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의 대동강을 기적적으로 건넌 이야기 1

이창순 목사님  

편집자 주: 연합감리교뉴스는 한반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한 기도 캠페인에 참여하는 의미로 윌셔연합감리교회(가주태평양 연회) 등을 담임했던, 이창순 목사의 글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오늘은 그중 번째로 대동강을 건너기 전까지의 글이다.

나와 같은 세대 사람들 가운데 6.25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6.25전 아버지는 용강군의 한 시골교회에서 목회하시다 목회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자, 평양 교외로 방을 하나 얻어 이사하셨다.

평양으로 이사한 후 아버지는 월남을 위해 집을 나섰고, 우리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으로 등록했다. 사실 아버지는 그 전에 두 번이나 월남하셨다가 가족들 때문에 다시 돌아오시곤 했는데, 그때는 월남하기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에 두 번이나 다녀오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월남 시도에 실패해 잡히셨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셨다고 한다. 구사일생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었다. 그 후 아버지는 10월 국군이 평양에 들어와 해방될 때까지 내내 숨어 사셔야 했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교회에 가려 집을 나서는데 정오 12시에 특별방송이 있을 거라는 예보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라디오를 켜니, 남조선 괴뢰군들이 38선 북쪽으로 10km 내지 20km 정도 침략했다는 보도였다. 이 방송을 듣자 우리는 ‘와! 전쟁이 났구나.’하고 환송을 불렀다. 왜냐하면 전쟁만 나면 남한의 군인들이 당장 이북을 해방시킬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녁 방송의 내용은 용감한 인민군이 남조선 괴뢰군을 38선 남쪽으로 10km 내지 20km 격퇴했고, 인민군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군 중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이 뉴스가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끝없이 의심과 상관없이, 이튿날 거리에 나가니 조선 지도를 그려놓고 인민군의 진격 위치 표시를 행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3일째 되던 날부터는 우리가 몰래 듣던 서울 방송이 나오지 않았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우리에게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B29 폭격기가 우르릉 소리를 내며 와서 폭격했고, 갑자기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전투기는 기총소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우리는 폭격을 피해 낮에는 도시 밖으로 나가 곡식 밭에 숨고, 밤에는 다시 집에 들어와 잠을 잔 뒤 다음 날 먹을 것을 챙겨 다시 숨을 곳을 찾아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매일 비행기가 나타났는데, B29가 뜨면 멀리서부터 응응대는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은 그 비행기의 방향을 보고 우리가 있는 곳이 아니면 마음 놓고 비행기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나도 어른들 틈에서 그 비행기를 신기하게 보곤 했는데, 맑은 날에는 한 비행기로부터 여덟 개의 폭탄이 투하되는 것을 역역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8대가 한 편대를 이루어, 한 편대가 투하하는 폭탄의 수는 64개였고, 그런 편대가 연속으로 오면서 폭격을 하고,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멀리서 연속적으로 들렸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은 아무 걱정하지 않고 바라보곤 했다.

우리가 정말 무서워하는 비행기는 따로 있었다. 쌕쌕기라고 하는 전투기였는데, 언제 어디서 나타는지 알 수가 없었고, 싸악하고 소리가 나면 이미 비행기가 지나가 버려, 만약 그 전투기가 폭탄을 투하하거나 기총소사를 하면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호주에서 왔다는 전투기는 몸체가 두 개로 된 비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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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안에 떨며 살던 우리에게 한국군이 드디어 평양에 입성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두 번째 해방인 셈이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는 한국군이 들어오자 평양시청 근처의 적산 가옥 하나를 얻어 그리로 이사했다.

외출이 가능해진 아버지는 전에 목회하시던 지역으로 나가셔서, 각 교회를 순회하시며 매일 부흥회를 인도하셨고, 집에도 아버지의 소식과 먹을 식량을 인편으로 보내주셨다. 우리는 해방의 흥분 속에 매일 매일을 정신없이 즐겁게 살 수 있었다.

줌을 통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예배 포스터.

그 기쁨이 한 달 정도는 되었을까?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오셔서 국군이 후퇴하는데 우리 모두 나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뜻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어머니 역시 사회생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평양 시내는 이미 피난민으로 법석이고 있었다. 모두가 불안한 가운데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밀려다녔고, 국군과 유엔군이 있기 때문에 피난 갈 필요가 없다는 소문도 떠돌아다녔다.  

한번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미군 트럭들이 꽉 차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져,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다시 나가본 운동장에는 차량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사라져버려, 엄청난 공포 속에 피난을 가야 할 것만 같았다. 하루 만에 상황이 크게 변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더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 없어, 피난을 떠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들은 다 챙기고, 탁상시계와 내 성경책은 천장을 조끔 뜯어 그 안에다 숨기고, 문을 못으로 친 후 길을 떠났다. 그때 내 성경은 관주성경전서로 아버지가 특별히 마련해 주신 것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나는 이미 성경을 통독했었다.

우리 가족은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대동강으로 갔다.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대동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동강 강변에는 평양 북쪽에서 내려 온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대동강을 건너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피난을 위해 끌고 왔다 강을 건널 수도, 강변으로 다닐 수도 없게 되어 그대로 방치된 소달구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도교는 이미 폭격으로 완전히 끊겼고, 그나마 미군이 입성해서 임시로 건설했던 나무다리마저 불에 타버렸다. 강을 건널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방황하며 소문에 휩쓸려 다녔다.

우리도 위아래로 다니며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는가를  알아보았지만 그런 다리는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철교는 반파가 되었고, 남자들은 짐 없는 몸으로 건널 수 있지만, 여자나 아이들은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작은아버지가 자기와 나 둘만이라도 철교로 건너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때의 피난이라는 것은 강 건너 며칠만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그 제안이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절대 반대하셨다.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헤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단호한 결정 때문에 작은아버지의 제안은 무산되었고, 저녁이 되어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못질한 집의 문을 뜯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하루의 삶을 쉬게 되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난리가 났다. 평야 시내가 불바다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불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불길의 재가 우리 집 지붕에까지 내려앉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때의 장면은 쿼바디스에 나오는 로마 시내의 불타는 모습과 흡사했다. 우리는 그 불티가 우리 집에도 떨어져 집에 번질까 걱정하며 안전부절못하며 거의 밤을 그렇게 새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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