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와 교회 윤리

(편집자 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감염병 대유행의 위협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고, 바이러스가 완전히 퇴치되지 않는 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연합감리교뉴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의 기독교 시리즈’를 매주 연재한다.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전 협성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한 버클리신학대학원의 김영일 객원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사진 제공, 김영일 교수.사진 제공, 김영일 교수.

들어가는 말

지난 1월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동제한 및 자가격리 등은 대부분의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놀랍게 성장했다. 기독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대형 교회를 출현시켰을 뿐 아니라, 예배당 건축에 돌풍이 불고, 선교사 파송의 물결 등을 일으켜 세계에 그 위상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승세는 1990년대부터 둔화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과연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해 왔을까?

 

교회 됨의 윤리   

<감리교에 관한 고찰(Thoughts Upon Methodism)>이라는 존 웨슬리의 설교를 보면, 그는 미래의 감리교회를 염려했다.

"나는 감리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들이 능력 없는 죽은 종파로 남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시작했던 교리와 정신 그리고 훈련을 게을리한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의 감리교회에서 그가 염려했던 현상이 보이지 않는가?

웨슬리가 실행했던 교리와 제도는 물론, 그의 영원 구원과 사회적 구원에 대한 열정 및 신앙운동과 사회변혁을 위해 불타던 열의는 이제 미지근한 실정이다.

미국의 주요 개신교는 미국 역사의 초기부터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핵심을 이루었으며, 이 나라의 정치·사회·문화에 올바른 기풍을 만들어 사회 질서에 활력소가 되어 왔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복음을 통한 삶의 의미와 평화를 공급할 뿐 아니라, 윤리적 규범과 가치관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것도 포함된다.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미국 사회에 근면과 절약 그리고 정직이라는 덕목을 제시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외면 당하거나, 비판받는 실정에 이르렀다. 교회는 성스러움과 사회적 책임을 잃고 있음에도, 교만의 벽과 무관심의 울타리에 갇혀 가족 잔치나 내 몸 보살피기 등 교회 내 자체 프로그램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구석구석에서 소리없이 우는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이 무뎌졌거나 또는 들어도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는 바로 이런 교회를 향한 외침이며, 교훈이 된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새로 시작한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격주로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어거스틴의 신학에서 사랑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으로, 오직 이웃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비전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무관심을 죄라고 하며, 침묵을 지킨다면 그 침묵이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의 틀 속에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할 뿐, 사회에 대한 책임에는 무관심인 경우가 허다하다.

웨르겐 몰트만은 ‘열린 교회(The Open Church)’에서 교회가 두 가지 죄, 즉 교만과 무관심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이며, 무관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의 교회에는 범접할 수 없이 집중된 권위와 자만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리차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말하는 5가지 유형 중에 첫 번째인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의 유형에 속하는 현대의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포괄적이 아닌 배타적이고 선별적인 태도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범하고 있는 비윤리적인 태도가 아닌가?

2020년 봄,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관한 여론조사의 응답 결과는 “신뢰한다(매우/약간) 31.8%, 신뢰하지 않는다(별로/전혀) 63.9%”였다. 즉, 일반인 3명 중 1명 정도만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말이다.

또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2020년 초반에 시행한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신뢰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신뢰 32.9%, 불신 65.3%”가 나왔다.

위의 두 여론조사 결과 외에도, 한국교회의 사회문제 해결이나 사회통합에 대한 기여도에 관한 질문에도 “기여하고 있다(매우/약간) 31.6%, 기여하지 않는다(별로/전혀) 64.7%”의 응답 결과를 얻었다.

우리는 이러한 여론조사를 통해 교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각을 직감할 수 있다.

 

나가는 말

갑자기 출현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세계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불안에 떨고 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친교의 단절로 사람들은 심리적 위기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 교회는 암에 걸려 있다. 서서히 말라가고 쪼그라들어 결국 죽게 된다.

이런 병의 증상은 오래전부터 서양교회에 나타나던 현상인데, 언젠가부터 한국교회로 감염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젊은이들을 위시해 하나둘 떠나가고, 사회는 교회를 조금씩 더 외면하고 있다. 교회가 교만과 무관심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회의 교회 외면 현상은 계속되고 강화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공동체적인 존재다. 교회는 더더욱 그렇다. 교육, 친교, 선교, 복음 선포 등의 교회가 지닌 사명은 호혜적 관계(reciprocal relationship) 속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도가 함께 모여 교제할 때, 서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며 신앙을 키운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 상황에서 상호작용 즉 상호관계성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갈 것인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몇 가지 처방을 제시해 본다.

