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데 왜 기도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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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소원성취의 도구?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독교에서도 역시 기도를 강조한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영적 감응력이 뛰어나고 신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신의 세계에 가까이 가 있다는 것은 종종 남다른 기도의 효험으로 증명된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신령한 기도를 통해 기도응답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된다. 마치 무당이 특별한 주술로써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신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과 같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일종의 그런 비법을 알고 사용하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기도가 그런 것인가? 나의 노력으로 신을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기도일까? 기독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기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순종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기도의 초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요 나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소원성취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통 혹은 사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성경은 대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으로 표현한다. 그 이유는 이 사랑이란 개념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쌍방의 거래가 아니라 사랑의 사귐인 것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대상과 끝없이 대화하고 교통하고 언제나 함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것은 우선적으로 서로간의 정신적, 감정적 교통과 사귐이지 절대로 상대방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친구 중에서도 사랑하는 친구는 특별히 만날 이유가 없어도 매일 만나고 싶고 매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이렇게 깊은 사귐이고 매일의 교제이다. 기도의 성격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는 도구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와 사귐인 것이다.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의미

이렇게 기도가 나의 소원성취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이라면, 그러면 열심히 기도하라는 성경의 많은 예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과부를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과부가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호소함으로써 마침내 공정한 재판을 이끌어 내듯이 우리도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이 나온다. 예레미야 33: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7장에도 보면 열심히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의 응답이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기도의 응답이 내릴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마태복음 6장과 10장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분이고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우리가 뭘 필요로 하고 무슨 기도를 할 것인지까지 다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사는 걱정을 하며 그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래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자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듯한 구절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쪽에서는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며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까?

우선 하나님께 끈질기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치 아이가 부모가 들어줄 수 없는 것을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의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도 들어주실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사귐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은 알고 계신데 기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여기에 기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응답해 주시는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그걸 다 알고 계시다고 하는 하나님께서 미리 응답해주시면 안 되는 것인가?” 맞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셔도 그것이 응답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든지 우연으로 여긴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의 건강, 가족, 교회, 친구 등등 우리가 미처 기도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복을 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그런 복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영안이 열리기까지는 축복으로 주신 것들을 보고도 그걸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복으로 알고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 삶에 이루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기도의 목적이 나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사귐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뭔가를 달라고 하기 이전에 평소에 하나님과의 사랑의 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귐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렇게 응답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교회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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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교회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인공지능시대 시대 신학하기 3: 새 하늘과 새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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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구호
메수트 한제르(아버지)가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슈의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매몰된 딸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잡고 있다. 현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많은 사람이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있다. 튀르키예 지진 전문가는 최대 20만 명이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사진은 2월 11일 방영된 KBS의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영상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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