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니 사랑이더라

 김정호 목사가 설교 중 십자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김정호 목사.    

창33:1-12

오늘 본문은 야곱이라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대하드라마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20년 전 야곱이 에서에게 했던 못된 일을 생각하면, 둘 중 하나는 죽으면서 끝나야 하는데, 예상과 달리 서로 끌어안고 야곱은 형님 얼굴을 보니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좋아하고, 에서는 동생에게 살아 돌아와 주어 고맙다며 끌어안고 우는 뜻밖의 해피앤딩입니다.

오늘은 1945년 8월 15일, 우리 조국이 일본의 식민치하에서 해방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인 오늘 25년 전을 생각합니다.

저는1995년 8월 15일, 해방 50주년 되던 그해가 정말 우리 조국이 평화통일을 이루는 ‘희년’이라 굳게 믿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교회들과 해외 동포교회들 그리고 하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당시 북한의 봉수교회가 연합해 민족이 하나 되는 희년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정말 희년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 시카고 지역 감리교 통일위원회가 실무역활을 했고, 북미주 기독교희년협의회와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주 시민일반종교단체가 총망라된 해방 50주년 대축제협의회가 결성되어,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해외 동포들이 평양에 모여 대대적인 행사도 치렀습니다.

1995년 희년을 위해 1994년도에는 백두산 나무로 십자가 3만 개 만들기를 했고, 희년에 일어날 모든 예배와 대회를 위해 북쪽 백두산 나무와 남쪽 한라산 나무를 가로 세로로 십자가를 만드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조지 오글 목사님과 이승만 목사님 그리고 함성국 목사님 등 감리교와 장로교 구분 없이 북한에 다녀오신 목사님들은 십자가 한 박스씩을 가져오셔서 남한 교회협의회에 15,000개를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때는 돈이나 생색, 네 것 내 것 구별이 없는 정말 새로운 민족해방통일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느끼며 하나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교단의 이기주의도 없었고, 종교 간의 차이도 없었으며, 통일운동 내부의 좌·우파의 충돌도 없이 그냥 우리 민족 해방통일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카이로스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확신했었습니다. 종말론적 신앙과 마찬가지로 해방 50주년 ‘희년’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었었지요.

바로 25년 전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고 말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각자 자기것들 지켜내느라 바쁘게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헛고생한 걸까? 하나님은 꿈쩍도 하지 않으시는데 괜히 우리들이 확신한다, 믿는다, 난리를 쳤던 것인가? 과연 우리는 뭘 했던 걸가?

저는 개인적으로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희년의 증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데다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을 비롯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했지요. 그래서 다 그만두고 목회만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했고, 미국 시민으로서 살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내 이름 가장 쉽게 부를 수 있을 것 찾아 영어 이름 제임스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목회만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당시 시카고에 아주 진보적인 새 감독이 오게 되고 그분이 나를 인정해 주어서 시카고에서 당시 제일 큰 교회의 파송을 이야기했는데, 감리사회의에서 내가 너무 진보적이라는 의견이 나오니까 그다음으로 큰 교회 목사를 그리로 보내고 나를 시카고 감리교 가운데 두 번째로 크다는 교회로 파송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난리가 나서 강단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하고 마이크도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시카고에서 추방당하듯 떠나 애틀란타로 가서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참 서글프더군요. 정말 어려워지는 목회 현실에서 오직 혼자 견뎌내야 하는 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그만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당신이 미국에서 민주운동한다 통일운동한다 그러고 다녔지만 정말 감옥에 들어가기를 했어, 고문을 당해보기를 했어. 이 정도 어려움을 겪는 건 그저 감사할 일이다. 희생한 것 하나도 없었는데,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시카고 목회를 포기하고 애틀란타로 가서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새로운 목회 인생 살겠다고 결단하고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인생을 돌이켜 보니 그렇게 작은 부분이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어려움과 아픔의 몫이 있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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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청년 때 고생 많이 했지만, 중년에 이르러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공의 꼭대기에 이르면서 자식들이 속을 썩이고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벧엘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벧엘은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올라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을 본 그 땅입니다. 그전까지는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그 환상을 보고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벧엘의 약속을 맺은 그 땅 말입니다.

결국 야곱은 식구들 다 데리고 형님 에서를 만나러 갔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서 에서를 만날 때 피해를 줄이고 자신의 생명 건질 계획을 짰습니다.

그런데 모든 식구를 다 강 건너보내고 홀로 얍복강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하며 엉덩이 뼈가 부러졌는데도 악착같이 씨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만 싸우자 하시고, 앞으로 그의 이름을 악착같이 성공에 집착하는 야곱 말고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인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 하신 것입니다. 새 역사를 위한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새 이름을 받은 야곱은 형이랑 만납니다.

