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김응선 목사가 타인종목회에 첫발을 디딘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갈팡질팡 천방지축 타인종목회 시리즈의 여덟 번째로, “개성 있는 긴 머리로 목회하며 생긴 에피소드”다.)

영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더없이 싼 티 나는 얼굴에 장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던 나는 많은 목사님의 속을 불편하게 해드렸다.
나의 긴 머리를 개성으로 이해해주신 선배 목사님도 더러 계셨지만, 대부분의 목사님은 단정치 못한 젊은 목사의 치기로 받아들여 수난 아닌 수난도 제법 받았었다. 농담 삼아 “예수님을 닮으려는데, 도저히 닮지 못해 머리라도 길러서 닮으려 한다.”라고 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아마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내 한인 목사님들 가운데 가장 머리가 긴, 좀 이상한 장발 목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랬던 내가 완전히 삭발한 적이 있었는데, 사연은 이렇다.
2006년 10월 당시 섬기던 로젤교회에서 어린이 안식주일(Children's Sabbath)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렸다. 예배에서 우리 교회가 펼치는 다양한 어린이 주일학교 사역을 소개하던 중 교회 식구인 한 어린이가 자폐증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소개하게 되었다. 자폐 아동은 소통에 어려움을 보이며, 주변 사람들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 힘들어한다. 가족의 헌신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아이의 관심 범위가 한정된 데다 보고 느끼고 만나는 세계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폐 아동 가족에게 외출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공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교회는 아이가 학교와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더욱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고민 끝에 교회는 자폐 아동 곁에서 더욱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도움을 주는 훈련된 보조견 입양을 지원하는 ‘4 Paws for Ability’ 프로그램을 찾아 소개하고, 보조견 입양을 위한 특별헌금을 걷기로 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마친 나는 특별헌금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내놓겠다. 여러분의 헌금액이 우리 목표를 초과한다면··"
그러자 한 교인이 목사님도 그 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아이는 스포츠머리보다 짧고, 스님보다는 약간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날 우리의 특별헌금은 목표액을 초과했고, 나는 아이가 다니는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기로 약속했다.
약속된 금요일, 아이가 다니는 미장원에 가니, 신문사 기자를 포함해 다른 자폐 아동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일이 아닌 일이 별일이 된 모양이었다. 지나친 의미 부여가 좀 부담스러웠지만, 덜렁이 목사는 그곳에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 약 25년 만이던가? 식구들과 동료 목사들은 한동안 나를 볼 때마다 실실 웃어댔다. 즐겁단다. 막 출감한 조폭이나 무슨 수용소 방장 같고, 수행하는 스님 아니면 겁 없는 군바리 같단다.
1982년 충청남도 홍성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던 나는 그해 12월 22일인가 23일에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예상치 못한 사면으로 출감한 탓에 그 당시 나의 머리는 매우 짧았다. 식구들과 친구들은 그때 그 출소 직후에 찍은 사진의 모습과 똑같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고, 어떤 이유로든 모두 나 때문에 즐겁다고 하니 나도 그냥 즐거웠다.

그 후로는 머리를 다시 길러 검고 긴 머리를 휘날리고 다닐 판이었다. 그런데 그해 시카고 교외의 유력지인 <데일리해럴드(Daily Harold)>가 선정한 2006년 시카고 북서부 교외 지역의 뉴스 메이커 중 하나에 그 일이 뽑혀 빡빡 밀어버린 내 머리 사진이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하게 되었고, 교인들은 이 신물을 크게 복사해 교회 입구에 붙여놓았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르는 일과 낯선 짧은 머리에 즐겁고 기쁜 사람들이 있었으니, 머리카락 길이도 목회의 한 영역이었나보다. 교인들은 내가 심사숙고해 특별한 헌신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사실 난 아이에게 보조견을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이 목회 현장에선 특별한 의미를 발휘할 때가 있는데, 만일 그것이 영광스러운 기념일이 된다면 그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사소한 행위나 말이 교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나 자신의 사역을 되돌아보게 하며, 교회 부흥의 기회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1995년, 탐슨교회는 창립 125주년을 맞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담임 목사가 다른 교회와 함께 이 교회를 섬겨야 했다. 교인들은 신실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저 문을 닫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약 1년에 걸쳐 우리는 교회의 1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준비를 했다. 나는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작고 외진 곳에서 신앙의 울타리가 되어준 교회의 역사를 교인들뿐 아니라 주민들까지도 함께 즐거워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랐다. 비록 교회에 성가대는커녕 피아노 반주자도 없어 그 근처에서 피아노 반주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예배의 반주를 하는 형편이었지만,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노래를 좀 할 줄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 성가대를 구성하고 교회의 긴 역사를 회고하는 뮤지컬 형식의 행사도 준비했다.
