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돈말결한 태베필인스캄을 섬기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벗 한윤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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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기사는 연합감리교뉴스가 교파와 종교,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소외된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을 심층 취재해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시리즈의 번째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외교관 역할을 담당하는 한윤수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한윤수 목사(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가 방문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한윤수 목사(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가 방문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2007년 경기도 화성에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이하 센터)’가 설립된 이후로 그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환경이 달라졌다. 동남아 출신의 ‘오리지널’ 외국인 노동자들의 떼인 돈을 받아주고, 매 맞은 사람이 치료받게 해주거나 열악한 직장에서 더 나은 환경의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는 등 이 센터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활 현장이나 노동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함께 해결하고, 그들의 보호자이자 인권 보호 및 취업을 돕는 든든한 '빽'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이 센터를 설립한 한윤수 목사는 억울한 외국인 노동자가 있으면, 본인이 직접 사업장을 방문하여 중재에 나서거나 센터 직원을 노동자와 함께 보내 언어 문제에서도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을 지원해왔다.

한 목사는 사업장을 방문하여 ‘사장님’에게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리며 읍소하기도 하고, 못 들은 척 외면하는 ‘사장님’에겐 관련 법을 지키라고 따지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대리해 소송을 걸기도 하여, “외국놈 편만 드는 악질 목사”라는 욕을 수도 없이 먹고 있지만, 그의 곁에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직무에 성실한 공무원, 무료 변론을 마다치 않는 변호사, 통장도 없는 외국인을 위해 위법을 감수한 은행원, ‘사장님’ 쪽 해결사에 맞서 기꺼이 어깨 노릇을 맡아주는 해병전우회장, 좋은 일 한다며 사무실 임대료를 40%나 깎아주는 건물주 등 정 많은 한국인 천사가 여럿이다.

어떤 소송은 해를 넘기기도 하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법과 시간에 쫓긴 사업주 쪽이 손을 들게 된다며,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한국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고 한 목사는 말한다.

센터가 생기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고군분투한 그 시간들 덕일까? 이제 화성에는 임금을 떼먹는다거나, “아니, 외국인 노동자한테도 퇴직금 주냐?”라고 되묻는 사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윤수 목사는 “연미복을 입은 근사한 외교관”이 되고 싶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한 엘리트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외교관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를 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고,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외무고시를 치르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운동권이 사랑했던 출판사인 ‘청년사’를 차렸다. 라틴아메리카의 빈민 르포 <산체스네 아이들>, 멕시코 혁명가의 일대기 <판초 비야> 등을 내 1970년대 노동야학 붐을 일으킨 데 일조한 곳이다. 청년사를 운영하던 한 목사는 1980년 초, 노동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0여 군데 야학에서 모은, 10대 노동자 33명의 고달픈 현실을 담은 수기를 책으로 냈다.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은 1970년대 10대 노동자 33명의 수기 모음집으로1980년 출판된 책이다. 이 일로 한 목사는 자신의 집을 팔아야 했고, 계엄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다.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은 1970년대 10대 노동자 33명의 수기 모음집으로 1980년 출판된 책이다. 이 일로 한 목사는 자신의 집을 팔아야 했고, 계엄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다.  

“피로제와 타이밍 먹여가며 20시간씩 일 시키면서 또 잔업까지 시키고, 화장실 자주 갈까 봐 국 없는 밥 주던 노동 현실과 전기료 아낀다고 숙소 불을 꺼 가로등 밑에서 공부해야 했던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죠.”

당시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신군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권 정치 세력을 탄압하며 공안 통치를 강화하던 시점이었다. 노동의 노자만 꺼내도 빨갱이니, 용공 분자니 하던 시절에 그런 책을 내는 것은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책이 나온다고 해도 바로 판금되어 독자들 손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자신만 고문을 비롯해 온갖 고초를 겪을 것 같았지만, 그 책을 출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한 목사는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책이 바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었을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청년사)이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책은 나오자마자 판매 금지가 되었고, 집까지 팔아 조달한 출판 비용은 거의 회수되지 못했다. 한 목사는 2,000부를 찍던 당시 관행을 무시하고, 자신의 우이동 집을 팔아 2만 권을 찍었고 200여 교회의 청년회를 통해 배포했다. 군사 정권은 역시나 가만있지 않았다. 당시 책의 배포를 맡은 대학생들도 체포를 피해 전국으로 흩어져 도피 생활을 해야 했고, 그나마 얻은 책의 판매 대금은 그들의 도피 자금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자신을 망하게 한 이 책에 수기를 쓴 어린 노동자 33명에게 한 목사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인세를 지급했다.

