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복음 앞에 교회를 고발하다 1

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리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릴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편집자 주: 코로나19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연합감리교뉴스는 전염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성서, 윤리, 역사, 신학, 목회, 상담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하려 한다. 오늘은 시리즈의 번째로 김영봉 목사의 코로나19대한 신학 철학적 관점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후속편인 2부는 목요일 개제할 예정이다.

 

1.

온 세상이 코로나19의 음산한 기운에 짓눌려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봄이 되어 꽃은 만발하고 새들은 좋아서 지절대는데, 그것을 보는 눈도 즐겁지 않고, 듣는 귀도 반갑지 않습니다. 전선이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내가 선 자리가 전선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전사이고 매사가 전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순절을 지냈고,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묵상하는 제 마음의 창에  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공포에 짓눌린 세상의 모습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당하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중첩되어 나타납니다.

2천 년 전 그때, 감람산에 앉아 맞은편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던 예수님이 지금 이 세상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이 거대한 재앙을 자초한 인류의 죄악에 대한 눈물이자,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잃었고 또 잃을 희생자들에 대한 눈물이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눈물입니다.

주님의 눈물을 마음에 품고, 우리도 슬픔에 참여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무참히 훼손하고,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했던, 인류가 저지른 죄의 공범이었음을 고백하고 통회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제 탓입니다. 제 탓입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해 선한 청지기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우리도 인류의 탐욕으로 인한 파괴와 훼손에 눈 질끈 감고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재앙이 시작되었는지 따져 겨를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세상을 위해 중보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중보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무거운 죄악으로 인해 이 재앙을 자초하고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서 주님이 드리셨던 기도를 올립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정말 세상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자신의 죄악에서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재앙이 지난 후에라도 그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감사하고, 창조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도록 변화에 힘쓸 것을 다짐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인류의 생활 방식이 철저하게 달라지지 않는 한 인류는 이보다 더 크고 무서운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 재앙을 속히 종식시키고, 할 수 있는 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일깨우는 일을 교회가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2.

우리는 그동안 인류가 쌓아 거대한 교만을 회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 우리는 전쟁 없는 유토피아를 기대해 왔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머지않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만들어 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없이 부풀어 올라 하나님의 자리까지 침범했습니다. ‘영생’은 과학 문명이 가져다줄 것이며, ‘구원’도 우리 자신의 손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인류의 이 거대한 오만에 들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지난 80년의 태평성대 기간에 인류가 쌓아 올린 그 화려한 문명의 탑은 현재 100nm의 초미세 바이러스로 인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AI 로봇이나 외계 생명체의 침공으로 인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인류의 적이 허블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외계 생명체나 문명의 꽃이라 불리는 AI 로봇이 아닌 슈퍼 렌즈로만 볼 수 있는 초미세 바이러스—이것은 생물 축에도 들지 못하는 반생물(半生物)입니다—였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망연해집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사에서 제공한 코로나19사태 Before & After 사진을 보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관광 명소들은 이제 텅 비어 있습니다. 어떤 곳은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 원숭이 떼가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인류가 쌓아 올리는 업적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아주 똑똑히 보았습니다. 인류는 부풀어 오른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업적을 쌓아 올리지만, 그것은 결국 무참히 무너질 바벨탑과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는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너무도 선명하게 대면시켜주었습니다.

개인의 인생의 의미는 업적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인생의 과제는 “얼마나 많이 이룰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할 것이냐?”에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이 업적을 쌓기 위해 소중한 관계들을 희생하고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소풍과 같아야 할 인생은 살벌한 전투장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인류 전체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인류는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큰 업적을 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 왔습니다. 그 업적이 안전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것이라고 여겼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와 착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 점에서도 교회는 세상을 깨우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교회도 업적을 향한 경쟁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생태계가 기업의 생태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관계를 맺고 사랑하기에 집중하도록 사람들을 일깨워야 했던 교회들 마저 바벨탑 쌓기에 부심했습니다. 그로 인해 건물의 크기와 집회 인원 및 재정 규모를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사역은 업적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 자랑은 규모가 아니라 희생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한 달 넘게 텅 비어 있는 예배당을 보며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봅니다.

상황에서 성령은 교회로 모여 북적대는 것이 부흥이라고 여겼던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역이란 무엇인지, 제자 됨은 무엇인지, 헌신과 희생은 무엇인지 그리고 목회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 보라 하십니다.

문득, 예루살렘 성전의 위용을 지켜보면서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마 24:2)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립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종교적 바벨탑이 그렇게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예언으로 들립니다.

수천수만 명이 모여 예배드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 허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그 나라가 우리 안에 누룩처럼 퍼져 나가는 일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헛된 소비요, 정신 나간 헛발질입니다. (2부계속)

 

김영봉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M.Div.)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MU) 퍼킨스신학대학원(STM)에서 수학한 뒤,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에서 신약성서와 기독교 기원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Ph.D.)받았다.   

  <코로나19교회>시리즈 보기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하시기 바랍니다.

개체교회
사진 출처, 미질병통제관리국 이미지, 그래픽,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대면예배를 준비하는 교회의 미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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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사진출처, 미질병통제관리국 이미지, 그래픽, 김응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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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미질병통제관리국 이미지, 그래픽,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대면예배를 준비하는 교회의 미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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