닮은 아들은 오히려 나에게, “아빠 나는 인권변호사라 아빠보다 연봉이 적어요. 그리고 아빠의 은퇴 플랜은 연합감리교회지 제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되돌아보면, 목회 첫 3년 동안 수녀님을 만나 나눈 기막힌 그리스도의 사랑과 수업 그리고 내 아들의 격려와 도움이, 나의 영어 설교에 대한 불안감과 영어 울렁증을 완화시켜주었다. 물론, 그로 인해 내가 영어에 자신만만하다거나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부족했고, 불안했던 나의 영어 설교에 대한 고비가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셀린 디옹처럼 끊임없이 영어를 공부하고, 발음 연습을 하고 있다. 특히 반모음인 W와 Y가 들어있는 war, wood, yield, yeast 등의 발음과 queen, question과 같이 q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비롯해 judge, church와 같은 단어들은 종결 발음에 자신이 없고, live와 leave 그리고 this와 these와 같은 단모음 장모음의 발음은 지금도 부정확하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과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나는 그렇게 틀린 것을 고쳐가며 목회를 했고, 지금은 연합감리교뉴스의 기자로 섬기고 있다.
"비록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파란 눈의 수녀님, 당신의 사랑과 도움은 지금도 감사하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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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