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 견디는 것입니다 3부

편집자 주: 정희수 감독이 중북부 지역총회 한인선교구 모임에서 발표한 내용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오늘은 시리즈의 번째 글이다.

정희수 감독이 2018년 10월 15일 열린 한인목회강화협의회 개회예배에서 설교하는 모습. 사진, 김응선, 연합감리교뉴스.정희수 감독이 2018년 10월 15열린 한인목회강화협의회 개회예배에서 설교하는 모습.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IV. 차별과 싸우고, 서로를 위해 견뎌 나가자

세계 질서의 혼돈과 연합감리교회의 분열 그리고 인종차별주의 및 코로나 감염병으로 드러난 인류의 안전과 건강 이슈 등은 목회 현장에서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한 난제들입니다.

21세기의 과학과 경제는 인공지능과 대체 기능주의를 극대화하고, 과거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와 편리를 일상에서 누리게 해주고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초점을 둔 이들은 인공지능과 대체 기능주의를 인류가 경험하는 전대미문의 초특급 파괴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제 발전은 생산의 극대화시키고 더 나아가 과잉 생산을 초래시켰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고, 사람들을 극단적 차별과 불균형으로 몰아, 사람들은 기아와 빈곤으로 허덕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습니다.

다양한 자연재해를 동반한 오늘날의 극심한 기후 변화 또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위협하고, 인류의 생존에 빨간불을 켰으며, 교회에 생태적인 의식과 이에 합당한 신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태계의 위기와 수많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멸종되거나 소멸되는 현상 속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구원과 선교는 생태적인 각성과 실천 없이는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인종차별주의 역시 우리 교회 안에서 더는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단 행정에서 나타나는 오해와 차별 그리고 무의식이 우리 한인 교회들을 향한 공격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시아인의 면전에서 뻔뻔하게 드러내는 인종차별과 그 폭력의 현실은 선교를 방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인종 문제에 대해 발언하면서, 저는 미국 내에서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초기 역사로부터 나타난 고질적인 질병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을 향한 차별과 학대의 오랜 역사에 한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최근 팬데믹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 아시안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은 미국 경제의 위기로 인해, 파괴적인 공포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상을 함께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선한 이웃이냐고 물으신 예수님의 물음에 답할 있도록 교회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당면한 혐오와 학대 그리고 차별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물음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인종의 문제든, 성정체성의 문제든지 간에 어려움을 당하는 소수에게 어떻게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선교의 실천과 연계할 수 있도록 교회가 스스로 묻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자문화 중심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1세대 중심의 한인 교회가 자초한 문화적인 고립은 없었는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여야 할 현주소라고 봅니다.

한인 교회는 갈등 구조가 만연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서로 불일치하는 일로 속병을 앓고, 갈라지고 갈라서는 한인 교회의 현실을 그동안 우리는 많이 경험하고 겪어왔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고립과 자기 파괴를 가져오는 어두운 심리적 현상으로, 이민 교회가 가지는 내적 갈등은 어쩌면 과거로부터 잠재되어 왔던 갈등과 피해 의식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식민주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사람들처럼, 한국인의 심성 속에는 갈등을 화해로 바꾸는 훈련과 토양이 약하다는 것을 자인하며, 저 또한 반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인 이민자들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갈등과 분리의 의식은 차선에 두고,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과 지체됨을 서로 견디며, 새로운 문화 풍토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이제는 갈등을 조정하고 화해의 신학과 문화를 살아내는 일상을 제자훈련의 과제로 삼고, 피해 중심의 자기 이해를 넘어서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확산해 가는 일에 같이 힘을 모아야 입니다.

