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련한 나의 신학 여정 1

(편집자 주: 연합감리교뉴스는 교단 내 이슈에 대한 다양한 논평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논평은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며, 연합감리교뉴스의 의견이 아닌 필자 개인 의견이며, 연합감리교뉴스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을 담은 글을 환영합니다. 이글은 5부로 구성된 이성호 목사의 동성애에 관련한 신학 여정 시리즈의 1부입니다.)

이성호 목사, 필자 제공.이성호 목사. 사진, 필자 제공.

나는 전통 신앙에 충실한 한국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한국적 영성에 뿌리를 둔 교회 생활을 하고 자랐다. 그래서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산호세에서 산타클라라 한인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할 때는 캘리포니아의 법안 중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정의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입하고, 교인들과 함께 걷고, 교계 신문이나 일반 신문에 왜 동성애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지를 이야기했다. 구약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덕분에 나의 글과 말은 권위가 있었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미국 교회로 파송 받아 미국 회중을 목회하면서 보니 적지 않은 교인들의 손자녀와 자녀가 동성애자였고 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향해 상당히 관대한 신학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성경의 권위라는 입장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인권의 문제, 즉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포괄적인 차별 금지라는 입장에서 접근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입장이므로 내가 섬기는 교회는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Reconciling Congregation(화해사역 회중)’ 교회가 되는 투표했고, 그 결과 화해사역 교회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서울 법대 다닐 때 배운 교훈에 따라 동성애는 성경적이 아니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동성애자를 따돌리고 심지어 폭행하거나 살인하는 것은 범죄라는 확신에 따라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그들을 안수하는 것은 꺼리는 입장이었고, 그들의 결혼식을 주례하는 것은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올 여름 시카고제일연합감리교회 단기 선교팀이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는데 아프리카 목사님들에게 소그룹 인도자 훈련을 시켜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연합감리교회 소그룹 아카데미 디렉터로 섬기면서 목회자들에게 소그룹 인도자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였다. 그런데 선교 현지에 도착하자, 선교사님은 소그룹 인도자 훈련 일정 외에 미션 스쿨 학생들에게 ‘구약 개론’을 80분간 강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도 전체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 160분 강의한 후, 전체 채플에서 설교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학기에 구약 개론 강의를 해보았지만 80분 강의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제 중학생들이니 아주 쉽게 해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강의를 계기로 구약성경을 전체적으로 압축해 보았고, 구약에 나오는 동성애 구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도착한 날부터 강의 직전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저에게 80분 강의 원고가 없습니다. 저에게 꼭 할 말을 주시고 주님이 인도해 주십시오. 강의 준비라고는 지난 35년간 목회하면서 한 설교와 구약 개론을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친 경험뿐입니다.”

기도를 마친 나는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 시작에 앞서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연도는 언제일까요?”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에게 기원전 587년이라고 말한 뒤 강의를 시작했다.

“기원전 587년에 이스라엘은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절대 멸망하지 않을 것 같던 다윗 왕조가 사무엘하 7장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멸망했고, 하나님의 거주지로 여긴 신성한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고 부정한 돼지의 피가 제단에 뿌려지는 수모와 치욕을 겪은 후 모든 유대인 지도자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해가 바로 기원전 587년입니다.”

“여러분 중에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분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쉽게 접하기 힘든 학생들이 겪은 트라우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떻게 지금도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습니까?”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것은 세계적인 구약학자들이 논문과 책으로 쓴 무수한 내용의 요약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격려하면서 말했다.

“여러분이 나눈 신앙적인 반응이 국가적 재난을 당한 이스라엘 민족이 표현한 다양한 반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저술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면 클라인이라는 학자는 바빌론 유수에 대한 유대인 공동체의 다양한 정서적, 신학적, 사회적 반응을 강조합니다. (Exile: A Theological Interpretation by Ralph W. Klein)

첫 번째 반응은 약한 신인 야훼를 버리고 바빌론의 신 마르둑(Marduk, 또는 Bel), 나부(Nabu), 또는 이슈타르(Ishtar 또는 Inanna)를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야훼가 마르둑과의 전쟁에서 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우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과 민족 정체성의 핵심인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깊은 상실감을 표현하며 슬픔과 애도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애가서와 일부 시편(예: 시편 137편) 등에 잃어버린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깊은 애도, 유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애도와 분노, 복수와 탄식이 주를 이루는 성경 본문은 이 반응을 들려줍니다.

