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5년 8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하이츠에 소재한 세이비어 연합감리교회에서 <오하이오·한국 및 그 너머의 감리교 선교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의 공헌을 기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연합감리교회의 선교 역사와 신앙, 더 나아가 선교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이 행사를 위해, 연합감리교회 총감독회 회장인 트레이시 S. 말론 감독, 연합감리교회 샐리 딕 (은퇴)감독,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 오하이오 감독구 정희수 감독, 박정찬 감독 등이 차례로 설교했다. 연합감리교뉴스는 행사를 보다 자세히 전하기 위해, 다섯 감독의 설교를 순서대로 소개한다. 말론 감독은 개회예배에서 설교했으며, 아래 설교문은 당시 녹취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성령님,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주님의 뜻을 역사하여 주옵소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시간이 우리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주님에 관한 시간이 되게 하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그분을 위해, 또 우리를 통해 이루시게 하옵소서. 오늘 밤을 기념하고, 기도하며, 기쁨으로 스크랜턴 선교사들의 사역과 발자취를 기억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단지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옵소서. 오늘, 이 밤, 우리에게 새 말씀을 들려주시어 우리가 일어서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부르신 그 소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정석 감독님, 샐리 딕 감독님, 박정찬 감독님, 정희수 감독님과 오하이오 감독구 감리사 여러분, 평신도와 성직자,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귀빈 여러분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전합니다.
특별히 이 축하의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신 정희수 감독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믿음으로 헌신한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을 통해 시작된 140년 한국 감리교 선교의 유산을 기억하고 기리는 거룩한 순간입니다.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감사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에 뿌리내린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연합감리교회의 역사 위에 함께 나아갈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낍니다. 오늘 제가 전할 설교의 제목은 <시대를 넘어, 아시아를 넘어 (Forward through the Ages Forward through the Asia)>입니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를 과거에만 묶어두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길을 중심에 두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미래로 담대함과 명확함,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조금 전 성경 봉독에서 들었던 히브리서 12장 1–2절 말씀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상상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혼자 선교를 감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믿음의 경주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한 교회나 한 공동체, 혹은 한 개인보다 더 큰 일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해 있으며, 그것은 곧 은혜의 운동이자 선교의 운동입니다.
이것은 변화의 운동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리고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는 두 명의 증인을 기립니다. 바로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입니다. 그들의 삶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간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메리 스크랜턴에 대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그녀는 1885년에 배를 타고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감리교 최초의 여성 선교사였습니다. 메리는 한국어를 전혀 몰랐고, 당시의 선교 기준으로 보아도 특별히 준비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렸고,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녀는 미지의 두려움보다 부르심을 더 크게 믿었습니다.
메리는 복음이 단순히 영혼을 구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조선 소녀들의 고통을 보았고, 이화학당을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여성 대학 중 하나인 이화여자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잠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드린 한 번의 신실한 순종, 한 번의 용감한 헌신이 세대를 넘어 세계를 복되게 하는 유산이 된 것입니다.
저는 그 거룩한 장소를 방문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2017년, 정희수 감독과 중북부지역 감독회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저는 단지 건물과 그 활기만이 아니라, 그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정신—선교의 정신, 교육의 정신, 그리고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신—으로 인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학교, 그리고 진료소를 세웠습니다. 그들의 삶은 감리교회의 선교 정신을 온전히 구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선교사란 누구입니까?
선교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을 향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유산이 우연히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실함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은 사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물러서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이미 하고 계신 일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교, 곧 Missio Dei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언제나 선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내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 하나님의 백성을 속박에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설 힘을 주시고, 굳건히 설 용기를 주시며, 민족의 짐을 덜어줄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혜로 인도하시고, 정의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보내 진리를 말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는 이 사명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사명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선한 사역과 선교를 기뻐하며 함께하지만, 이 사명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통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이 사명에 동참할 뿐입니다.
교회는 사명을 소유하는 곳이 아니라, 사명에 참여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회 클럽이 아니며, 단순히 오래된 전통을 보존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가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손과 발입니다.
