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교회, 역사에서 배운다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연합감리교뉴스는 전염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성서, 윤리, 역사, 신학, 목회, 상담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하려 한다. 오늘은 그 시리즈의 두 번째로 미드허드슨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담임으로 섬기고 있는 이용연 목사의 코로나19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을 소개한다.

시작하는 말

미드허드슨 한인연합감리교회 이용연 목사님

연합감리교회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된 이후, 교회 안에서의 공적 예배가 중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이나 경제공황 속에서도 성도들은 더 열심히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개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와 2011년 일본의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재해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이 재난에 대처해야 하는지 역사 속의 전염병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흑사병과 중세교회

14세기에 창궐하여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중세의 사회와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대평원의 쥐벼룩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1347년 10월 이탈리아 제노아 선박들이 시칠리아에 도착하면서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남부 독일과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흑사병에 의해 1353년까지 6년 동안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천 5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하였고, 파손된 혈관에서 피부 아래로 피가 흘러나와 생기는 출혈 반점을 ‘하나님의 징표’(God’s Mark)로 여겼다. 

중세 교회는 흑사병을 퇴치하기 위해 많은 미신과 주술을 만들어냈으며, 이와 함께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채찍질 고행단’(Falgellants)이 출현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유발시켰는데, 특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을 내어, 유대인들을 집단 학살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 교회는 사람이 죽으면 연옥에 가서 형벌을 받아야 하며, 천국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이후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하고, 하나님의 형벌을 면하기 위해 면죄부를 사게 되었는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면죄부를 팔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흑사병과 종교개혁자들

종교 개혁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흑사병은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1505년 루터(Luther)는 흑사병으로 동생 하인츠와 바이트를 잃었고, 1527년 비텐베르크에서는 또다시 흑사병이 발병하여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나야 했다.

루터는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소책자를 출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흑사병을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루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만일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야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배고프고 목마를 때 왜 당신은 먹고 마시는가?”

덧붙여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하신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흑사병이 확산될 무렵, 스위스의 쯔빙글리(Zwingli)는 매우 바쁜 일정 가운데 친구들의 권유로 몇 주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들이 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자신의 휴식을 멈추고, 신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고, 말씀으로 위로해주며, 낙심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그러다가 그도 1519년 9월 말 흑사병에 전염되어 10월경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가 기적적으로 11월 중순에 회복되었다.

그는 투병 중에 ‘역병가’(Plague Song) 라는 노래를 지었다. 그의 ‘역병가’는 재난 속에서 고행이 아닌 신실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생생한 간증이다.

질병과 웨슬리

1700년대에 이르러, 흑사병은 유럽 사회에서 거의 사라졌다. 유럽사람들의 약 60% 정도가 항체가 생겨, 자가면역을 통해 흑사병을 이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700년대의 영국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동력과 다양한 기계의 발명으로 급속하게 경제적, 사회적 발전 및 변화를 가져왔다. 즉, 산업혁명의 변혁기를 맞이한 것이다.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도시로 몰려왔고, 그에 따라 술 취함, 도박, 도둑질, 매춘, 자살로 인한 사회 병폐 현상도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3평(약 10m2) 정도 되는 작은 방에 살았고, 화장실이나 부엌은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며 하수도가 없어 하수는 거리로 흘러내렸다. 열악한 근로 환경과 극도로 취약한 위생은 티부스(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을 발병시켰다.

당시 상류층의 평균수명은 35-38세였고,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15-17세였다. 어린이들은 4-5살 때부터 탄광에 들어가 고된 노동을 시작했는데, 하루에 15시간씩 일을 하였다.

웨슬리(Wesley)가 감리교회를 창시한 훌륭한 영성가이며 설교가였음은 다들 알고 있지만, 그가 영국에서 최초로 ‘정전기 치료 기계’(static electricity machine)를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웨슬리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런던 전역에 4대의 ‘정전기 치료 기계’를 제공했다. 사진, 런던의 웨슬리 교회 이사회.웨슬리는 일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런던 전역에 4대의 ‘정전기 치료 기계’를 제공했다. 사진, 런던의 웨슬리 교회 이사회.

웨슬리는 전기를 통해 실명, 청각 장애, 통풍, 나병, 두통, 치통, 복통, 관절염 등과 같은 50여 가지의 질병을 치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치료 기계를 고안하여 제작하였고, 매번 50회, 심지어 수백 번의 작은 전기충격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1747년 그는 쉽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내용을 기록한 <기초 의학(Primitive Physic)>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책은 ‘간단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900가지 치료법과 288개의 통증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최초의 ‘무료 병원’(free clinic)을 개설했고, 냉수욕, 온열 찜찔, 허브차, 따뜻한 레모네이드차를 비롯한 위생 진료 등 자가면역을 통한 질병 치유가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웨슬리는 치료법을 우선순위에 따라 나열했다.

예를 들어, 결핵의 경우에는 최우선 치료법이 '차가운 목욕'이다. 차가운 목욕 치료법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물만 마시고, 흰 빵만 먹도록 권고한다. 그러고 나서, 설탕과 사탕 그리고 우유와 차를 마시게 하는데, 이마저 실패하면 우유와 맥주, 담쟁이 잎, 생강차 등을 마시게 한다.

웨슬리는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 섭취와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 건강한 작업 환경과 더불어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고기보다 야채를 더 많이 섭취하도록 권했다.

웨슬리는 또한 바른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신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주변 사람들과 양질의 사회적 상호 교제를 하라고 권장했다.

웨슬리는 질병이나 전염병을 하나님의 심판이나 진노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미신이나 맹신을 거부하고 의학의 전문성을 인정했다.

코로나19와 현대교회

전염병이나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하는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정죄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한지역에 기독교를 탄압하는 세력이 커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을 드러내시려고 벌을 주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염병이나 재난 등을 어떤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과 같이 재난의 상황에서는 다른 공동체나 다른 인종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전염병과 같은 위기는 그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흑사병은 르네상스와 같은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추구하는 낙관주의를 가져왔고, 중세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개신교회를 탄생시켰으며, 18세기에는 영국 국교회에서 감리교회를 탄생시키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중세 사회와 교회를 바꾸어 놓았듯이, 2020년 코로나19도 교회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성소수자 이슈로 인한 분열의 위기에 놓여 있는 연합감리교회를 어떠한 교회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대면 예배가 취소되고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현 상황이 앞으로 우리 교회의 예배 형태와 교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더 큰 은혜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코로나19와 교회>시리즈 보기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로 하시기 바랍니다.

교단
사진출처, 미질병통제관리국 이미지, 그래픽, 김응선 목사.

코로나19 이후의 교회 2

코로나 이후의 교회가 주일 예배를 위한 건물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살아내기 위한 관계의 중심(hub)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개체교회
사진출처, 미질병통제관리국 이미지, 그래픽, 김응선 목사.

코로나19 이후의 교회 1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재난 구호
미시시피주 오션스프링스와 루이지애나주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지 4주만인 2005년 9월 24일, 허리케인 리타가 텍사스 동부에 상륙하여  엄청난 피해를 힙혔다.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인들은 재난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나요?

재난이 닥쳤을 때, 믿음에 의지하여 답을 얻으려 하지만 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