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김영동 목사가 8월 12일 Leonia, NJ에서 인종정의사역팀이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김영동 목사, 사진, 필자 제공.스테이터스 콘페시오니스(Status Confessionis)는 라틴어로 ‘신앙고백의 순간’을 뜻하며, 교회가 복음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할 때 신앙을 분명히 선포해야만 하는 결정적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는 연합감리교인들에게 다소 낯선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감리교 전통은 정통 신앙(orthodoxy)을 고백하는 것보다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orthopraxy)을 더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신앙고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의 본질이 흔들릴 때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신앙고백이 더욱 절실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훨씬 더 강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비본질적인 사안(adiaphora)이 아니라, 복음과 신앙의 본질 자체가 걸려 있어 교회가 분명하게 “예” 또는 “아니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즉,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것 자체가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라는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오늘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연합감리교회가 복음의 본질 앞에서 어떤 신앙고백을 할 것인지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스테이터스 콘페시오니스, 곧 '진실의 순간'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입니다. 나치 정권이 교회를 국가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왜곡된 복음을 정당화하던 때, 칼 바르트와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바르멘 선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주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 선언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삶으로 나타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 운동이었습니다.
또 다른 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벨하 신앙고백(Belhar Confession)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인종차별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교회마저 그 논리를 따르던 때, 벨하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정의와 화해, 그리고 일치를 원하신다는 복음의 본질을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이러한 신앙고백의 역사가 매우 깊습니다. 또한 사도신경 역시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반면 감리교회는 신앙을 입술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전통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 자체가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는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와 구조적 인종차별(Systemic Racism)이 이전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복음의 본질을 향한 하나 된 신앙고백과 행동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문하게 됩니다.
"연합감리교 목사로서, 우리는 지금 어떤 방식(Method)으로 신앙을 고백할 것인가?"
바로 이 질문 위에서 오늘 이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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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연합감리교회의 인종정의사역팀은 출범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태스크포스로 활동하며 미국 노예제도의 역사,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 COVID-19 기간 급증한 아시안 혐오범죄 등을 교육하고, 한인교회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참가한 목회자와 평신도 11명이 함께 미국 흑인 민권운동 순례(Civil Rights Pilgrimage)를 다녀왔습니다. 순례를 마친 참가자들의 간증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에 대한 깊은 감동과 새로운 소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혁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인종 문제는 한국교회에서도, 제가 섬기는 타인종/타문화 목회 현장에서도 중심적인 주제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전쟁, 경제, 이민정책 등 수많은 이슈 속에서 인종 문제는 쉽게 뒤로 밀려납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질문하고 싶습니다.
만약 이 모든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복음은 각각의 문제를 따로 보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 정의, 환대, 평화는 모두 하나의 복음 안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복음의 본질에 비추어 함께 이해하고, 대화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2024년 연합감리교회 총회는 12년에 걸친 논의 끝에 개정된 사회원칙(Revised Social Principles)을 채택했습니다.
사회원칙은 단순한 정책 문서가 아닙니다. 감리교회가 신앙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보여 주는 행동 강령입니다. 개혁교회가 신앙고백을 통해 시대에 응답했다면, 감리교회는 사회원칙을 통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실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사회원칙을 읽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원칙을 살아내야 하는 시대입니다. 더욱이 2028년 총회는 지역화(Regionalization)라는 중요한 전환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의 상황 속에서, 유럽은 유럽의 현실 속에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사역의 형편을 살펴서, 아시아는 아시아의 맥락 속에서 교회를 세워 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계 연합감리교인들은 어떤 복음을 살아낼 것인지, 그리고 우리 교단이 어떻게 복음의 본질을 지켜 갈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사역하는 한인 목회자, 특히 타인종·타문화(Cross-Racial/Cross-Cultural) 목회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뉴욕 연회만 보더라도 연회가 파송한 목회자의 절반 이상이 한인 목회자입니다.
그렇다면 2008년에 마련된 현재의 타인종·타문화 파송 정책이 2028년에도 그대로 적절할 것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사회와 지역화라는 새로운 구조 속에서 지금의 정책이 여전히 복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지 묻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종정의사역팀에게 주어진 스테이터스 콘페시오니스의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준비하려는 것은 특정 민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닙니다. 타인종·타문화 목회는 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시아계, 아프리카계, 라틴계, 중동계 등 다양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연합감리교회의 미래와 맞닿아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관심이 우리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또 다른 배타성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복음을 살아내도록 돕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음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거대한 계획을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팀을 구성하고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일만으로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를 움직인 것은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우리의 출발점은 정치가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스테이터스 콘페시오니스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 여정 자체가 우리의 삶을 드릴 충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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