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의 대동강을 기적적으로 건넌 이야기 2

이창순 목사님

편집자 주: 연합감리교뉴스는 한반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기도 캠페인에 참여하는 의미로 윌셔연합감리교회(가주태평양 연회) 등을 담임했던, 이창순 은퇴 목사의 글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오늘은 그중 두 번째로 대동강을 건너는 이야기가 담긴 글이다.

다음 날인 1950년 12월 5일 아침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날이 밝자마자 문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하지만 대동강 강변은 어제와 별 차이 없이 끝없는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우리에게 북쪽으로 올라가면 능라도가 있는데 거기는 강물이 얕아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피난민들을 따라 그곳에 도착해보니 허리 정도까지 오는 강 한가운데를 많은 사람이 줄지어 건너고 있었다.

우리 일행인 한상섭 목사님의 사촌과 그 어머니, 작은아버지 가족 (작은어머니, 사촌 둘)과 우리 가족은 강가에 모여 바지를 벗고 옷과 짐을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널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멀리 앞쪽에서 전투기가 지나가며 기총소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은 피난을 가지 말라는 만류 방송이 계속 있었다며, 그것이 위협사격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전투기 한 편대가 강 중간을 지나가며 기총소사를 해 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째지는지 모두 놀라 멍하게 서 있었는데, 우리보다 앞서 강을 건너던 사람들은 앞의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도 정신없이 어디론가 뛰어 도망을 갔는데, 그때의 괴롭던 심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강변에서 강둑을 향해 뛰던 내가 숨을 수 있는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었다는 가슴 조이고 긴박했던 상황까지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줌을 통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예배 포스터.

많은 사람이 소달구지 밑으로 들어가 숨으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비행기는 소달구지를 친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어디론가 도망쳤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강둑에 있는 피난민을 향해 기총사격해대던 비행기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소 한 마리가 쓰러져 우엉우엉 하는 것도 본 것 같다. 가족들을 찾는 소리, 신음하는 소리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다행히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가족 중에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작은아버지는 벗었던 바지를 잃어버려 당장 입을 옷이 없어 어느 농민으로부터 홑바지를 얻어 입고 오셨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우리 일행은 그곳을 떠나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왔다. 놀라운 것은 그런 폭격이 지나갔는데도 계속해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그대로 가다가 죽는 게 낫다며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대로 건널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곳을 떠나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얼마를 더 내려와 높은 강둑에서 강을 내려다보니 작은 배 한 척이 피난민을 가득 태우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우리도 저런 배를 얻어 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으로 배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배가 기우뚱하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바로 우리가 보는 앞에서 팍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막 소리를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강 한가운데로 들어가 구조하려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물이 깊어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배에 탔던 사람 중 일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물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의 그런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한 채 우리는 발길을 옮겨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한 참 내려오다 보니 피난민을 태우고 강을 건너가는 배가 또 보였다. 하지만 배를 타려고 하는 피난민들의 줄이 얼마나 긴지, 우리 차례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전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줄을 섰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도망을 가버렸다. 그걸 보시고 우리 어머니는 우리의 손을 이끌고 강변으로 내려가 아무도 없는 맨 앞에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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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사라지고 난 후, 우리는 어머니의 지혜 덕에 제일 앞에 서서 배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배는 작은 것이어서 우리 일행 전부를 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먼저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조카들이 먼저 타고 강을 건넌 후, 우리 남자들은 2차로 타기로 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후에 알고 보니 이 뱃사공은 피난민으로 잠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시간도 많이 지나 해가 저물어가니까 그날의 일을 끝내고 자기도 다시 피난길에 오르려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나와 남자들은 그 뱃사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어머니가 그 남자의 발을 꼭 잡고 놔주지 않고 씨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울면서 우리는 아들 때문에 피난을 가는데 아들을 강 저쪽에 놔두고는 갈 수 없다고 애걸복걸했고, 뱃사공은 결국 돌아와 우리를 태워 갔다. 온 가족이 헤어질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여러 번 여쭤봤지만, 아이들 데리고 잘 살라고 했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도 그분께 감사드린다.

그렇게 우리 일행의 도강은 계속되었다. 물이 깊은 지역은 배로 건넜지만, 강둑까지는 거기서부터 다시 걸어가야만 했다. 얼음이 계속 꺼지는 바람에 발이 무릎까지 들어갔지만 우리는 한참을 걸어 드디어 강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는 바로 평양 비행장이 있는 선교리라는 지역이었다. 미군들은 군수물자를 기차로 수송해 와서는 선교리 기차 정거장 지역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다가 후퇴하면서 그것을 다 폭파해 버렸다. 천지를 흔드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서 나고, 길가에는 그 파편들이 자갈처럼 널려갔다. 혹시나 파편에 맞을까 봐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피하기도하고, 또 집이 무너질 것 같이 흔들리면 다시 거리로 나오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도망 다녔다. 우리 일행은 뒤에서 나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앞으로 계속 달려갔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가 되자 그 포탄 터지는 소리는 우리의 뒤쪽 멀리서 들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안전지역에 도착한 순간 어머님이 앞으로 팍 쓰러지셨다. 긴장이 조금 풀리자 힘이 쭉 빠지면서 쓰러지셨던 것 같다. 날도 어두워져 우리는 어느 집 헛간 같은 곳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집을 떠난 이후 첫 번째 밤을 거기에서 보냈다.

다음 날부터 1년여간의 피난 생활은 피눈물 나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굶주림에 허덕대던 때를 비롯해 약 한 봉지 먹어보지도 못하고 병에 걸린 지 2주 만에 죽은 두 살짜리 동생을 피난민 아저씨의 도움으로 가마니에 둘둘 말아 매장했던 그 고통의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남쪽으로 보내주셨고, 목사가 되게 하셨다. 또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해병대로, 군목을 거쳐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나성에서 이민목회 30여 년을 다하고 은퇴할 수 있게 하셨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나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그 사선의 대동강을 1989년 다시 가볼 수 있었고 그 후에도 대동강 산책을 몇 번 더 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대동강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 참혹한 전쟁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경험한 나는 한반도에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매일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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