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김응선 목사가 타인종목회에 첫발을 디딘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갈팡질팡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시리즈의 여섯 번째로, “교인들을 섬기는 목회자이면서 동시에 교인들에게 섬김과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다.)
교인들은 나에게 말한다. 내가 교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목사라고… 첨에는 그래? 하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이리저리 교인들의 속을 어지간히도 썩혔고, 난 남의 속을 썩이는 데 커다란 재주가 있어서,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연합감리교뉴스의 한인/아시안 뉴스를 책임진 디렉터로 섬기기 위해 테네시주의 내쉬빌에 살고 있지만, 나의 소속은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 연회다.
북일리노이 연회가 속한 미 중북부는 산을 보기 힘든 평야 지대라 운전하기가 쉬운 곳이다. 하지만 그 평야 지대에도 나름 숨은 골짜기가 있고, 계곡이 있더라는 사실을 나는 목회하는 동안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목회 초년기에는 요즘 흔히 쓰는 GPS나 구굴지도 뿐 아니라 휴대전화도 없던 터라 심방을 가려면 먼저 지도로 길을 숙지하고 가야만 했다. 한 번은 심방을 가야 했던 가정이 그 지역의 상세 도로도 찾을 수 없는 샛길을 통해야 하는 곳이어서, 물어물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급커브 급경사로가 나오면서,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게 시골길을 45마일로 달리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개울을 건너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농장 안에 있었다. 다행히 다른 차가 없었고, 운전하던 나 자신도 아무런 상처를 입진 않았지만, 농장의 울타리 한쪽이 부서지고, 자동차도 멈춰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 시각 집안에 사람이 있어, 경찰과 보험회사 연락을 해주어, 심방을 포기하고 고장 난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는 시골 동네에서는 경찰의 무선 라디오를 수신하며 일하는 사람이 많아, 그 일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동 시간대에 파악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래서 내가 사고 낸 것도 우리 식구들보다 먼저 알고,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교인들은 사택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괜찮은 것을 확인한 교인들은 말을 구해 줄테니 말을 타고 다니라고 놀려댔다.
타던 차는 폐차장으로 보내졌지만, 그 사고는 서곡에 불과했다.
하루는 시카고에서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베이비시터에게 아들을 찾으러 가니, 그냥 병원으로 가란다. 아이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단다. 겁이 덜컥 났다. 당시 둘째를 임신한 지 4개월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가서 보니 아이 엄마가 타던 자동차는 구제할 길이 없이 완전히 망가졌지만, 다행히 그녀는 너무도 태연하고 멀쩡하게 나를 보며 웃었다.
그때도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너무 비싸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내가 회의라도 참여하기 위해 시카고에 나가면 교인들이나 집에서 나에게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두 마음이 어지간히 답답했을 것이다.
탐슨은 시카고에서 150여 마일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한번 시카고에 나간 김에 한국 식료품 가게에 들러서 장도 보고 집에 도착하면, 깜깜한 밤이었다. 교인들은 그날 이후 시카고에서 회의가 있으면, 아내를 데리고 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교인들이 그렇게 애를 태웠던 것은 무리도 아니고, 고마운 일이지만,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언제 한 번은 시카고 회의를 다녀오니 집이 완전히 난리가 난 상태였다. 집안은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불에 탄 냄새가 독하게 코를 찔렀다.
당시 우리 가정은 큰아이가 4살, 둘째 아이가 1살 반 그리고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 엄마가 아이들에게 감자튀김을 만들어주려고 기름을 데우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주스를 자기 머리에 부었고, 그 아이를 씻겨주던 중 막내가 울어 우유를 주고 나니, 둘째와 막내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단다.
