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와 한반도 평화 2

(편집자 : 한국전쟁이 발발한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관해 위스컨신 연회의 정희수 감독이 2020 11 19 한국기독교연구소(CKSC) 주최한 <세계교회와 한반도 평화>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얻어 3회에 걸쳐 싣는다. 이글은 시리즈의번째로 역사적으로 이어온 평화 담론에 관한 글이다.)

 

2018년 11월9-11일 연합감리교 세계선교부 주관으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의”에서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과 정희수 감독이 함께한 사진. 사진 제공, 정희수 감독.2018년 11월 9-11일 연합감리교 세계선교부 주관으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의”에서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과 정희수 감독이 함께한 사진. 사진 제공, 정희수 감독.

세계 교회의 평화 담론은 예언적인 역사의식과 함께 한다

세계 교회의 한반도 평화 담론은 1984년 일본 도산소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협의회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1) 1981년에도 한독교회협의회가 통일과 평화 협의를 구체화하고자 논의했지만, 미완성에 그쳤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하 교회협)는 1985년 34차 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와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의 기도와 교회 평화운동의 연계를 통해 “한국교회 평화통일선언”을 기초하고 발표했다.

그 후 1986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선으로 남북기독자협의회가 글리온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변환점이자 세계교회의 노력과 평화운동의 열매가 맺힌 날들을 기억한다.  

1988년에는 교회협을 중심으로 88년 선언을 기초하고, 민족자존과 남북화해의 노력을 통해 본격적인 남과 북(북과 남)의 교회적인 만남과 대화가 진행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23-25일에는 제2차 남북기독자협의회가 글리온에서 개최되어 통일 희년 선포와 남북 공동기도주일 등을 정례화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주도하에 멈췄던 화해와 평화의 담론을 사회적으로 열어가고, 남북의 교회들이 서로 방문하며, 인도주의(Humanitaianism)적인 협력과 공생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은 남북띠잇기 대회나 희년 기도운동 같은 다양한 교회 운동과 민간 차원의 교류가 성장한 결과이다.

교회가 터놓았던 물꼬는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다자간 교류로 인해 대중성을 얻었고, 다양한 사회기구들의 진행으로 확산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EFK(Ecumenical Forum for Peace, reunification, and Development Cooperation on the Korean Peninsula)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에큐메니칼 포럼(Ecumenical Forum for Korea, 이하 포럼)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아시아교회협의회(CCA)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다협력체제로 조선기독교연맹(KCF)과 연합한 기구로, 연례적인 만남과 협의체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포럼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기독교연맹이 주축이 되고, 세계교회협의회와 아시아교회협의회가 지원하고 협력하는 유기체적인 기구로, 현재까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주도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는 연합감리교회 대표로서 포럼에 참여하면서, 미국교회들과의 연대와 평화운동의 지평을 확산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지난 7월 10-12일 방콕에서 열린 한반도포럼에서 정희수 감독(미 위스콘신연회)이   성서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에 대하여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지난해 7월 10-12일 방콕에서 열린 한반도포럼에서 정희수 감독이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평화와 화해의 사역이 남과 북의 정치적 상황 속에 정체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 교회들과 NGO 등 다양한 기구들이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조그련 지도자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포럼의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교회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교회가 이 포럼의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교회와 민간 차원의 평화운동에 적극적인 파도를 만들어 주고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기도와 꿈은 지속된다

남북한 정상 지도자들의 만남과 판문점선언,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전 세계에 주었던 희망찬 감동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의  한반도 상황을 돌아보면,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peace-making), 평화를 건설하며, 영구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급진적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평화와 화해 그리고 회복의 가능성을 의문시하던 사람들에겐 상상할 수도 없었던 북미 간의 만남은 꿈꾸는 것 같은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비록 나는 이민 문제와 정의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서신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했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고 소통할 때에는 또 다른 공개 서신과 사신을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기도 했다.

 

우리는 기도로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평화를 위한 기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야 한다. 평화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뜻을 분별하고 깨닫기 위해 진지하게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평화를 위한 것이 된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간절히 그리고 정기적으로 기도하면, 평화는 우리들 일상생활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게 되고, 크고 작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과 정신이 평화를 느끼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평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가 가족이나 이웃과 평화롭게 살 수 없으면, 낯선 사람들 심지어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는 더더욱 평화롭게 살기 어렵다. 평화는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영성 한가운데, 즉 그 중심의 중심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 모두를 위해 평화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교육과 신학적 담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모든 시기와 문화에서, 자유 사상가와 철학자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평화에 대한 담론을 중심의 중심이라 여겼다. 할 수 있는 한 (평화에 관한) 모든 개념을 배우고 실천을 통해 일상생활에 평화의 담론을 더해가는 일은 한반도에 관한 문제를 넘어 인생의 모든 것에 해당한다.