1980년, 한윤수 목사가 야학에서 공부하던 어린 노동자들의 수기를 엮어 출간한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에 실린 글을 모으는 데 도움을 준 이규 씨와 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서점에 유통되기도 전에 계엄 당국에 의해 판매 금지되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1980년, 한윤수 목사가 야학에서 공부하던 어린 노동자들의 수기를 엮어 출간한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에 실린 글을 모으는 데 도움을 준 이규 씨와 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서점에 유통되기도 전에 계엄 당국에 의해 판매 금지되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한윤수 목사는 그 이후로도 여러 종류의 사업을 벌였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1997년 한국에 이른바 ‘IMF 사태’가 터졌다. 외환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사태와 금융 시스템 붕괴로 IMF(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한 목사의 인생도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에 안 가본 곳 없이 도망을 다녀야 했던 한 목사는 가족, 특히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는 교회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기독교 신자인 부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어서였다. 한 목사는 유아세례를 받았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25년 동안이나 멀리한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1998년 2월의 일이다.

한 목사는 자신을 “일종의 ‘IMF 신자(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종교에서 안식을 찾으려는 이들을 비유한 말)’”라고 고백했다. 교회를 찾은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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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왔더라고.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빚쟁이들이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하는 거야.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인 거여. 자기네들도 꺼림칙할 거 아녀. 천당이 없을 것 같지만 만약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해코지하다가 나중에 죽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확실히 목사가 될 사람한테는 덜 하지, 쪼는 게···.”1)

지지리 똥손으로 실패만 거듭하던 사업가 한윤수는 2002년 빚쟁이를 피해 장로교신학대학에 입학했고, 2007년 목사가 되었다.

“예수의 마지막 3년간의 행적, 거지·나환자·어부들을 살렸던 기억을 활성화하는 게 종교라면 나는 명백한 종교인이었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 있다. '한 손엔 신문, 한 손엔 성경.' 그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말은 좋아한다. 종교가 개인 수양에만 집중하는 건 반대다”라고 한 목사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그리고 약자와 버림받은 자를 위한 신앙적 실천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은 한 목사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7년 5월 아무 연고도 없는, 단지 한국에서 ‘진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경기도 화성시(華城市)로 향했고,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옆 도시 안산에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있지만, 그들 중 절반은 한국계 중국인인 조선족이다. 진짜 ‘외국인’은 아니다.

어떤 형태의 정부 보조금이나 도움 없이 시민 후원자에 전적으로 기반하여 운영되는 민간 단체인 이 센터가 섬기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동남아 6개국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출신으로, 그에 따르면 ‘태베필인스캄’이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요즘은 파키스탄과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센터를 자주 찾는다고 한다.

“3D 업종 등에서 일할 한국 사람이 없기에 필요에 의해 그들을 한국으로 불렀으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너희들 나라에 가만히 엎드려 있지, 왜 한국으로 왔냐는 식으로 불청객 취급을 하며, 보고 배운 것이 없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등 근거 없는 모함을 늘어놓기도 한다.”라고 한윤수 목사는 말한다. 