씻긴 아이들을 닦아주고 있는데, 부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달려가 보니, 튀김용 기름이 과열되어 기화된 기름에 불이 붙어 있더란다. 그래서 수건에 물을 묻혀 불을 끄려고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이 불은 무섭게 번져갔고, 그 모습에 놀란 아내는 결국 아이 셋을 끌어안고 이웃집으로 달려가 화재 신고를 한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머무르게 된 모텔에 가보니, 아이 엄마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택에 불을 냈으니 남편이 이제 교회에서 쫓겨날까 걱정이 된 아내가 넋을 놓고 울다가 모텔 욕조에 물을 틀어 둔 것을 잊어버리고 모텔 방에도 물이 넘쳐 물난리까지 났다. 그렇게 불난리 물난리로 2주간 모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큰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일어났다.
그날도 역시 내가 시카고에 회의를 위해 다녀온 날이었다. (왜 이리 시카고에 회의가 많으냐고 질문할지 모르겠다. 당시 나는 소수 민족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전달해야 한다는 꽤나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 연회의 재무행정위원회(Conference Board of Finance and Administration)와 타인종위원회(Conference Task Force on Cross Racial/Cultural Ministry) 그리고 락포드 지방의 감리사위원회 등을 마구잡이로 섬겼었다.)
아내가 요리를 하는데 환풍기에 연결된 전선이 부실해, 거기에서 불꽃이 튀고, 이내 환풍기 필터에 꽉 차 있던 기름에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나중에 보니 필터가 마치 벌통에 꿀이 차 있듯 기름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게으른 내가 오븐에 달린 환풍기 필터 하나도 제대로 갈아주지 않아, 불이 나게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덜렁이 목사는 교인들만 고생시킨 것이 아니라, 엉터리 남편 만나 아이 엄마와 아이들에게도 어지간히 고생을 시켰다.
미국에 온 이후, 학교 기숙사와 도시 지역 아파트에서만 생활하다 단독주택인 시골의 사택에서 생활하다 보니, 낯설고 생소한 것이 많았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가옥 구조도 은근히 차이가 있어, 공부가 필요한 데, 당시 나는 미국의 단독주택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었다.
물론, 목회자 사택은 교회가 신경 써주고, 고쳐주는 것도 많지만, 목사 스스로도 정기적으로 갈아주거나 청소해야 하는 가정용품 및 기본적인 시설도 많이 있다.
집 전체의 냉난방을 책임지는 센추럴 에어컨디셔너와 히터, 그리고 빨래 건조기의 필터, 부엌 전기 혹은 가스 오븐 위의 환풍기 필터 등 다양한 필터는 신경 써서 봐야 하는 것들이다. 또 지붕과 물통 위의 거터(gutter) 청소 및 사택과 교회의 전기 배전 시설과 퓨즈 등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알아두면, 일이 있을 때마다 불편하게 교인을 부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이다.
교회 구역회(charge conference)를 앞두고, 교회의 재단이사회(Trustees)와 목회협력위원회(Pastor Parish Relations Committee)는 일 년에 한 번씩 사택을 점검하게 되어 있다. 이 시기를 그냥 생략하거나 지나치지 말고, 꼭 그 절차를 밟는 것이 좋다. 또 목사가 자신이 사는 사택에 대해 점검하고, 잘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불난 이야기로 돌아가면, 다행히 두 번째 불은 큰불이 아니어서, 부엌 찬장과 냉장고만 상한 정도였다. 어찌 되었건 두 번의 불로 계획에도 없던 사택 가전제품은 보험회사 덕분에 완전히 새 것이 되었다. 그러나 사택 가전제품이 오래되었다고 일부러 불을 내지는 말자!
불이 났을 때마다 교인들은 목사 가정이 굶을까 걱정하며 음식을 해서 날라 주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다가도,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너무나도 고마웠던 우리 교인들은 늘 자신들을 불안하게 하는 목사를 믿어주었고, 나는 내가 섬기던 그들에게서 신앙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그곳은 나눔과 섬김의 신앙을 설교하기보다 더 많은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을 당했던(?) 나의 첫 목양지였다.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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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