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자료를 이용한 배타적인 정치와 돈

(편집자 주: 본 기사는 8월 7일 연합감리교뉴스에 실린  WCA연회들 세계선교분담금 미납에 대한 반론입니다.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하루 앞당겨 싣습니다. 이 기사의  일부 내용은 연합감리교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부 돈에 관한 얘기였다. 이 기사는 가장 최근 <메인스트림연합감리교회(MainstreamUMC)>에 실린 최신 기사의 제목으로 여겨도 될 정도로 될 정도였다. 물론 돈이라는 주제 속에는, 권력과 지배의 이슈가 숨겨져 있다. 여기서 가장 중심되는 질문은, 성소수자들의 결혼과 안수를 핑계로, 미국 밖에 있는 수백만에 달하는 연합감리교인들을 배제시키려 하는 것은 아닌가이다.

혼란스러운 숫자들로 맹공격을 가한 마크 홀랜드 목사의 글이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중도 및 진보 연회가 우리 교단의 기금을 조달했으므로 자신들이 이 교단을 제어해야 한다. 숨은 뜻은, 홀랜드 목사가 웨슬리안언약협의회(WCA)를 공격하기 위해서 “WCA 연회”라고 부르는, 전통주의자들이 세계선교금을 납부하는 비율이 총액을 기준으로 할 때, 중도와 진보 연회들보다 현저하게 적으며, 그것은 연합감리교단에 충성하지 않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충성하지 않는 전통주의자들은 아예 연합감리교회를 떠나야 하며, 어차피 그들은 교단을 재정적으로 돕지 않으면서, 그들의 구태의연한 신학적 관점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크 홀랜드 목사는 이 최근의 <메인스트림UMC>의 블로그에서 WCA연회들 세계선교분담금 미납이라는 글을 통해서 총회 대의원 선출 보고서와 각 연회의 선교분담금 납부 금액과 그 비율을 비교하면서 이처럼 재정보고서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현실이란 더욱 복잡하며 미묘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연회의 선교분담금 납부에 관하여 진지하게 분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확고하게 전통주의를 지지하는 연회이면서 선교분담금 전액을 납부하는 연회들도 있다. 그중 한 연회는 113%를 내는데, 이것은 모든 연회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그리고 진보주의 연회 중에도 대부분 연회보다 선교분담금 납부 비율이 낮은 연회가 있다. 연회들이 선교분담금을 전액을 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개 교회가 선교분담금 전액을 내지 않는 경우로부터, 교단이 연회의 선교분담금을 프리즘의 양단인 진보주의와 전통주의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일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홀랜드 목사의 속임수 같은 말장난과는 반대로, “WCA 연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WCA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WCA는 연회 재정에 관여하지 않을뿐더러, 일부 진보주의 지도자들이 분담금을 내지 말라고 요청한 것과는 반대로, 분담금을 내지 말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헌금 결정은 몇십만 명의 연합감리교인들 개개인과 몇천 개의 회중에 의해 결정된다.  전통주의 측에는 분담금을 보류하거나 다른 곳에 헌금하라고 요구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세인트루이스 특별총회 이후, 몇몇 진보주의자들이 최근에 행한 움직임과는 반대이다. 어느 연회는 교단에 보내는 선교분담금을 보류하는데 관련된 공적인 규정까지 정했다고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볼 때 홀랜드 목사가 현란한 색깔로 나누어 그려놓은 미국의 지도는 과장이다. 숫자와 상관없이, 올바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홀랜드 목사가 제기하는 논쟁 아래 감춰져 있는 전제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한 가지 전제는 돈을 주는 사람이 교단을 좌지우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권력을 의미한다. 미국 내의 진보주의자와 온건주의자들을 겁나게 하는 것은 앞으로 8-12년 안에 아프리카의 교인 수가 증가하여, 북미의 쇠락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균형이 깨지는 것이고, 그 시점에서 아프리카 교인들이 교회의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예산 관련 결정을 컨트롤할 것이며, 이 돈의 관리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많은 미국인이 전 세계적인 교단인 연합감리교회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프리카 교회의 지도자들은 미국 교회가 선교 외의 사역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매우 고마워한다. 특히 목회자 훈련, 보육원, 병원, 학교에 중점을 두고 있고, 그 도움과 선한 뜻을 악용하여 우리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동등한 자격으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돈, 정의, 그리고 그 관리는 공개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이것들은 성경 전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성서적이고 윤리적인 현안들이다. 