그런데 형이 자기를 만나면 죽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형이 자기를 끌어안고 통곡하며 우니까 형을 보니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합니다. 중년에 세상적으로 성공한 줄 알았는데 자기 인생 성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자 결단하고 과거 죄악의 역사를 해결하려고 형을 만난 것인데 형은 자기를 미워하지 않고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괜히 두려워한 것이지요. 만나면 되는데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야곱을 중심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과연 에서는 어떻게 살아왔었고, 에서가 야곱을 생각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왜 에서가 이리도 마음 약하게 야곱을 환영해야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항상 야곱이 주인공이라고 여겼는데 이 장면에서 보면 에서가 주인공입니다. 에서는 정말 어떻게 살아왔고, 야곱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구약성경에서 창세기 33장 이외에 에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이 에서를 말해주는 최고의 말씀이 됩니다. 오늘 본문이 없었으면 에서는 정말 미련 곰탱이로 영원히 기록될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에서는 완전 인간승리, 명예회복의 반전을 보여줍니다.

4절에 보면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 맟추고 서로 우니라”했습니다. 영어로 보면 “But Esau ran to meet Jacob and embraced him; he threw his arms around his neck and kissed him. And they wept.” 아주 격렬하게 반가워하고 통곡하며 운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유대 랍비들은 이 본문을 통해 에서가 리더의 자격을 갖추었고, 큰마음을 가진 진짜 장자의 성품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정말 형 에서의 지도력이 감동적입니다. 남쪽이건 북쪽이건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지도자가 과거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원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큰마음을 지니길 기대해 봅니다.

12절에서 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이것은 "내 땅으로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즉 용서하고 환영한다는 것이며 이제는 같이 살자는 뜻입니다. 20년간 야곱의 마음 한구석을 그토록 짓누르고 괴롭혔던 원수 같았던 형이 자기와 함께 살자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동생 야곱을 죽이려던 에서의 분노가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다 보니 과거도 잊히고 노여움도 다 식어버린 것일까요?

에서가 장정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이하러 왔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결국 야곱과 한판 붙으려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야곱이 머리를 써서 줄줄이 앞서 보낸 선물 때문에 에서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재물을 나누려는 야곱의 마음은 잘한 것이지만 진정 화해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핵심일까요?

청년 시절에는 자기 자신만 귀한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생각했지만, 장년이 되니까 인생에 있어 자신의 것 챙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 이삭이 세상을 떠났고, 에서와 야곱 형제가 아버지를 함께 장사지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맺힌 한을 풀었고 자식의 도리로서 둘이 같이 아버지를 장사 지냈습니다.

얼마 전 김진양 목사님이 WCC에서 8·15 맞이 묵상집을 만든다고 한반도 지정학적 정세에 대해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짧은 글을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한반도 지정학적 뭐 그런 것은 못 쓰고 그냥 내 개인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에서와 야곱이 만난 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아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는 16살 때 혼자 남쪽으로 내려와 평생 북녘 부모·형제를 그리워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아버지의 가족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제가 평양에서 열렸을 때 세계기독학생연맹을 통해 북한을 가려는 시카고 청년들의 부모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못 가게 막아달라고 하는데 청년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결국 제가 같이 가야 한다고 부모들이 강요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가족 찾기 신청을 했는데 북한 땅을 떠나기 전날 갑자기 해외동포위원회 사람들이 나를 강서에 있는 협동농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가족을 찾았다는 겁니다. 내가 협동농장에 도착하니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담 너머로 나를 구경합니다.

한참 있으니 공원 안으로 어느 할머니가 오토바이 뒤에 타고 들어 옵니다. 내 고모님이라는 것입니다. 워낙 상황적으로도 그렇고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온 당신의 조카라고 설명하고 내 아버지가 당신 막냇동생이라고 하고… 그 할머니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긴장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만 계셨습니다. 그리고 속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놈들이 나를 속이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그 할머니가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는데 옆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같으셨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와 같은 얼굴을 가진 분이 세상에 또 계시는구나.’하자 가슴이 떨렸습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데 내가 먼저 믿음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니까 그 할머니도 조금씩 가족의 지난 이야기를 하시게 되고, 고모님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1994년도에는 백두산 십자가 만들려고 평양에 들어가 협의를 하고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다른 가족을 찾았다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에 나를 자동차에 태우고 이번에는 황해도 사리원으로 달립니다. 사리원 여관에 도착하니 내 사촌 형이라는 분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고 그분도 나를 모른 채 인사를 하는데 그분이 사진 한 장을 내놓습니다.

