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바뀌면 안됩니다.

지난 5월 11일, 웨슬리신학대학원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거의 다 왔다 싶은 순간, 제 차 뒤에서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 따라오던 차가 제 차를 추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많아 서행 중이라 몸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차는 뒤 범퍼와 오른쪽 후미등 쪽이 심하게 상하였습니다.

며칠 후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지정해주는 바디샵에 수리를 맡기고 나니 수리하는 동안 타라고 렌트차를 주는데 현대 소나타였습니다. 지난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교회 집회 갔을 때 현대 미주 공장에 근무하는 교인의 호의로 현대자동차 공장을 견학해서 소나타 생산라인을 처음부터 견학한 적이 있고, 간간히 교인들이 운전하는 현대차를 승차해본 적은 있지만 직접 제가 현대차를 운전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소문대로 차가 참 좋았습니다. 승차감도 안락하고, 주행시의 파워도 세고, 연료소비량도 아주 좋았습니다. 13년 만에 새 차를 운전해서 그런지 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 내심 차 수리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응큼(?)생각도 들었습니다.

두주간이 조금 지나고 지난주에 차 수리가 다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렌트카를 반환하고 수리를 마친 제 차를 다시 받았는데, 흰색인 제 차 외장 색이 그렇게 하얗게 보이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흰색은 흰색인데 왠지 좀 칙칙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부분은 새 부품으로 교체하고 도장을 새로 해서 하얀데 거기만 하야서 그런지 다른 부분이 더 지저분하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려니 하고 차에 타고 시동을 거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엔진소리가 큰지... 전에는 이렇게까지 엔진소리가 거칠게 들리지 않았는데.. 혹시 이 사람들이 수리를 하면서 뭘 망가트렸나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하고 차를 운전해서 오는데 차가 또 왜 그리도 덜컹거리는지... 그리고 소음은 왜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물론 사고 나기 전에도 아주 조용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뭐가 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따라 차를 멈추려고 브레이크를 밟는데 브레이크가 너무 느슨하게 잡히는 것이 자칫 하면 차선을 넘어설 뻔 하였습니다.

분명히 같은 차인데 사고 전(前)과 사고 후(後)가 너무 달라서 같은 차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혹시 사고로 뒷 범퍼만 상한 것이 아니라 차 전체가 충격을 받아서 전체적으로 안 좋아진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차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까지 차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보험회사가 공인하는 공장에서 이 정도 사고 차량을 수리하면서 뭔가를 잘못할 리도 없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건 차 문제가 아니라 차에 대한 제 생각의 문제였습니다. 그 차를 사고 나기 전까지 13년을 운전하고 다니는 동안에는 차가 다 그려러니 하며 외장도 보고 엔진소리나 소음소리도 다 괜찮았는데, 사고 난 덕(?)에 새로운 신형 모델의 차를 2주간 넘게 운전을 하며 다니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새 차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그렇게 새 차에 익숙해져 있다가 다시 오래된 제 차를 타게 되니까 새 차에 익숙해 져버린 제 차에 대한 생각이 13년을 타온 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차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같게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사고가 난 후에 차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새 차를 타본 후 차에 대한 저의 기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물론 제가 사고가 난 후에 차에 대한 기준을 바꾸려고 해서 바꿔진 것은 아닙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제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주 남짓 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차에 대한 저의 경험이 차에 대한 기준을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차에 대한 평가가 차 자체에 대한 기준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차를 타본 현상의 변화가 차에 대한 기준을 바꾸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아, 이런 기준의 변화가 비단 차에 대한 평가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비수처럼 제게 파고들었습니다.

사실 삶에 대한 우리의 평가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대한 생각도 삶 자체에 대한 원칙이나 근본을 기준으로 삼고해야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의 삶에 대한 평가 기준도 삶의 원칙보다는 삶의 현상, 그것도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현상을 가지고 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상이 아니라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글쓴이: 이승우 목사, 워싱톤감리교회 MD
올린날: 2015년 6월 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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