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회복의 영성

이창선 목사님

편집자 주: 지난 8월 10일 <팬데믹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주제로 한인목회강화협의회에서 주최한 화상회의에서 나눈 이창민 목사의 팬데믹 이후 ‘목회자의 영성’대한 강의 내용을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팬더믹 이후의 ‘목회자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이창민 목사입니다.

너무도 크고 무거운 주제이고, 제가 영성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기에 이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 고민을 하는 저에게 선배 목사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가 이 시대에 고민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그분의 격려에 힘입어 제가 목회 현장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섬기는 LA연합감리교회는 1904년에 설립된 교회입니다. 올해로 116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입니다. 제가 5년 전 이 교회에 부임한 후에 고민하며 기도했던 부분은 바로 요즘 화두가 되는 “생존, Survival”이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인데, 지역적으로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공항 근처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인이 30분 이상 운전해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이 교회를 길게는 50년 이상, 대부분 30년 이상 다니신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부임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LA연합감리교회의 주축은 ‘개띠들이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도 개띠들이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때였습니다. 세상에서는 58년 개띠를 말하는 것인데, 저희 교회는 46년 개띠도 아니고, 34년 개띠들이 교회의 주축으로 얼마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셨습니다. 이제 60대를 넘기신 분들이 30년 동안 애들 취급받으면서 신앙 생활하시다가 이제야 조금 교회의 주축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그런 교회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당시 저의 목회적 영성은 ‘접시 돌리기’ 영성이었습니다.

서커스에서 한 사람이 나와 여러 개의 접시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쪽에서 시작해서 저쪽 끝까지 접시를 돌리다 보면 처음에 돌린 접시가 떨어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쫓아가서 떨어지려는 접시를 돌리고 그러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녀야 합니다. 보는 사람들은 즐겁다고 할지 모르지만, 접시를 돌려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땀 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접시가 떨어져 깨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힘껏 접시를 돌려야 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 이민 교회 목사님들이 그런 모습으로 목회를 하시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수집하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제가 모으는 것은 병원 스티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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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병원에 들어갈 때 받은 스티커를 떼지 않은 채 어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마땅히 버릴 곳도 없고 해서, 가지고 있는 성경책 뒷장에 붙였습니다.

그 후부터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스티커를 성경 뒷면에 붙여나갔습니다.

그렇게 병원 심방에, 장례식에, 선교지 방문에, 상처받은 교우들 위로하는데, 이런저런 회의와 모임을 쫓아다니며 사역하던 목회를 3S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Seamless 빈틈없는 목회

접시를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늘 긴장하면서 목회에 임했습니다. 교인들의 형편을 빈틈없이 살피기 위해서 애쓰며 목회했습니다. 그런 빈틈없는 목회를 하기 위해 저는 늘 긴장하고 살았습니다.

Symbiosis 상생의 목회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이 오기 전부터 이미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감당하는 해외 선교, 지역 선교, 구제 사역 등을 감당하면서 함께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목회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서부지역에서는 2016년부터 파트너스 인 미니스트리라는 사역을 통해 두 교회가 파트너십을 맺고 재정적 지원과 프로그램 교류, 목회자 멘토링을 하면서 상생의 목회를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Sustainability 지속가능한 목회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 이후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단체에서 해 왔습니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단체에서는 지속가능성이야말로 그 단체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Los Angeles 다운타운 인근에는 리틀도쿄라고 불리는 일본 타운이 있습니다. 1880년부터 시작된 일본인의 미주 이민역사 속에서 리틀도쿄는 세대를 잇는 사업체, 교회와 사원, 비영리단체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는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리틀도쿄에도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 커뮤니티는 젠트리피게이션의 피해를 막고 지속가능한 리틀도쿄를 만들고자 커뮤니티의 비전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등장시킨 개념이 “모타이나이, Mottainai”였습니다. "모타이나이"는 "황송하다, 과분하다, 고맙다, 아깝다, 죄스럽다." 등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절약 정신을 말합니다. 지독하게 음식의 양을 줄여 쓰레기를 버리는 이유도, 종이의 뒷면을 메모지로 사용하는 정신도 "모타이나이" 정신입니다.