그러나 재정과 권력에 관한 관심사나 우려가 연회나 전체 교회 레벨에서는 조목조목 따져지면서, 개 교회 차원의 문제 제기는 용납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오랫동안 전통주의 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헌금하면 교회가 알아서 그 돈을 가장 좋게 사용할 것을 믿으라는 말만 계속 들어왔다. 개 교회 교인이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헌금을 사용하고 싶어 하면, 교회 지도자들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싫은 얼굴을 했고 완강히 거부했다. 개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리할 수 없다. 선택은 단 하나다. 헌금하느냐 마느냐와 그리고, 당연히 얼마를 하느냐이다.

오랫동안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헌금의 용도와 교회의 정치적 위치를 지켜본 후, 많은 전통주의자는 그들의 헌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거나 헌금 액수를 줄였다. 세인트루이스 특별총회에 대한 답으로, 다수의 진보주의자도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교단의 입장에 항의하는 의미로 같은 선택을 했다.

이것이 현재 교회의 분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진보주의와 온건주의의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의 사역 중, 성소수자와 그들의 동조자들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재정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잘못된 청지기의 모습이라고 믿는 것이 명백하다. 그들은 전통주의자들이 양심에 어긋나는 교회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헌금하지 않았던 오랜 관행을 지금 행하고 있다.

홀랜드 목사는 말하기를, “이러한 (전통주의) 연회에 속한 적지 않은 개 교회들이 세계선교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교단을 떠나는 것이 그다음 단계이다.” 이 말은 현재 진보적인 연회와 개 교회가 선교분담금을 보류하면서 선교분담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아담 해밀턴 목사가 수백만 달러의 선교분담금 중 그 절반을 연말까지 보류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교회는 세계 선교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연합감리교단을 떠날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소위원회를 조직한 여섯 연회는 교단의 세계 선교에 투자하고 않는다는 말인가?

홀랜드 목사의 이러한 서술은 그의 수사학적 과정의 위치를 바꾸면 허위임이 드러난다.

굿뉴스(Good News)는 연합감리교인들이 그들의 양심에 거슬리는 사역을 재정적으로 지지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조항을 지지한다. 홀랜드 목사는 전통주의자들만 이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 척을 말고, 또 양심에 따른 청지기 사역이 교단에 충성적이지 않으니까 우리의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하지 마라.

교인들이 헌금을 보류하거나 다른 데로 돌리는 이유는 교단에 대한 충성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 지도층과 헌금의 용도 결정에 대한 신뢰도의 문제이다. 

연합감리교구제위원회(UMCOR)는 세계의 모두로부터 대단한 지지를 받는다. 왜냐하면 이 기관은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목적에 대해서는 거의 다 동의한다.  헌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위탁하신 자원을 잘 사용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점점 더 교회에 “백지 수표”를 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기서 홀랜드 목사가 주장하는 논의의 여지가 있는 두 번째 전제를 보자.

홀랜드 목사는 중도/진보 연회들이 교회 전체 예산의 78%를 충당한다는 확실하지 않은 주장을 하고, 그러므로 중도와 진보파가 교리와 교회의 나아갈 바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연합감리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책임감 있는 중도주의와 진보주의 지도자들은 이것이 사실인 것을 안다. 즉 달러가 투표권이 아니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다. 부유한 서구가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목소리를 덮어버릴 수 없다.

