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니다

편집자 주: 최근 들어, 미국과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특정 정당 참여가 두드러진다. 역사상으로도 그리스도인들이 정당 정치에 이렇게 깊숙이 관여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Evangelical Social Action(ESA)실린 스티브 맷슨의 글을 통해 기독교의 정당 정치 참여에 대해 성찰해보고자 한다. 필자와 ESA허락에 감사를 표한다.

 

만일 기독교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두 정당의 정치적 수사는 그리스도의 핵심적 가르침인 희생적인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  

양측의 종교적인 미사여구와 신앙 단체의 지지 그리고 기독교 유권자들을 확보하려는 열정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당도 기독교 신념에 입장을 두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를 그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정당은 많은 일을 수행하지만, 복음 증거는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제한하는 유혹에 끊임없이 빠지고, 종종 당파적 이데올로기에 동의할 수 있는 지점까지만 예수를 따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세상의 정부나 세속적 정치를 통해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 통해서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열매를 통해 그 모습을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의제(agenda)를 더하여 자신의 신앙을 선택하면, 예수님의 자유는 통제로, 희망은 두려움으로, 사랑은 증오로, 거룩은 우상 숭배로 대치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세상의 사상과 선동 및 예수님과 상관없는 의제와 타협하게 되고, 성경이 사랑하라고 명한 우리의 정치적 적수들을 비롯한 성경에 우리의 이웃이라고 표현된 우리의 적이 아닌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기독교는 자신들이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변질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왜 그렇게 정치화되었는가?

외국인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왜 그렇게 논쟁거리가 되었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왜 그렇게 반대할 만한 일이 되었는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왜 그렇게 시빗거리가 되었는가?

이민자들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는 것이 왜 그렇게 불화를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는가?

정의, 평등, 자선과 같은 것들이 왜 그렇게 싸울 만한 주제가 되었는가?

기독교는 왜 그렇게 반그리스도적이 되어버렸는가?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일’인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핵심 교리가 갑자기 엄청난 갈등과 혼란의 요소가 된다.

 왜 그런가? 정치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전쟁과 논쟁 그리고 뜨거운 이슈에 대해 자기주장을 하다 보면 매우 비논리적으로 맹목적으로 되어 자기주장을 위해 예수의 복음을 희생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려 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세계관에 충성한다.

예수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니었고, 놀랍게도 당대의 정치 제도와 정치적 세력과도 거리를 두었다. 예수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당시 통치 세력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한 죄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었다. 예수 시대의 통치 세력이었던 로마 제국은 가장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자신들이 만든 법과 행정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예수를 사형시켰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위해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했음에도, 어떤 형태의 정치적 명분이나 권력자에게도 충성하지 않고 오직 예수께만 충성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순교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당연하다. 정치 제도는 그리스도인이 지지해야 마땅한 선하고 정의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주장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희생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그런 주장들이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만들어진 사람들을 해쳐서도 절대 안 된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정치가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방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정치인과 정치 제도 또는 근시안적인 동기에 의해 가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정치 정책도 예수의 길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선출된 공무원, 정당, 법 심지어 우리 자신의 이익을 포함한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라는 부르심을 받은 존재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종종 비이성적이고, 많은 경우 반문화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의미다. 하나님, 저희를 도우소서.

글은 <실천을 위한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 for Social Action(ESA)>기고된 것을 저자와 ESA허락을 받아 싣는다. 스티븐 맷슨은 무디성경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세인트폴의 노스웨스턴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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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Korean/Asian News 디렉터이다. 김 목사에게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615-742-5470 또는 [email protected]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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