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5년 8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하이츠에 소재한 세이비어 연합감리교회에서 <오하이오·한국 및 그 너머의 감리교 선교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의 공헌을 기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연합감리교회의 선교 역사와 신앙, 더 나아가 선교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이 행사를 위해, 연합감리교회 총감독회 회장인 트레이시 S. 말론 감독, 연합감리교회 샐리 딕 감독,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김정석 감독, 오하이오 감독구 정희수 감독, 박정찬 감독 등이 차례로 설교했다. 연합감리교뉴스는 행사를 보다 자세히 전하기 위해, 다섯 감독의 설교를 순서대로 소개한다. 오늘은 그 네 번째로 오하이오 감독구의 정희수 감독의 설교를 싣는다.)

이번 컨퍼런스와 우리 공동체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바쁘고 힘든 일정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기쁨을 전합니다. 여러분이 참석해 주신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은혜이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이유입니다.
지난해 제가 오하이오 감독구로 온 것은 제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감독구 내 여러 교회를 방문하며, 그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지도자와 교인들과 교제하면서 많은 의미와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하이오를 바라보며 저는 이곳이 미국 역사뿐 아니라 인류의 더 큰 이야기 속에 얼마나 풍성한 유산을 남겼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이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오셨을 텐데, 저는 그럴 때마다 오하이오 라이트 형제—윌버(Wilbur, 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 1871–1948)—를 떠올리곤 합니다. 1903년, 그들이 만든 최초의 동력 비행기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라이트 감독은 연합감리교회의 이전 교단 중 하나였던 형제교단(Brethren Church)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유산은 아들들의 업적뿐 아니라, 아들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작은 장난감 헬리콥터를 속에도 살아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두 아들에게 상상력과 발견 정신을 심어주었고, 이는 사랑의 이끄심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당연하게 누리는 전기의 발전 역시 오하이오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전구와 음향 녹음 기술을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1847년 오하이오주 밀란(Mila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기증한 아름다운 샹들리에는 지금도 오하이오 티핀(Tiffin, OH)에 있는 세인트폴(St. Paul) 연합감리교회 예배당에 걸려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가 찾아와 그의 유산을 기리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오하이오가 민권운동에서 감당했던 중요한 역할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노예제 역사에서 오하이오 강은 종종 해방과 희망의 상징인 “요단강”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19세기, 오하이오가 남부의 노예 제도에서 도망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조직된 탈출 망이자 저항 조직인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에서 맡았던 역할은 인류 평등을 위한 투쟁의 강력한 증거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남북전쟁(1861–1865) 말까지 약 50만 명 이상의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했고, 그들 중 많은 이가 오하이오를 거쳤습니다. 그들은 밤에만 이동하며, 낮에는 늪·숲·헛간·동굴 속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그들을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2020년, 제가 세계선교부 이사장으로 섬기던 시절, 오하이오 샌더스키(Sandusky)에서 열린 감리교 선교 2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존 스튜어트(John Stewart)가 와이언도트(Wyandot)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역을 기렸고, 동시에 그들과 화해와 용서를 구하며, 연합감리교회가 소유했던 땅을 그들에게 반환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아프리카계와 유럽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존 스튜어트는 가난과 우울증, 강도를 당하는 등 아픔을 겪으며 방황했지만, 오하이오 마리에타(Marietta)에서 열린 감리교 부흥회를 통해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고난 속에서 꽃피운 그의 믿음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번 선교대회 동안, 저는 메리와 윌리엄 스크랜턴(Mary and William Scranton)이 기독교대한감리회에 남긴 영향에 관한 발표들에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그리고 확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오하이오 감리교회의 한국 선교가 맺은 영적 열매입니다. 저와 스크랜턴 모자의 관계는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제 저는 동∙서 오하이오 두 연회의 감독으로 섬기고 있지만, 제 신앙은 강화 감리교회 전통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1907년 봄, 윌리엄 스크랜턴은 강화에서 영적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 서부 지역의 감리사로 사역하면서, 미국 감리교와 한국 감리교가 대립했을 때 화해를 위해 직접 나섰고, 그의 사역은 제 삶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또 다른 개인적 연결고리는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가 개척한 동대문 감리교회와 이어져 있습니다. 제 리더십 여정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저는 젊은 여성 공장 노동자를 위한 동대문야학 교감을 맡았고, 그 경험은 저를 강인한 지도자이자 정의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사역을 마친 직후인 1982년, 저는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 고향에 스크랜턴과 같은 선교사를 파송했던 바로 그 자리에 제가 서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스크랜턴이 동대문에서 볼드윈예배당(Baldwin Chapel)과 한국 최초 여성 병원인 보구여관으로 선교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들은 병원을 세워 병자를 돌보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교육하며 양육했습니다. 그 사역은 제 믿음과 리더십의 뿌리가 되었기에, 저는 스크랜턴의 사역을 매우 가깝게 느낍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가 함께 예배드린 볼드윈예배당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오하이오 유산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오하이오 출신 감리교인 볼드윈은 초기 한국 감리교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연결은 우리의 영적 여정이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하이오에서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저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그러면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을 것이요,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존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4–26)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헌신이나 희생을 넘어, 자기 자신이 철저히 죽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와 편안함, 그리고 소비문화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매우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강력한 변화로 부르십니다.
생명의 법칙은 씨앗이 떨어져 썩고, 싹이 트며, 다시 일어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곧 믿음의 신비입니다. 자기희생과 자기 비움, 또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생명이 번성하는 길입니다.

스크랜턴 모자와 다른 선교사들의 삶 속에서 저는 이 말씀이 실현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존재하며 믿음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고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희생을 동반합니다. 사랑은 생명을 낳습니다. 참된 기쁨은 우리의 헌신으로 다른 이의 삶이 번성하는 것을 볼 때 주어집니다. 자신을 죽임으로써 예수를 영화롭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권력이나 특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손실과 섬김, 그리고 자기부정을 통해 세워집니다. 생명은 죽음을 통해 얻어지고, 내어줌을 통해 지켜집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믿습니다. 바로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희생과 사랑, 그리고 변혁으로 가득 찬 스크랜턴 선교사 모녀의 삶을 묵상할 때,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부르심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홀로코스트에서 가족을 전부 잃고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그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폭력을 막는 새로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세상이 레비나스와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의 증언을 다시 부르고 있다고 믿습니다. 미움의 시대에 사랑을 선택하고, 폭력 앞에서 자비로 저항하며,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와 정의로 나아간 이들의 삶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절, 윌리엄 스크랜턴은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미움이나 차별이 아니라 자유와 존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준, 전덕기, 이동영과 같은 지도자들을 양육하며,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연합감리교회의 동역을 통해 우리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의와 자비의 사역을 확장하며,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위해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정체성을 회복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존재합니다(We exist for others). 연합감리교인과 기독교대한감리교인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거나 좋아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까지도 이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번 3일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한국감리교회와 연합감리교회가 사랑과 연대의 끈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선교의 역사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미래 담론을 다시 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겸손한 씨앗처럼 죽어, 풍성한 수확을 하나님께 맡깁시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아름다운 희생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자가 됩시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도를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삽시다.
“이웃이 나로 인해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스크랜턴 선교사 모자는 온전히 자기를 비우는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며 한국 땅에 복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조건 없는 헌신 덕분에 감리교 선교가 가능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자기 비움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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