갑자기 미국에서 사촌 동생이 왔다는데 알 길이 없으니 혹시나 해서 가지고 나왔다고 하면서 내 아버지 일기 맨 앞장에 붙어있던 할아버지의 사진과 같은 사진을 꺼냅니다. 세상에 저는 그 사진을 나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황해도 백천에 살고 있다는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형님이 할아버지 산소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나에게 돌아가신 아버지께 아들로서 도리를 했다는 감사가 솟구쳤습니다. 아버지 소원이 부모님 산소라도 찾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평양 선교리에서 목회하시다가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감옥에 들어가셔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월남하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입니다.

헤어지는데 형님이 사촌 동생이 미국에서 온다는데 뭔가 주고 싶어서 가지고 나왔다고 하면서 농사지은 것이라고 도라지를 주었습니다. 미국 가서 먹으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1989년에 조카 만난다고 평양에 가셨는데 강서 협동농장에 도착해 보니 벌써 떠났다고 하시면서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라고요. 알고 보니 그 고모님이 막내 고모셔서 아버지를 가장 잘 아셨고, 만나 뵌 고모님은 큰 고모님이셔서 나이 차가 많아 일찍 출가하셔서 6·25 터지고 아버지가 월남한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형님의 어머니가 내 아버지를 가장 아끼던 막내 누나였는데 나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겁니다. 

제가 개인 경험을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에서와 야곱의 만남은 우리 집의 이야기이자 수백만 이산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김응선 목사님이 연합감리교뉴스이창순 목사님의 대동강 건너신 간증을 올려주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글을 쓰시면 우셨을 생각을 하면서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창순 목사님이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들으니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습니다. 남한 땅에 홀로 16살 어린 나이에 내려오셔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아픔이 아들인 내 속에도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인종에 관한 이야기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면서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북한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과 그들도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동족이고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서 형제는 만나야 하고,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와 조건이 그리 많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들이 보면 원수 같아 보이는 조건일 수도 있지만, 형제들은 만나면 금방 끌어안고 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시면 함께 장례도 치르는 것이고요.

밤새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의 기도는 야곱의 마음만 돌려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을 향해 오고 있던 에서의 마음까지도 돌려놓은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새롭게 열어주셨던 원수지간의 형제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만남입니다. 더는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며 살지 않도록 하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이었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이 얍복강가로 야곱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죠.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 생각과 계획으로 무엇인가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머리가 나쁘거나 아니면 다른 이웃 나라를 침범하는 전쟁을 많이 일으켰거나, 천하의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른 민족이라서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6.25 전쟁 때에도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정도로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 세상 어느 나라보다 뒤지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강하고 잘난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민족과 한반도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걸까요?

좋게 생각해 보자면 정말 언젠가 이런 고난의 역사를 통해 우리 한민족을 엄청 대단하게 세상 역사에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얍복강을 건너야 하는데 아직 못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휴전선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순례자들이 기도문을 걸어놓은 모습. 사진 그레고리 드 폼벨레, WCC.휴전선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순례자들이 기도문을 걸어놓은 모습. 사진 그레고리 드 폼벨레, WCC.

지난 몇 년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잦은 만남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제는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네요. 그분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여서 그런지 실망도 큽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우리 스스로 기독교인들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겁니다. 어떤 실망과 좌절의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루실 그 날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가르치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그 분이 죽음의 길로 가야할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던져 가로막힌 담을 무너뜨린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형제가 서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거를 청산하고 만나 동행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넘어가지 못하는 마지막 강을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넘어가게 하시고 새로운 은혜와 축복의 역사를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평화위원회에서 이런 평화기도회를 열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진짜 저는 1995년도 희년이 이루어질 줄 알았던 그때 이후 실망과 좌절이 너무 컸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것이 다 나의 교만이고 무지였습니다.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했어야 했는데, 어쩌면 저같은 사람은 얍복강을 건너려는 시도도 못 한 채 다시 과거로 돌아가 실망과 좌절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평화위원회의 역사를 보면, 촛불이 꺼질 듯 꺼질 듯하면서 끝나는가 보다 생각하게 만든 적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리더들을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이 보입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장위현 목사님이 무슨 일 때문인지 진이 빠지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하의 임꺽정처럼 듬직하고 무쇠 덩어리 같이 건강해 보이는 청년 장위현 목사도 몸과 마음이 약해질 수 있구나.”

돌이켜 보면 그 옛날 통일위원회부터 평화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목회하기도 힘든데 통일이니 평화니 이런 거까지 하다가 나름대로 상처 입고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평화위원회와 함께하는 것 때문에 지금의 목회에서 어려움을 당해야 했고, 각자  감당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아픔의 몫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이것이 이 시대의 예수 믿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화면을 통해서라도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만나고 나니 참 좋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만남처럼 우리 조국이 가진 오랜 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형제가 다시 만나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했던 것 같은 평화통일의 새역사가 열리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열어주실 새역사를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함께 갑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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