선교학자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그리스도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단순한 활동이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은 교회가 스스로 이루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이루시는 사명이며, 그 안에 교회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도구이며, 오늘 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도구가 되었던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를 기립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바로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교회는 제자를 만들기 위해 파송 받았습니다. 이는 “가서 나를 위해 이것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를 보내고자 하는 곳으로 인도하겠다”라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성경에는 ‘부르다’라는 말이 무려 1,542번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라”
“이 세 사람 중 누가 네 이웃이 되었느냐?”라고 물으셨고, “자비를 베푼 자라면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며, 책망하며, 권면하되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하라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의 유산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가야 합니다. 감리교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예”라고 응답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불의가 있는 곳을 찾아가 정의를 말해야 합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는 위로를 전하며, 깨어진 곳에는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외로움 속에 치유를 전하고, 슬픔 속에 공동체를 세우며, 두려움 속에서는 평화를 나눕니다. 억압 가운데서도 평화를 말하고, 어둠 속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분열 속에서 연합을 구합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고, 믿음의 증거가 되며, 진리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감리교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는 것은 우리의 DNA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교회가 그 사명에 신실할 때, 생명이 변화되고, 공동체가 변화되며,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는 미국 중서부에서의 선교를 기립니다. 이곳에서 감리교회는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비범한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며 섬겨왔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교회들이 세워졌고, 학교들이 건립되었으며, 선교사들이 파송되었고, 평신도들이 역량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은 파송의 터전이었으며, 야외 집회장에서부터 강당에 이르기까지, 시골 교회에서 도시 강단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오하이오 감리교회의 증언은 복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리와 가정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8년 동안 감독으로 섬기는 축복을 받았고, 이 지역 전역의 성도들과 선교 현장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이 유산을 잠시라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생하며 무릎 꿇고 기도했던 많은 신실한 이들, 그리고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격려했던 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삶과 유산을 기립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순회 설교자들, 교수들, 감독들, 부모들, 그리고 “주님, 저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한 목회자들 덕분에 복음은 한국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헌신으로 기관들이 세워졌고,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이곳의 한인한인연합감리교회들이 여전히 세상을 복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오늘날에도 한국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더 이상 일방향이 아닙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배가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복음의 배가(Gospel multiplication)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배가시키고, 예수님의 사랑을 배가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기념하는 것, 바로 이것이 배가의 사역입니다.
오늘 밤 우리 앞에 펼쳐진 복음의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우리의 마음에서 흘러넘치는 은혜 속에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히브리서는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각 세대는 자기 세대가 감당해야 할 경주가 있습니다.
각 세대는 자기 세대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각 세대는 두려움보다 믿음을, 유지보다 선교를, 안락보다 증언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때이며, 이것이 우리의 경주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회 속에서, 전 세계 속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도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 리더십, 정체성의 변화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는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우리의 질문이 옳든 그르든—
우리는 목표 없이 달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혼자 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달려가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우리가 그저 용기를 내어 따르기만 한다면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예수님께서 속도를 맞추어 주십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일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저는 우리 모두를 초대합니다.
모든 무거운 짐—불신의 짐, 두려움의 짐, 무관심의 짐, 냉소의 짐, 안락함의 짐—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선교를 향해 달립시다. 정의를 향해 달립시다. 일치를 향해 달립시다.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를 반영하는 미래를 향해 달립시다.
우리는 왜 달립니까?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이 우리보다 먼저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달립니까? 우리보다 앞선 감리교인들이 계속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달립니까? 한국 감리교인들이 지금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달립니까? 하나님의 선교는 뒤에 있지 않고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산을 기념하지만, 하나님의 선교는 언제나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여전히 역사하고, 그리스도는 여전히 부르시며, 복음은 여전히 기쁜 소식입니다—상한 마음에 주는 기쁜 소식, 은혜를 갈망하는 세상과, 정의를 갈망하는 세상에 전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사랑이 여전히 승리한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비가 여전히 우리를 붙드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유산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아갈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의 걸음을 붙잡고 방해하는 모든 장벽과 얽매이는 것들을 내려놓읍시다.
복음을 위해 자유롭게 달리고, 마음껏 열매 맺는 삶을 삽시다.
그러므로 오늘 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메리와 윌리엄스크랜턴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전히 보내시고, 여전히 부르시며, 여전히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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