지난 몇 년간의 제 목회는 '모타이나이'를 통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목회였습니다. 내가 희생하고, 내가 아껴 쓰고, 내가 더 겸손하게 부지런히 사역하면 지속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적어도 팬더믹 이전까지의 세상에서는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시스템이 잘 돌아갈 때 생각할 수 있는 배부른 고민이었습니다. 더 절박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요즘 제가 고민하는 주제는 리질리언스, Resilience라는 단어입니다. “회복 탄력성, 복원력”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원래 상태로 돌아오려는 힘을 뜻합니다. 신앙적인 표현으로는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가 나누는 목회적 영성의 제목을 “지속가능한 회복의 영성, Spirituality in Sustainable Resilience”라고 정했습니다. 

Sustainability는 시스템이 기능적으로 작동할 때 논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리질리언스, Resilience는 재난을 전제로 합니다. 태풍이나, 산불, 지진, 홍수와 같은 재난을 당한 자연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힘이 리질리언스입니다.

팬더믹 이전의 세상은 모든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다른 말로 하면 ‘변하지 말자’입니다. 교회도 지속가능성을 논하면서, 이전에 누리던 혜택, 풍요로움, 안전, 전통, 교권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팬더믹으로 세계적 재난의 때가 되었습니다. 팬더믹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알지 못하는 것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기존의 누리던 안정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가 아니라 리질리언스를 말할 때입니다.

물론, 리질리언스의 전제도 항상성입니다. 원래 상태로 복원되려는 힘입니다.

하지만, 팬더믹 이후의 리질리언스는 회복은 회복이지만, 원래 상태의 회복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리질리언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난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이 재난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1900년에 인간이 사는 땅은 지구 전체의 14%였던 것에 비해 2000년대는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터전을 잃어버린 야생이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온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학자가 팬더믹을 지구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라고 해석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정중하게 이런 꾸지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종하며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팬더믹 이전에도 세상은 여러 문제 속에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불평등이 큰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큰 불평등의 세상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수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몸을 써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제적 취약 계층은 더 큰 위협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학생들의 수업 성취도가 부모의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는 보고가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적 부유층은 과외나 인터넷 접속이 용이하지만, 빈곤층은 인터넷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선진국이 우선적 백신의 혜택을 받으면서 의료적 불평등이 심화될 것입니다.

또, 정치 제도적 측면에서도 바이러스를 틈탄 공공의 이익에 가려진 독재가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팬더믹을 통한 국가적 감시와 간섭이 일어날 수 있음을 9·11 테러 당시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9·11 때 '나는 내 옆에 테러리스트가 있을까 봐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라고 했다면, 지금은 '내 옆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있을까 봐 무서워요, 정부가 확인하도록 권한을 줄래요.'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면서 정부의 독재성을 경고했습니다.

또, 영적/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신성에 가려진 세속주의를 경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주님의 교회에서 은퇴한 이재철 목사는 "목사, 그리고 목사직"이라는 책을 해인사 옆에 자리한 찻집을 방문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해인사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와 찻집을 경영하는 오십 대의 찻집 주인에게 이재철 목사가 물었습니다. "요즈음 스님들은 어떠세요?" 해인사에 오랫동안 살면서 성철 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런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 찻집 주인은 오히려 이 목사에게 반문했습니다. "요즘 중 냄새나는 스님이 어디 있나요?"