세 번째 반응은 신학적 성찰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바빌론 유수는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땅도 성전도 없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를 재해석해야 했습니다. 클라인은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 밖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상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은 이방 땅에서도 그의 백성과 함께하실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해석에 기반해 유배자들은 언약을 새로운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보다 이동성이 있고 개인적인 신앙을 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사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 전도를 통해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신학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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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반응은 회복에 대한 희망과 기대입니다. 이사야(제2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미래에 고국으로의 귀환, 회복된 예루살렘, 심지어 새 언약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유배가 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쇄신과 구속으로 이어질 일시적 경험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고통은 연단의 과정이며 이 과정 이후에 더 위대한 미래가 있을 것을 상상합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고통을 연단으로 이해합니다.

다섯 번째 반응은 적응과 정체성 고수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바빌론 생활에 적응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예루살렘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도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클라인은 이 시기에 회당 모임, 토라에 대한 강조, 식생활법 준수 등 새로운 종교적 관습이 발전하면서 이국땅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생겨났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적응은 디아스포라 환경에서 유대교가 회복력과 적응력을 발휘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들은 바빌론 유수는 자신들의 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데 대한 심판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에 보았던 바리새인들의 유대교로 발전합니다.

마지막 반응은 거부와 문화적 고립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바빌론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다니엘서에서 볼 수 있는데,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빌론의 음식을 먹거나 바빌론의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압박 속에서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귀환한 포로 공동체에서는 이방인과의 결혼을 해체하면서까지 문화적 고립을 고수합니다.”

이렇게 너무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알아듣기 어려워할 것 같아서 나는 쉽게 설명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겪을 때 여러분이 보여준 반응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1. '하나님 미워!' 하면서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반응입니다.
  2. 그냥 매일 우는 것이 두 번째 반응입니다.
  3. '하나님은 내 기도만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도도 듣는구나' 하는 것이 세 번째 반응입니다.
  4. '하나님이 나를 더 강하게 연단시키려고 시험을 주시지만 이길 힘도 주시는구나' 하는 것이 네 번째 반응입니다.
  5. 하나님은 내 죄를 심판하셨지만, 내가 회개하고 순종하면 회복시켜 주실 거라고 믿는 것이 다섯 번째 반응입니다.
  6. 나는 지은 죄가 없어. 인내를 가지고 버티면 결국 이길 거야 하는 것이 여섯 번째 반응입니다.”

성경은 이 다양한 반응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성경 속에 다 포용하였다는 것을 나는 강의하면서 새롭게 확인했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요나서의 요나는 하나님이 이방인을 용서하고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미워하는데 하나님은 회개한 니느웨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는 요나도 포용하신다.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고 시험을 허락하시는데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 그리고 모세 오경은 회개하고 순종하면 회복시켜 주신다는 신명기적 역사관에 입각해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편집한 것이다. 역사서와 예언서도 대부분 신명기적 사관을 입증하는 자료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신명기적 “정통 신학”에 대항하는 욥기는 선한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잠언과 전도서는 일상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며, 아가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더 이상 축복과 저주가 의미 없는, 그래서 순종이나 불순종이 아닌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렇게 정리해서 강의하는 사이에 나는 동성애에 관한 성경의 규정들은 바빌론 유수로 잡혀간 이들이 민족의 존폐라는 위협 속에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만든 규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의 규정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동성애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이라는 관심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을 위해 보존되었다. 즉, 바빌론 유배지에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자녀를 생산하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고,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낳지 않는 모든 행위는 정죄되었다.

심지어는 창세기 38장의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땅에 설정한 것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을 당하는 죄가 되었다. 반면에 자녀를 낳고 지파를 유지하는 행위는 비록 며느리였던 다말이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아도 칭찬받고 이방 모압 여인 룻이 보아스와 낳은 아이도 정통 계보에 올라갔다. 생물학적 자손의 보존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고 동성애는 그것을 위협하는 행위로 정죄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현재의 우리도 그런 생물학적 후손의 결핍으로 민족적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같은 규정도 다른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신학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 글에서 이 문제를 더 깊이 다루어 보려고 한다. (2부에서 계속)

관련 시리즈 기사 보기

동성애에 관련한 나의 신학 여정 2: 기원전 587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동성애에 관련한 나의 신학 여정 3: 예수님의 첫 설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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