로스엔젤레스를 비롯한 대도시 중심의 한흑 갈등은 이제 중소도시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0년 8월 23일, 위스콘신주 케노샤에서 29세의 흑인 남자 제이콥 블레이크가 경찰관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사건으로 도시가 혼돈에 빠져 있을 때도 한인 가게가 불에 탔고, 그 때문에 소규모 영세업을 하며 성실하게 살던 이웃들도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지역에서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닌 미전역의 현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앞장서 한흑의 갈등 요인을 제거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정 관계를 세워야 할 것이며, 이 모습이야말로 바람직한 미래 교회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인들 역시 자신들이 가진 고질적인 차별 의식을 회개하고, 다른 인종과 문화를 인정하며, 친교와 연대를 통해 한인 이민자들의 고립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에 교회가 앞장설 수 있도록 의식을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연회나 교단의 리더십과 연대하는 일은 연합감리교회의 교리와 전통 속에서 우리 한인 교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상호연대주의(connectionalism)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끼리’라는 선교적 고립을 과감히 탈피하고, 상호의존하고 존중하는 교단의 선교 사역에 협력하고 공유하려 노력하는 한인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단 분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함께 간다는 것은 함께 견디는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교단의 특별총회 이후 한인 교회들이 취한 노력을 저는 미래를 위한 자구책이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연합감리교회의 역사와 신학적 전통이 잘 전승되는 길을 같이 모색해 갔으면 합니다. 교회사 속에서 우리가 보았던 인종, 노예, 성, 남북 감리교회의 분리 과정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규합해 가는 노력의 교단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그동안 진보와 보수 또는 친동성애와 반동성애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백인우월주의, 남성지배주의, 반이민주의와 같은 배타성의 문제 등의 문제들도 서로 관용을 통해 넘어서며, 교단의 일치를 나름대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한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를 이끌어 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서로를 포용하려는 폭넓은 노력이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신학적인 리더십에 배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보냐 보수냐 또는 동성애나 동성애자 안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격화된 불행한 시점에 있는 우리 교단의 현실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이고, 그분의 백성된 우리의 고백적인 신앙과 그분의 손에 의해, 미래는 당연히 열릴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역사 속에 지속되어오던 인종 우월주의나 차별로 인한 고질적인 갈등이 극단적인 분리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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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감독으로서 한인연합감리교회 공동체가 관심의 원을 넓히기보다, 계속 좁혀 가면서 정통성을 이어가려 하지는 않으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분리후연합감리교회(Post-United Methodist Church), 글로벌감리교회(Global Methodist Church), 해방감리교회(Liberation Methodist Church) 등과 같은 그룹의 논쟁을 이해하지만, 이는 교회사 속에서의 “끼리끼리 문화”를 전승해가는 연장선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서로 다르나 어우러지는 거룩한 공동체이기에, 지금 추진하는 교회의 분리는 온전한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분리는 갱신의 길을 열기보다, 끼리끼리의 폐쇄성에 갇히게 되는 위험과 그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긴 역사 속에서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일치(unity)와 연대(solidarity)에 있다고 하는 성서에 따른 진리는 결코 부정하거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그 가치의 편에서 보면, 연합감리교회의 현실은  끼리끼리의 문화나 뿔뿔이 흩어져 각자 다른 섬 같은 곳으로 가는 슬픈 현상이 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바른 이웃 좋은 이웃이 되게 하는 것인지,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이런 시기에 중요한 영적인 태도라고 저는 믿습니다.

분리되어 각기 다른 섬에 속하였다가 중간에 물이 다 빠져버리면, 하나의 육지로 연결이 되듯이, 우리 사이의 끼리끼리라는 물이 다 빠져버려서 결국 하나의 교회가 된다는 원형적인 상상력 속에 미래 교회를 함께 꿈꾸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섬에 귀착하여 어떤 형태의 미래 교회를 꿈꾸든지 그곳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계의 파편일 뿐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한 형제자매라는 친족 같은 연대를 우선적인 가치로 삼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 비판하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사랑과 덕을 실천하며, 함께 견디어 낼 것을 제안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 5:7)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를 긍율히 여기는 영적인 분위기가 중북부 한인선교구 안에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분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한인선교구의 선교적 동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로운 관계는 원을 보다 크게 그리고 확장해 가면서, 그 원을 새로운 신앙 개혁 운동으로 채우며 살아내는 일입니다. 기존의 연결이 느슨했다면,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더욱 서로를 세우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와 이 세상이 경험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대유행의 현실은 오랜 세월 이어오던 순환적 목회의 영적 분위기 대신 새로운 방식의 선교 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꼰대 리더십이 아닌 미래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기도하며, 새로운 선교적 창조성을 시도할 중차대한 지점에 와 있음을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와 교단의 장래는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연합감리교회의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이며, 구성원입니다.

복음에 대항하는 반기독교 문화의 현실에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더 신실하게 응답하고 새로운 복음의 장을 이끌어가는 창의성과 진취성을 가지길 원합니다.

겸허한 리더십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은 함께 견디는 을 포함한다는 제언을 드리면서 오늘 나눔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바로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너를 세웠다.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롬9:16-18)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참고 견디면 또한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요….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하여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마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딤후 2:11-14)

관련 시리즈 기사 보기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 견디는 것입니다 1부

함께 간다는 것은 서로 견디는 것입니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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