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목사님을 추모하며

들어가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평생 헌신하신 제임스 레이니(James T. Laney) 목사님의 깊은 신앙과 오랜 실천의 삶을 기억하며, 이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부모의 유전자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특성을 보이고 태어나며, 유아기부터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의 언어와 행동을 보고 배우며 각자의 성격을 형성해 나갑니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성격과 특성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레이니 목사님의 98년의 생애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와 함께 지적·정서적·신체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추신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세상을 위해 나누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이러한 귀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이제 하나님의 품에 안기신 목사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이어서 레이니 목사님의 생애와 제가 개인적으로 목사님과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이야기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제임스 레이니 목사님의 생애를 통한 업적

목사님은 감리교 목사였던 외할아버지 아래, 아칸소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후 테네시주 멤피스로 옮겨 그곳에서 성장하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예일대학에 진학해 경제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1947년 군에 징집돼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분단 상황에 부닥친 한국에서 복무하셨는데, 이 시기의 경험이 목사님의 삶에 깊은 영향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1950년 제대 후 복교하여 학업을 마친 레이니 목사님은 예일 신학대학원(Divinity School)에 입학해 1954년 신학사(Bachelor of Divinity)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1970년까지는 신학대학원의 학위가 신학사였으며, 1970 미국 신학교 연합회의 결정으로 Master of Divinity 개명되었습니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제공하는 주간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이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3년간(1955~1958) 목회를 하신 레이니 목사님은, 신학이란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머리와 가슴을 연결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관점을 늘 견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일대학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공부했고, 1959년에는 이미 가정을 이뤄 세 자녀를 둔 상태에서 선교사로 한국에 가셨습니다. 이는 1940년대 말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한국인의 정리(情理)와 예의 있는 품격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경험에서 비롯된 결정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도착한 레이니 목사님은 한국기독학생회(Korean Student Christian Federation)를 지도하는 한편,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의 부교수로 종교학을 강의하셨습니다. (연세대학교는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되며 새로 지어진 교명입니다)   

저는 1957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이 미국인 선교사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였습니다.

레이니 목사님은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changing my thinking about the world)를 자주 언급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경험을 안고, 목사님은 5년간의 한국 사역을 마친 뒤 다시 예일 대학원에 입학해 기독교윤리를 전공하고 2년 만인 1966년 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목사님은 밴더빌트 대학의 신학부 교수로 임용되어 기독교윤리와 감리교(Methodism)를 가르치다 1969년, 명문 사립대학인 에모리 대학교의 캔들러 신학부(Candler School of Theology) 학장으로 초빙되셨습니다. 교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학장으로 초빙된 것은 레이니 박사님의 신학자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후 1977년까지 에모리 대학 신학부는 훌륭한 교수진을 초빙하며 감리교 신학교로 크게 발전했고, 특히 신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발전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에모리 대학교가 신임 총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는 여러 후보 가운데 레이니 박사님을 신임 총장으로 선임했습니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16년간 총장으로 재임하신 레이니 총장님은 에모리 대학교를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총장님의 비전과 리더십 아래 에모리 대학교는 우수한 교수진과 대학원을 갖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레이니 총장님의 비전과 업적에 대해서는 에모리 대학교가 서거 후 발표한 추모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레이니 박사님의 미국과 한국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공헌은 이곳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북미기독학자회(Association of Korean Christian Scholars in North America)

이제 제가 레이니 목사님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된 과정과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겠습니다.
1967년 감사절 주말, 미국과 캐나다에 유학 온 기독교인 교수, 목회자 그리고 학생들이 피츠버그 신학교(Pittsburgh Theological Seminary)에 모였습니다. 감리교 선교부와 북장로교 선교부 후원으로 마련된 이 회합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한국 동포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에 기독교인 유학생들은 서로 유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그 일환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문제와 조국 한반도의 문제를 연구하고 함께 나눌 <북미 기독학자회(Association of Korean Christian Scholars in North America)>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5월 말 주말에 모이기로 결의했습니다. 이 단체는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비롯해, 1980년대에는 인권과 평화통일 운동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응답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북미 기독학자회 초기 참석자 중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은 한완상 박사이며, 서광선 박사님은 몇 년 전 서거하셨습니다.