이 목사는 그 질문을 독자들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목사들 가운데 목사 냄새가 나는 목사는 대체 몇 명이나 될까?"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이 이전까지는 목사인척하며 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새벽기도, 주일 설교, 성경 공부 인도, 회의 참석, 심방, 평일 대낮에 넥타이 매고 식당에 앉아 있기만 해도 목사 냄새가 펄펄 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팬더믹 이후 멈추어버린 세상에서는 어디서, 어떤 냄새를 풍기는 목사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팬더믹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야 했던 광야와 닮았습니다. 모두가 당하는 고난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앙입니다. 익숙한 것과 이별을 해야 했고, 새로운 일상이라는 낯선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풍요로움 대신 부족함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에게 불어닥친 팬더믹은 이제 시작입니다. 바뀐 것 중에서 어떤 부분은 영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세상을 향해서 유발 하라리는 "오래된 규칙은 산산이 조각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불확실한 미래를 맞는 세상을 Interregnum 인터레그넘, 즉 “귈위의 시간”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왕은 죽었고, 새 왕은 아직 오직 않았다.”는 뜻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모세는 산에 올라갔고 아직 내려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레그넘, 궐위의 시대였습니다. 우리에게 신을 만들어 달라는 백성의 요구를 아론은 못이기는 척 들어주었습니다. 아론의 영성은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지속가능성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선은 불평을 잠재울 수 있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영성은 달랐습니다. 공동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회개의 영성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회복 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 기도는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 지도자의 영성은 재난의 때에 그 중요성이 더 드러나는 법입니다.

사무엘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자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하려고 했던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기 혼자 중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삼상 7:5) "Assemble all Israel at Mizpah and I will intercede with the LORD for you." 사무엘의 지도력은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 7:6)

지속가능한 회복을 위한 목회자의 영성은 회개와 기도의 영성입니다.

팬더믹이 시작되던 초기에 교회 예배당을 지키며 혼자서 새벽 기도를 하신다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면서 그 기도의 영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목회자가 교회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영적 지도자 노릇을 하려고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를 지키는 데 급급해서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지속가능한 회복의 시대를 사는 목회자들은 시대적 변화를 읽으면서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은 팬더믹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미래를 그 누구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멈춤'이라고 쓰인 Stop Sign 앞에 서 있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존재감을 확인하는 목회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손 놓고 하루하루를 불안한 미래로 만들다 보니 벌써 몇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멈춤' 싸인 앞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경험하는 '멈춤'을 롤러코스터가 하강하기 직전 서서히 오르면서 서 있는 '멈춤'이라고 이해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정신없이 분주하게 달려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멈추어 있을 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눈에 펼쳐질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는 목회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세상은 분명 이전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일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세상으로의 변화는 급격히 일어날 것입니다.

앞으로 맞이할 세상은 느슨한 연대로 묶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족, 친척, 친구, 직장 동료, 같은 학교 출신, 같은 고향 사람, 단골이라는 끈끈한 관계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여기에 이민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한 교회의 일원이라는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테두리를 만들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은 그런 끈끈한 연대가 느슨한 연대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친구 목록에서 지워도 상처받지 않는 사람을 친구라고 여기는 느슨한 연대의 소셜네트워크를 하며 삽니다. 클릭 한 번에 바람처럼 왔다가 물건을 놓고 사라지는 배달업체 직원들을 향해 감사도 미안한 마음도 가질 필요 없는 쇼핑 문화는 이미 비대면을 통한 느슨한 관계를 통한 구매 활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대면을 넘어서 비접촉 문화를 일상화시켰습니다. 예배라는 종교적 영역까지 비대면, 비접촉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맞이할 세상은 새로운 플랫폼(Platform) 시대가 될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플랫폼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랫폼은 여러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합니다.

하지만 버스나 기차의 승강장과 같이 단순히 타고 내리기만 편리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가게가 들어서면서 플랫폼이라는 기반을 통해 상권이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은 인터넷 쇼핑의 공룡이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TV와 영화를 보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줌 등은 신앙생활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 있습니다.