첫째는 “웨슬리 정신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Wesley’s Spirit)”이다.

한마디로, 웨슬리 부흥 운동으로의 회복이다.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나는 지금이 바로 현대 교회가 각성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웨슬리의 탁월한 면은 그의 영원 구원을 위한 신앙 부흥 운동과 사회 변혁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다. 그는 50여 년간의 목회 활동을 하는 동안, 말을 타고 혹은 도보로 약 40만 km의 거리를 다니며, 일주일에 평균 15번씩 총 4만 편이 넘는 설교를 했다. 웨슬리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의 빈곤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새 계명에 근거한 윤리적 실천,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실현이다. 그의 생애와 목회 그리고 신학의 초점은 “거룩한 삶의 실현”이며, 이것이 자신의 몸만 보살피는 현대 교회가 배워야 할 목회 철학이자 영성이다.

둘째는 조직력이 탁월한 웨슬리가 구상한 속회제도(class meeting 혹은 cell)를 재활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제도는 사실 현재 모든 교단에서 실행하고 있을 만큼 필요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3-5명 단위의 소규모 속회를 운영하면 대규모로 할 수 없었던 상호작용을 통한 친교와 영성 함양에 좋을 것이다.

셋째는 휴대폰을 이용한 목회다.

코로나가 교회에 끼친 영향 중 하나는 비대면 예배가 통용되어 주일예배 등이 온라인이나 가정 예배로 대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예배자는 자신이 소속된 교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채널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골라보며, 비교해 보기(shopping around)를 할 가능성이 허다해진다.

우리 기독교의 전통이자 교회의 범주 이탈을 막으려는 수단일 수도 있었던 주일이라는 개념은 “주일”이 아닌 “아무 때나 어디서나”라는 변수로 파생되고 있기에, 예배에는 더욱더 양질의 영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의 본질 중 하나인 “공동체 의식”과 종교의 기능 중 하나인 “소속감”을 굳건히 유지하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그중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사용한다. 휴대폰 앱을 이용한 공동체의 연대를 견고히 할 수 있는 심층화된 목회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일부에서 실행하고 있는 “건물 없는 교회,” “온라인 교회”도 대중화 되고, 유행할 수 있다.

넷째는 코로나 시대에는 “흩어지는 교회”에 치중해야 하겠다.

교회의 교육과 친교 그리고 복음 선포 등은 교인들이 자동차에 가솔린을 공급하는 수단과 방법이며, 가솔린을 공급받은 교인들은 사회의 구석구석을 운전하고 다니면서 사회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 때문에, 흩어져서도 교인들이 계속해서 교회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겠다.

 

시리즈 보기

뉴노멀 시대의 교회

코로나 19시대의 목회적 돌봄

코로나 시대의 선교 : 희년을 상상하라

결국 공동체가 희망인가?

코로나 시대의 여선교회

성서로 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생명 생태계, 하나님 나라는 계속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광야로 내몰려 얻은 신학적 반성

거꾸로 자전거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목회 1

거꾸로 자전거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목회 2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이메일을 보내거나 (615)742-5109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읽기 원하시면, 격주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신청하세요.

사회적 관심
대뉴저지연회의 한국계 미국인 목회자들이 아콜라연합감리교회에 모여 인종차별에 항거하는 의미를 담은 촛불기도회를 열었다. 사진, 김재연 목사(Thiells Garnerville UMC)

나는 침묵...했다

침묵하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부딪힌 현실에서 벗어나, 인종차별과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외침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한명선 목사의 시를 소개한다.
개체교회
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한 장면 갈무리.

부활절의 소리굽쇠

부활절은 잃어버린 본래의 방향을 다시 찾아, 필리아에서 아가페로, 부인에서 믿음으로, 상처에서 치유로, 실패한 제자에서 신실한 제자로 옮겨가라는 초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리굽쇠 소리에 공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개체교회
이창민 목사가 담임하는 LA연합감리교회의 교인들이 친교실에 모여 선교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창민 목사.

거꾸로 자전거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목회 2

절망의 늪과 희망의 늪은 같은 곳입니다. 그 늪에 빠진 사람에게 목표를 상실하는 순간 '절망의 늪’이 되지만, 진리의 길이라는 목표가 있으면 그곳은 ‘희망의 늪’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