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자마자 온 교회가 떠들썩해졌습니다. 주일에 있을 빈대떡 바자를 준비하기 위해 온 교우들이 팔을 걷고 나선 까닭입니다. 힘깨나 쓰는 남자들은 녹두 불린 통을 이리저리 옮기고, 여자들은 녹두를 갈고 빈대떡에 들어갈 채소며 김치를 다듬느라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빈대떡 굽는 고소한 냄새는 온 동네를 진동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워진 빈대떡은 짝을 맞춰 포장되어 주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빈대떡 바자를 하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미리 주문한 빈대떡을 찾아가는 분들과 새로 주문하는 분들로 친교실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빈대떡이 떨어졌다는 말에 가슴 졸이던 분들도 냉장고에서 남은 빈대떡을 찾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빈대떡 바자는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또, 지난 주일에는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시는 김상철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순교"를 제작하신 김 목사님은 영화를 통해 "왜 그들은 가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한국에서 선교하다 돌아가신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무덤을 비추면서 그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파송선교사로 러시아에서 순교하신 김영학 목사님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그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되어 순교하신 배형규 목사님과 심성민 형제의 육성을 들으면서도 그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왜 그들은 가야만 했는가?" 영화를 보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씩 둘씩 풀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곳에 갔고, 그 사랑 때문에 그곳에 머물렀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 당하셨습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는데도, 얼마든지 다른 길로 돌아설 수 있었는데도,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열렸던 빈대떡 바자와 오후에 상영된 "순교' 영화를 보면서 '빈대떡'과 '순교'라는 두 단어가 제 머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가 어느 순간 합쳐지면서 '빈대떡'과 '순교' 사이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이 두 말의 공통점은 '고귀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빈대떡을 부쳐 선교비를 모으는 일에는 '고귀한 헌신'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순교'는 그리스도인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헌신의 표현입니다.
둘째, 이 두 말의 공통점은 '절대 순종'에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데, 그저 선교의 사명을 다 하고자 빈대떡을 부치는 모습을 통해 절대 순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또 믿음을 지키고자 죽음의 길로 나갔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절대 순종의 믿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셋째, 이 두 말의 공통점은 '하나님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누가 그 시간에 나와 빈대떡을 부칠 것이며, 왜 온 교우들이 둘러앉아 고된 일을 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겠습니까? 남은 교우들 때문에 끝까지 교회를 지키면서 순교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도 '하나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순교에는 두 가지 순교가 있습니다. 신앙을 증명하고자 피 흘려 목숨을 바치는 '적색 순교'와 피 흘림은 없지만 날마다 자신을 죽여 그리스도를 따라 삶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백색 순교'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적색 순교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적색 순교자'들은 이미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지는 '백색 순교'의 삶을 평소에 실천하신 분들임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순교'의 의미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빈대떡 바자'를 통해 백색 순교의 의미를 되새겼고, '순교' 영화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빈대떡 바자'를 통해 '백색 순교'의 삶을 실천하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이창민 목사, 로스엔젤레스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5년 11월 16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