현시대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돌봄과 공생의 길을 만들어 가려는 우리를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도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단체들 사이에 꾸준히 다리를 놓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다 보니 나 역시 그들처럼 평화의 다리 놓는 일을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타종교와의 대화, 교회일치운동에도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고, 불의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다각적으로 동행하며, 일치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평화 활동을 지지하며, 불의에 도전하는 편지를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평화를 위해 행동하고, 평화의 비전을 확장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져야 할 하나의 소명이라 나는 확신한다.

화해와 평화의 현실은 우연히 얻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평화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노력에 의해 좌우되며, 그래서 평화는 건설되어야 하는 것이며, 유지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든다. 참되고 지속적인 평화는 값싼 것이 아니며, 다른 한 편의 희생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평화는 경멸과 두려움 그리고 의심과 은밀함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는 이 땅에 세워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우선하여 추구하라 명하신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의제는 미루어 놓으라고 요구하신다.

그리스도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 14:27)"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귀한 사역이며 이 사역을 우리 모두는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북미 기독학자회의는 1967년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와 신학생 그리고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88년 22차 연례대회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해 <분단 시대와 이산가족>이란 주제로 적극적인 평화 담론을 펼치고, 그 이듬해인 89년부터는 남과 북, 해외 기독인들을 초대해 지속적인 논의를 이끌어 왔다.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의 논의가 부재했던 냉혹한 시기에, 북미 기독학자회의가 세계 교회를 흔들어 깨우고 북한 종교지도자들을 대화의 마당으로 초대한 노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 미주 한인크리스천은 성명서를 통해 70년에 걸친 남북 분단의 세월을 애도하고, 화해를 갈망하는 평화의 담론을 선언했다.

“2020년 6월 25일은 한국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잔혹한 전쟁은 사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폐허와 상처를 남겼으며, 수백만 가족을 생이별시킨 분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이들 중에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산가족도 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停戰)으로 인해 실질적인 전투는 끝났지만, 미국과 남·북한은 여전히 종전을 선언하는 공식적인 평화협정은 맺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에는 긴장과 적대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은 근대사 가운데 가장 긴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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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한국 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백칠십만 미군이 한국 땅에서 싸우고, 그중 삼만이천 명이 생명을 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

한국 전쟁은 또한 수많은 가족에게 상처를 준 비극적이고 끝이 없는 남북 분단을 만들고, 70년의 세월 동안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사이의 적대 행위와 그로 인한 긴장을 일으키는 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한국 전쟁에 지대한 역할을 한 이유로, 미국의 동의 없이 남한과 북한은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 한인들은 공동체와 교회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2)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의 혁신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기도하는 우리들은 냉전체제 도식과 공포의 마케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북(북남)한의 우정을 진작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 10여 년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천안함 사건과 남북연락사무소 폭발 등은 전쟁을 지속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언론과 정부는 냉전 체제의 연속과 공포의 마케팅을 이용해 불신과 차별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나는 휴전선 너머에 가장 악한 테러리스트가 살고 있다고 믿는 대중의 인식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본다. 또 그리스도인들마저 흑백 논리와 반공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하는 역사적 오류를 더 공고히 했기 때문에, 70년간 대결 의식을 거두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악순환을 멈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믿음 수호를 위해 공산주의를 이겨야 한다는 신앙 공식이 사실은 형제 사랑과 우정을 가지고 교류해야 하는 평화 인식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경 너머의 가장 악한 테러리스트나 반인륜적인 정권이라는 공포의 마케팅으로부터 그들이 우리와 피를 나눈 한 백성이라는 민족애와 한 식구 또는 우리의 친구라고 부르는 우정의 마케팅으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남과 북, 북과 남, 두 나라가 공존하며, 차별과 이질감을 해소해가는 관계로 신학적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북(북남) 공존과 대화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 간의 다양한 합의 과정을 통해 강렬한 우정을 서로 확인하고 그것을 저변으로 확대하면, 그리스도인의 선교 인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1) The Light of Peace, Erich Weingartner, 125-128

(2) 북미주 그리스도인들의 선언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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