팬더믹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이제는 예배당과 온라인이라는 두 가지 플랫폼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곳을 모두 플랫폼으로 삼아야만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플랫폼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축적된 콘텐츠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내용에 충실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에 좋은 기술과 화려한 조명에 좋은 음향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별로라면 사람들은 금세 알아챌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 사회에서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건물주 위에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습니다. '건물주 위에 콘텐주'라고 합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담기는 내용인 콘텐츠를 희화한 말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더라도 복음이라는 콘텐츠가 담긴 온라인 예배를 내보내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적 변화에 창의적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세상이 준비도 없이 도래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말씀의 능력을 발휘하며, 부르짖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교회로 이어질 것입니다.

어쩌면 이제 사람들은 세상속에서 더 느슨한 관계로 살게 될 것이지만 소수의 사람들끼리는 더 신뢰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끈끈한 관계성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전히 생명력을 지닌 채 퍼져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 플랫폼은 온라인이 될 수도 있고, 가상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대상을 중앙에 배치한 예배당 중심, 목회자 중심의 기독교는 아닐 것입니다.

팬더믹은 변화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던 교회를 새로운 변화의 기회로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이 기회에 교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팬더믹으로 인한 첫 번째 변화의 기회는 ‘리셋, Reset입니다.

리셋은 본질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리셋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위기 속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한인 이민 교회가 분주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길에서 멈춰서서 지도를 보고 제대로 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팬더믹 전에 저희 교회의 가장 큰 고민은 점심 식사 친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속회별로 돌아가면서 준비했는데, 교인들이 고령화되면서 점심 준비가 점점 벅차지기 시작했습니다. 떡이나 김밥, 도넛, 베이글과 같이 간단한 점심으로 하자고도 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해도 반찬은 딱 한 가지만 하자고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점심에 대한 부담을 덜고, 지속가능한 친교를 위해서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었지만, 한두 주 지나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3~4년의 연구 끝에 올해 들어서면서 국, 밥, 김치로 캐더링을 시작했습니다. 캐더링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안 되었는데, '국이 짜다, 싱겁다, 그 돈이면 우리가 직접 하겠다. 이번에는 특별한 날이니 다른 곳에서 캐더링을 시키겠다. 직접 만들겠다.' 하면서 변화와 회귀의 줄다리기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팬더믹이 오니, 그런 논의가 무의미해졌습니다. 비본질적인 다툼이 사라졌습니다. 팬더믹이 Reset 버튼을 눌러 버린 것입니다.

팬더믹으로 인한 두 번째 변화의 기회는 ‘리커버, Recover입니다.

교회에 모여 드리는 예배는 분명 회복될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도 어느 정도 회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체질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는 보내는 교회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를 섬기고, 이웃을 돌보는 선교적 책임을 감당하는 교회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팬더믹으로 얻은 세 번째 변화의 기회는 ‘리바운드, Rebound입니다.

땅에 세게 튀긴 공이 높이 올라갑니다. 팬더믹으로 우리가 받은 충격이 컸던 만큼 팬더믹이 지나면서 강한 리바운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쇼핑을 못 했던 사람들이 백화점이 문을 열자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못 다니던 사람들이 여행의 문이 열리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일시적인 리바운드일 뿐입니다. 교회도 분명 그런 리바운드를 대비해야 합니다. 교회의 문이 닫혔던 시기가 지나고, 모든 것이 안전해진 후, 큰 리바운드가 있을 때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던져진 새로운 세상이라는 공은 동그란 축구공이 아닙니다. 길쭉한 럭비공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예상 못 한 곳으로 튀는 공을 잡는 리더와 교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조직도 민첩하게 의사결정을 내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영성도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치밀한 영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팬더믹을 통해 교회가 Reset, Recover, Rebound 되면서 '지속가능한 회복'이 일어날 때,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섬세한 영성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온라인에서는 예전만큼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든 목회자는 설교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설교로 목회에 승부를 보겠다는 열정으로 목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집에서 드리는 온라인 예배는 한국 교회와 전 세계에 있는 설교자를 안방으로 초청할 수도 있습니다. 수준 높은 찬양과 잘 준비된 깔끔한 설교는 교양 넘치는 예배자로 만들어 줍니다. 온라인에서 교인 됨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또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팬더믹 이후의 세상에서는 이민자의 현실을 이해하는 자상한 목회자의 섬세한 영성이 더욱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또한 콘택트와 언택트를 구분하며 성도들의 필요를 채울 섬세한 영성이 목회자에게 요구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일깨울 수 있는 용기 있는 목회자의 영성이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팬더믹 시대에 지속가능한 회복을 위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두 번째 영성은 깊어지는 영성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소망입니다. 영적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생이라는 그릇에 담고 이어갈 수 있는 검증된 단체입니다. 그런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목회자의 깊어지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시대를 앞서서 고민하는 예언자적 말씀이 깊어지고, 복음의 열정이 삶에서 드러나며, 교인들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세상에 신뢰를 주므로 깊어지는 영성이 요구될 것입니다.