우선 홈커밍 주일을 선포하고, 그 마을에서 성장한 후 타지로 나간 예전 교인들을 조사하여 한명 한명 정성스레 초청장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적지 않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 홈커밍 주일 행사에 참여하여,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성원과 후의에 힘입어, 당시 락포드(Rockford) 지방감리사님이었던 레이 로드(Ray Rhoads) 목사님을 모시고, 그간 교인들이 뜻을 모아 친교실을 증축하느라 은행에서 빌렸던 부채(Mortgage-모기지)를 다 갚고, 이를 뜨겁게 축하(Burning of Mortgage)하며, 교회의 역사를 회고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어 우리는 교회와 사택을 오픈하고, 그 당시 북일리노이 연회 주재 감독인 셀던 듀커(R. Sheldon Duecker)감독님의 집례로 성전과 친교실의 헌당 예배도 드렸다.
금요일 저녁에 시작된 탐슨교회의 125주년 행사는 주일까지 2박 3일에 걸쳐 성대한 만찬과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교회와 교인들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우리 교인들의 사기는 당연히 높아졌고,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탐슨 연합감리교회와 아고페이 연합감리교회 두 교회를 담임하던 나는 탐슨교회만 섬기도록 파송 받았다. 그 과정에 당시 레이 로드 감리사님의 사랑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락포드에 있는 주님의교회(Our Master’s UMC, Rockford)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교회에 부임하기 전부터 동성애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심한 갈등을 겪던 교인들은 감사하게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게 되었고, 교회는 창립 40주년 행사와 함께 교회 안팎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1998년 북일리노이 연회의 주재 감독인 찰스 조세프 스프레이그(Charles Joseph Sprague)감독님은 연회의 미션 버스 투어 여정에 우리 교회를 넣었다. 북일리노이 연회에서 이루어지는 타인종 목회를 소개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일로 우리 교회는 40주년 행사도 소개하고, 당시 교회에서 펼쳐진 목회 내용과 선교 내역을 알릴 수 있었다.
당시 "교회는 작지만 아마도 연회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선교에 충실한 교회일 거다. 이 작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돕는 선교지만 20곳이 넘는다. 한때 동성애 문제를 두고 의견이 나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두고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위기를 극복했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40주년 행사는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온 교인들에게 교회 창립의 초심을 다시 기억나게 했을 뿐 아니라, 사역의 중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목사는 별 생각 없이 하는 사역이나 행동에 교인들이 깊이 감동하는 그런 경우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떨 땐 아무리 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고, 방향도 잘 잡히지 않아 목사가 헤맬 때도 있다. 그럴 땐 자신과 섬기는 교회의 사역을 되돌아보고 기념하며, 감사하고 함께 축하(celebration)하며 기쁨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은 신앙공동체가 매일 또 매주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지나칠 때가 참 많다. 감사와 축하 그리고 기념의 기회를 찾아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은 사역의 중요한 순간이 되는 것 같다.
나같이 긴 머리 휘날리며 선배 목사들의 눈총을 사던 덜렁이 목사도 그런 일을 통해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새롭게 했다면, 그렇게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9편에 계속…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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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