한 목사는 한국 도시의 사업장과 농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수만 개의 자동차 부품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 화성에 있는 조그만 공장 중 대다수가 외국인을 고용하여 그 부품들을 생산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일하기 꺼리는 3D (더럽고 dirty, 어렵고 difficult, 위험한 dangerous) 업종의 공장 대부분은 외국인의 손에 의지하고 있다. 3D 공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코가 마비될 정도로 냄새가 지독한 화학공장에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공장은 일하는 노동자가 전부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아니면 공장이 단 1분도 돌아가지 않는다. 유일한 한국인인 사장님도 지게차를 운전하며 일한다. 왜냐? 지게차를 운전할 줄 아는 외국인이라면 그런 공장에 애당초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한국인이 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굶어 죽으면 굶어 죽었지, 한국인은 그런 데서는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공장이 꽤 많다. 화학, 도금, 분체도장, 컬러시멘트, 연마, 프레스, 철강재 가공, 주물, 세척 등 냄새 나고, 먼지 나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고, 유독하고, 지나치게 덥거나 춥고, 너무 무거워 다루기 힘들고, 안전장치가 없거나 있어도 사용하지 않아서 다치기 쉽고,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공장에서 일할 한국인은 없다. 그나마 외국인마저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가니까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 외국인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목사에 따르면, “외국인을 많이 고용하는 게 남는 장사”란다.

왜 남는 장사가 될까? 물론 최저임금이 가장 큰 이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한다.

한 목사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젊은이를 취직시키려고 어느 회사를 찾았다. 그런데 가서 보니 대부분의 노동자가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태국,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왜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가 많냐는 한 목사의 질문에 회사 인사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야간작업이 많아 한국인들의 기피 직종에 가까운 우리 회사 같은 업종에서는 한국 사람 못 써요. 왜 못 쓰는 줄 아세요? 한국 사람은 돈 더 달라고 하고, 말이 많고, 결근이 잦거든요. 세 자로 줄이면 ‘돈말결’이죠.”

즉, 외국인 노동자는 3D 업종에서 일을 시켜도 돈 덜 줘도 되고, 말도 없으며, 결근도 없으니 ‘3D 돈말결’이라는 것이다.

2011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목사는 "난 이들이 해방되어야 전 인류가 해방된다고 생각해. 이들이 해방 안 되면 절대로 해방이 안 될 거야. 모든 인류가 해방되어야 자기 자신도 해방되잖아. 그러니까 해방될 때까지 계속 싸우면서 가는 거야"라고 말했다. 앞뒤 맥락을 보지 않고 이 말만 듣고서 한 목사를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러나 한 목사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주의자이며, 법치주의자다.

<오랑캐꽃이 핀다>는 한윤수 목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겪은 일을 적어둔 글을 홍윤기 교수가 모아 편집하고 책으로 엮은 것이다. 총 10권이며, 2023년 1월 하순에 출판될 예정이다.<오랑캐꽃이 핀다>는 한윤수 목사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겪은 일을 적어둔 글을 홍윤기 교수가 모아 편집하고 책으로 엮은 것이다. 총 10권이며, 2023년 1월 하순에 출판될 예정이다. 

지난 15년간 그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사역하면서,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선진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당하는 억울한 일을 대한민국의 법 제도와 공공기관에 호소하면, 대체로 합당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항상 법적 절차를 통해 일을 처리해왔다.  

대학 시절 연미복을 입은 외교관을 동경하여 외교학과에 진학했다가 현실에 실망해 전혀 다른 인생 행로를 걸어온 한윤수 목사. 그런 그가 지금 그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고, 사랑하게 만드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홍윤기 교수는 한윤수 목사를 이렇게 평했다.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응당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규범을 준수했을 뿐인데, 그로 인해 외국인 한 사람이 구원받게 되고, 더 나아가 그들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그들 나라에 있는 동네 사람 전체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국민을 ‘생명의 은인’으로 대하게 된다. 물론, 국가 간의 외교적 친선 관계는 각국 정부의 공적 외교 활동으로 형성되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윤수 목사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처럼 다른 나라의 국민과 맺는 다양한 우호적 관계를 통해 친밀함과 신뢰를 확보할 수도 있다.”

한때 연미복을 입은 대한민국 외교관이 되어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한윤수 목사. 지금 그는 말끔한 연미복 대신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고, 그들의 호소에 누구보다 따뜻하게 귀 기울이며,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민간 외교관이자 선교사로 활약하고 있다.

주 1) 오마이뉴스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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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이나 문의할 일이 있으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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