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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혹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 (혹은 여기에 있다.)”로 매우 짧고 기억하기도 좋다.
회개하라는 것은 그동안 해온 일을 중단하고 새 일을 하라는 것이요, 그동안 믿어온 것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모든 영역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다스리시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 가정을 다스리시면 내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은 가까이 온 것이거나 현재 이미 임한 것이다. 즉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실천을 하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설교를 여전히 바빌론 유수의 현실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하셨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빌론에 패망한 후 그 지배 민족만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헬라, 로마로 바뀌었을 뿐 신학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나 이방 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다윗 왕조와 성전을 재건하고 독립된 국가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에서는 변한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적용해 보면, 이방 민족에 대한 배타적 생각을 버리고, 다윗 왕조나 성전 재건의 꿈보다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꿈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이미 예레미야는 2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사는 땅과 민족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혼인하면서 땅을 사서 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확인해 주신 것이다. 요나서의 요나는 이방 땅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에 화를 내지만, 하나님은 그들도 긍휼히 여기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예수님은 요나의 체험이 당신의 부활에서 재현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모압 여인 룻은 라헬과 레아 같은 국모의 반열에 오르라는 축복을 받았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룻의 후손으로 태어나신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지파 제도와 지파별 상속 제도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인간 아버지 없이 태어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실 때 여러 가지 방식을 택할 수 있었는데 왜 하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셨을까? 그것은 아버지가 없어야 한 지파에 얽매이지 않고 한 민족에 속하지 않은, 전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생물학적 혈통을 초월하여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은 소속의 의미를 재정의함으로써 당시의 부족주의에 도전했다. 더 이상 사람의 가치가 가문이나 후손을 낳을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믿음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는 정의로운 특성이 되었다.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는 예수님의 제자인 교회 공동체가 인간의 성에 관한 성경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재고하도록 초대한다.
지난번 글에서 밝혔듯 바빌론 유수를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신학적으로 다양한 집단으로 나뉘었다. 다시 상기해 보자면,
-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제사장 그룹
-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예언자 그룹
- 신명기적 역사관을 대체하는 지혜문학 그룹
바빌론 유수라는 격변 속에 탄생한 다양한 입장을 동성애 문제에 적용해 보면,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제사장 학파(1)와 예언자 학파(2) 사이의 조합과 더불어 생물학적 자손(A)과 믿음의 자손(B)의 조합을 고려해서 동성애나 인간의 성 문제에 대해서 다음 네 가지 입장이 나온다.
- 제사장 학파로 생물학적 자손을 강조하는 사람들 (1+A) - 동성애자를 받아들일 수 없음. 정결 예법에 따르면 부정하기도 하거니와 이들은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없음.
- 제사장 학파로 믿음의 자손을 강조하는 사람들 (1+B) - 동성애자를 받아들일 수 없음.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결 예법에 따라 부정함.
- 예언자 학파로 생물학적 자손을 강조하는 사람들 (2+A) - 동성애자를 받아들일 수 없음. 예법상 부정하다는 생각은 없지만 후손을 낳을 가능성이 없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음
- 예언자 학파로 믿음의 자손을 강조하는 사람들 (2+B) - 동성애자를 받아들임. 사회 정의의 입장에서 인권을 지켜주어야 하고, 믿음의 자손만 퍼뜨리면 공동체가 멸종하지 않음.
신명기 학파의 입장이 아닌 지혜문학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동성애자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무한 포용이 가능하다.
즉 동성애자 포용을 반대하는 분은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제사장 학파나 예언자 학파의 입장을 따르거나 예언자 학파 중 생물학적인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고,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분은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분 중에서 예언자 학파지만 믿음의 대를 잇는 것이 생물학적인 대를 잇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거나, 아예 지혜문학적 입장에서 신앙은 율법에 대한 순종 불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다.
성경에는 이 모든 입장을 대변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이 여러 입장 중에서 어떤 입장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가르쳐주실까?
예수님이 지지하신 해석 공동체는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그룹 중에서는 예언자적 그룹이고, 그중 믿음의 후손을 중시하는 예레미야 계열의 공동체(2+5)나 지혜문학 그룹(3번)이다. 이들은 생물학적 후손보다는 믿음의 후손을 강조하면서 더 이상 유대인의 혈통이냐 아니냐보다는 믿음의 후손이냐 아니냐를 중시하고, 믿음의 내용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주안점을 둔다.
예수님께서는 다윗 왕조 재건 대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만왕의 왕으로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고, 이방인 백부장의 딸을 고치셨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 대신에 자신이 부활하여 예수님의 몸 된 공동체를 재건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시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다.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 재건보다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비전, 즉 혈통을 초월하고 믿음과 사랑에 기초한 공동체의 문을 여는 비전을 제시하셨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되던 문둥병자를 만지시고, 형벌을 받은 것으로 여긴 앉은뱅이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것으로 쫓겨난 이들의 정신적인 회복을 허락하시며, 세리와 창녀들을 식탁으로 초대해서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으신다.
이런 예수님은 동성애자를 친구라고 부르고 교회에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니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는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는 구약 성경의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제사장 그룹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예언자 그룹이라도 생물학적 혈통을 중시하는 문화와 전통을 가진 그룹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그룹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라고 불린 정통 유대인 그룹이다.
약간 다른 현실 참여적인 사두개인이나 열혈당도 다윗 왕조 회복이나 성전 재건이라는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그룹들이 보여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잘못된 하나님 이해에서 비롯된 열심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통적인 유대인 그룹이라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면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을 불러 회심시키고 사도 바울로 부르셔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사도로 만드셨다.
그러고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당신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 성령을 보낼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다. 이 성령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주도적 역할을 하신다.
다음 글에서는 이 성령께서 어떻게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오셨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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