"깊은 영성"이 아니라 "깊어지는 영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에는 목회자의 영성이 자라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성숙해지는 변화를 교회와 세상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팬더믹이 시작되면서 매일 묵상글과 기도문, 그리고 기도 제목을 써서 교우들에게 보내고 '전교인 정오 기도회'라는 기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13일부터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2~3장씩 쓰는 글쓰기가 103회째를 맞고 있습니다. 한두 주면 팬더믹이 끝날 줄 알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4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매일 서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고,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는 번민의 연속이지만,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기도의 짐을 지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이 제 개인의 영성 훈련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또, 이 사역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가 고생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저만 혼자 고생할 수 없어서 교인들을 고생시키기로 했습니다. 팬더믹을 겪으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내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프로젝트의 제목도 이렇게 달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 이 제목은 김영봉 목사님의 저서 중 하나인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에서 따 왔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쓰고 있다는 마음으로 사역을 합니다. 모두가 겪는 팬더믹을 지나는 성도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믿음으로, 어떤 각오로 이 위기를 넘기고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지만, 우리 교회의 이민 교회의 '장자 교회'로서의 영성이 깊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회복의 세 번째 영성은 ‘성육신적 영성(Incarnative Spirituality)’ 입니다.

시대적으로 목회자가 정보의 우월적 위치에 선 적이 있었습니다. 문맹률이 높았을 때, 고등 교육의 기회가 흔하지 않았던 시대, 책이 흔하지 않던 시기에는 목회자는 정보의 제공자 역할만으로도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는 좋은 정보를 선별해서 전달해주는 ‘Informative spirituality, 정보전달자의 영성’을 발휘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정보를 잘 해석할 수 있는 ‘Interpretative spirituality, 해석자의 영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또, 미디어를 통해 훌륭한 해석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제 목회자에게는 ’통찰력 있는 영성이, Insightful spirituality’ 요구됩니다. 통찰력은 개인적인 경험과 영성, 성품, 환경을 통해 세상을 꿰뚫어 보는 힘입니다.

팬더믹 전까지는 좋은 정보만 제공해도, 좋은 해석만 해도, 좋은 통찰력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좋은 설교가도 될 수 있고, 영적 지도자로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영성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바로 지속가능한 회복을 위한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영성은 ‘성육신적인 영성 Incarnative spirituality’입니다. 사실 이 영성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전 풀러 신학교 교수로, 선교적 교회 운동을 이끄는 이상훈 박사는 성육신적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1) 더 큰 교회를 모방하려 하지 말라

(2) 의도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이웃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3)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라.

(4)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되 이웃의 필요와 내부적 자원이 만나는 사역을 해라.

(5) 자선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인생살이의 지혜를 기록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임어당(林語堂)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주는 영원하다. 우주가 영원한 이유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The universe is everlasting. The reason the universe is everlasting is that it does not live for Self. Therefore it can long endure.) 교회와 목회자의 지속가능한 회복적 영성은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 빛을 발하는 영성입니다.

팬더믹을 지나는 모든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므로 "오래됨의 이유, 살아남은 이유를 증명하는 교회"로 우뚝 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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