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 20:26~28/개역개정
세월호 사건을 전하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본뜻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던 대통령과 관계자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녀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면 대한민국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에게 일개 국민이 간절히 무엇인가를 부탁하기 위해서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에는 단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 2항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과연 그 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 사람은 누구인가? 학교가 주관했던 수학여행을 떠났던 자녀가 침몰하는 배 안에서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한 걸음에 사고현장으로 달려왔던 지극히 평범한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관계 기관과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기대하며 생존의 기쁜 소식을 소망했던 그 어떤 부모나 가족도 그 어떤 자리에서라도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피해자이다. 만약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며 국민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모든 관계자들과 야당과 여당을 무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면 어땠을까! 한국 사회는 지금과 같이 사분오열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겹쳤던 모습이 마태복음에 등장했던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크리스천과 교회는 세상과 다른 법칙과 원리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 존재해 왔고 앞으로 존재하게 될 그 어떤 세상의 임금과 왕보다 더 높으신 왕으로 오셨던 예수는 애초부터 섬김을 받을 생각이 없으셨다.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 즉 사람들이 지고 있는 죄의 빚을 갚는 속죄양으로 오셨다. 그 섬김의 완성이 곧 십자가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사실을 진정 믿는 국민이라면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섬김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이 땅의 교회들조차 이 말씀을 한 귀로 듣고 다시 한 귀로 흘려보내는 실정이다.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많은 것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의 법칙은 결코 하나님 나라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그렇게 살아보면 좋겠다’는 권유가 아닌,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확고한 명령형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기억할 것은 우리 앞서 가신 주님께서 그 섬김의 본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분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에게는 그 어떤 핑계와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