기독교 윤리학 교수인 존 스웜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에서 출범한 국제적인 종교적 비폭력 평화운동 단체인 ‘Fellowship of Reconciliation’의 회원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평화운동에 참여해 온 스웜리 교수님은 북미 기독학자회 대회가 끝난 후 미국 내 평화운동가와 동포 학자들을 포함한 30여 명이 참여해 ‘American Committee on Korea’를 구성하고, 미국 정계에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한편, 스웜리 교수님은 미국 미주리주 센트럴 메소디스트 대학교(Central Methodist University) 사회과학부 교수와 명예교수로 재직하신 미주 통일운동의 선각자 선우학원 박사님과도 교류가 있었습니다.

1994년, 스웜리 교수님이 북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셔서 5월에 평화 통일단을 구성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선우학원 교수님은 일본 주재 미 대사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가셨고, 스웜리 교수님은 저와 함께 서울에 들러 외무부 장관과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레이니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세 사람, 대사 레이니 박사, 은퇴 교수 스웜리, 그리고 저 윤길상은 모두 연합감리교 목사였습니다.

스웜리 교수님은 이 자리에서 북 방문 성과를 설명하시고, 한반도가 여전히 휴전 상태에 놓여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핵물질을 제조하고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의 사찰을 거부하며, IAEA의 탈퇴까지 선언한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셨습니다.

당시 레이니 대사님은 우리 일행에게 점심까지 대접하시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미국이 북과 외교 관계를 맺는다면 레이니 박사님께서 북한 주재 첫 미국 대사가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018년에는 세계감리교협의회(World Methodist Council)가 주최한 ‘Korea Peace Conference’에 레이니 박사님이 참석해 큰 울림을 주는 연설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뵙고 인사를 나눈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중요한 소식이 있을 때면 몇 차례 이메일로 연락드리곤 했지만, 직접 다시 뵙지는 못한 채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미국 감리교회는 1884년부터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 헌신적인 선교사들을 꾸준히 파송했습니다. 그분들은 각자 받은 은사를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헌신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후원했고, 해방과 분단, 그리고 끔찍한 전쟁을 겪은 우리가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원했습니다. 특히 70여 년 동안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이루어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돕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레이니 목사님 역시 선교사로, 그리고 주한 미 대사로 한국을 위해 특별한 공헌을 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목사님의 명복을 빌며, 자녀들과 손자녀를 비롯한 모든 후손이 목사님처럼 개인적인 성결을 사회적인 성결로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구현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레이니 목사님의 삶과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인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484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개체교회
122년의 역사를 지닌 LA한인연합감리교회가 지난 8월 8일 ‘헬로 네이버(Hello Neighbor)' 지역사회 초청 행사를 열고 이웃을 향한 새로운 사역을 펼쳤다. 사진은 LA한인연합감리교회 전경. LA한인연합감리교회 제공.

지역사회를 향한 환대의 사역, '헬로 네이버'

122년의 역사를 지닌 LA한인연합감리교회가 지난 8월 8일 ‘헬로 네이버’ 행사를 열고 지역 주민들과 한국 문화를 나누며 지역사회를 품는 교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인권
돌베개에서 출판한 정병준 교수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표지와 뒷면. 사진, 김응선(Thomas E. Kim)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조국(祖國)을 찾아 헤맨 경계인,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딸 현앨리스는 조국(祖國)의 해방을 꿈꾸었지만 남과 북, 미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다. 한 재미 한인의 시선으로 그녀의 비극적 삶을 따라가며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전도
8월 3일부터 6일까지 어퍼뉴욕 연회 로체스터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한인연합감리교회 동북부연합회 목회자가족여름수련회에서 주강사인 김정 교수가 폐회예배 중 성만찬에 앞서 빵을 오른손으로 받아 잔에 찍는 방법을 강미영 목사와 함께 시험을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신세계 목사, 한인연합감리교회 동북부연합회.

‘처음 그 예배’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8월 3일부터 6일까지 어퍼뉴욕 연회 로체스터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한인연합감리교회 동북부연합회 목회자가족여름수련회에서 목회자 가족들은 초대교회 예배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과 목회 경험을 나누며 변화하는 한인 목회 환경 속에서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is an agenc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2026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