홀랜드 목사는 국가의 경계선을 따라 범세계적인 교단을 갈라놓으려고, “미국총회를 고려해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쓰면서 그의 정서를 명백히 알렸다. 그의 최근의 글 역시 같은 사고방식으로 미국의 물질적 자원에 대한 말들로 다른 나라의 연합감리교인들을 무시했다. 이것은 다른 많은 곳에서는 전형적인 식민주의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범주를 정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자원으로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한다고 나서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권력 남용을 개 교회에서는 비난한다.  전체 교단에서도 같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그 글은 WCA가 현재의 선교분담금 부족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반대하면서 WCA가 그 부족함을 메꾸려고 기금을 모으는 것을 비난한다. 여기서, 홀랜드 목사는 사과와 오렌지를 혼동하고 있다. 교단의 선교분담금 부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분별 있는 중도와 진보적 진영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안다. 이것은 개 교회와 연회들의 각각의 신학적인 차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의 전체 선교사역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것은 진보 및 중도파 교인들과 연회들이 이미 아프리카와 러시아에 지정된 선교기금을 약속했었는데, 2019년 특별 총회에서 교회가 전통적인 성서에 따른 결혼과 인간의 성을 채택한 이후 갑자기 기금 납부를 중지했고, 이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WCA 해외지역총회 선교 기금이다. WCA가 이 부족함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진보주의와 중도주의자들이 그들의 양심에 따라 내린 결정으로 인해 해외 지역총회의 선교 사역을 위협하는 것을 돕고자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큰 그림은, 같이 살며 같은 선교 사명을 공유하는 교회 안에 서로 용납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미국 내의 감리교인들은 성소수자와 옹호자들에게 해악을 가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믿어지는 일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동시에, 또 다른 미국 내 많은 감리교인은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성윤리를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유일한 입법 기관인 총회를 통해, 정해진 법을 불복종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교회의 구조를 더는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중도 및 진보주의자들은, 우리의 미국 밖의 교인들을 우리와 동등하지 않다거나, 교회 치리 과정에 온전히 참여할 가치가 없다고 경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미국 밖의 형제자매들은 우리의 신학과 선교사역의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근시안을 교정해 준다. 우리도 그들에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지역총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가치가 있고 연합감리교회의 세계 선교의 동등한 동반자이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많은 돈을 지참하고 테이블로 모이느냐는 것은 상관없다.

영문기사 원문으로 보기

탐 램브렉트는 굿뉴스의 부사장이며 웨슬리안언약협회(Wesleyan Covenant Association)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교단
중도, 진보, 그리고 전통주의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연합감리교회가 원만하게 둘 혹은 그 이상의 교단으로 나뉠 수 있도록 하자는 초안을 만들었다. 그 안건은 모임이 열린 장소를 따서 인디애나폴리스 플랜이라고 부른다. 사진 제공 윌리암 슈튜겔, 픽사베이의 허락을 받아 사용함. 도안 연합 감리교회 뉴스 서비스 작성.

인디애나폴리스 플랜이 공개되다

지난 6월 말 모임을 가진, 교단의 중도와 전통주의 그리고 진보주의를 대변하는 12명의 모임은, 연합감리교회의 동성애에 관한 갈등은 화해할 수 없는 사안이며, 차라리 사이좋게 다른 교단으로 나뉘는 편이 낫다는데 동의했다.
교단
미국 내 연회별 세계선교분담금 지급 내역 지도. 그래픽제공, MainstreamUMC.

WCA연회들 세계선교분담금 미납

메인스트림UMC의 마크 홀랜드 목사는 해외지역총회와 함께 동성애를 반대하는 WCA 의 10개 연회가 세계선교분담금 납부에 관한 한 최악의 연회들이라고 주장한다.
교단
2019 동오하이오연회 아침 모임의 일부를 기도의 시간으로 가졌다. 사진 제공 브레트 헤더링톤, 동부 오하이오 연회.

미 연합감리교회 연회들, 미래를 고민하다

올 여름 미국 연합감리교인들은 각 연회별로 교단의 방향과 장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