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전에 목사안수 심사를 들어가면 성직 후보자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가 누구인가? 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목회의 스승이냐?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시작한 1980년도 초반만해도 목사에게 신학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는 길은 좋은 목사님 밑에서 그분을 닮아가는 도제(徒弟, guild system)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교 졸업했다고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통해 목회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책이나 세미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모시고 삶을 살아가면서 답습했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에는 보스턴에 있을 때는 홍근수 목사님의 예언자적인 사회정의에 대한 논리적인 설교를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나이도 어리고 배운 것도 별로 없어 “제 생각에는…” 어떻고 수필 읽듯이 조용조용 설교를 하면 나중에 설교 평가를 하시면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설교에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하늘의 천둥번개와 같은 외침이 있어야 하는데 김목사는 왜 자기 자신을 그리 의식하는가?” 그것만이 아니라 아무리 가르쳐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는 “너를 보니 앞으로 감리교단의 미래가 암담하다.”라고까지 심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시카고에서 곽노순 목사님 밑에 있을 때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곽목사님을 흉내 내느라 노장 사상과 사막의 수도승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잘모르면서도 그저 열심히 스승 목사님들을 흉내내느라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 옛날 내게그 어른들은 하늘같이 존경스럽고 무서운 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목회를 배웠던 시대는 목회훈련이란 스승의 생각과 언행을 답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복음교회 목사들은 조용기목사님의 강한 ‘ㅅ’ 발음을 흉내 내고 장로교 목사들은 한경직 목사님의 영어 비슷한 한국말 떨리는 목소리를 흉내내고 그런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인터넷 시대이기도 하고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며 세상 유명한 사람들의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배우는 것이 쉽습니다. 그래서 목회가 전문화가 되었고 그런대로 평준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만 저는 왠지 수많은 세미나를 섭렵해서 지식을 늘리는 것보다 스승 한 분 만남을 통해 한 어른의 삶과 신앙 그리고 신학을 답습하는 것이 값지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인들도 그럴 것입니다. 요즘 한국 교계도 그렇고 이민교회들도 보면 각종 훈련이나 세미나의 홍수와 더불어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분들이 수없이 오가면서 집회가 많아서 오히려 영성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목사도 그렇고 교인들도 아무 객관적 근거없이 교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승 밑에서 어렵게 자란 사람들은 교만할 틈이 없습니다.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배움을 목말라 합니다.
물론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각종 배우는 모임에 열심히 참여해서 견문을 넓혀야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얼마나 귀한 시대인지 모릅니다. 한국개신교는지난 십수 년간 급감하는 교세로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인구조사에 의하면 가톨릭과 불교는 급성장을 했는데 개신교는 그렇게 소란스럽고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한 것 같은데 결과는 급격한 교인 감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 개신교 문제를 분석하는 글 가운데 저의 눈을 끈 대목은 문익환 함석헌 김재준 그리고 한경직과 같은 어른들이 소천한 것을 거론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좌와 우를 대표하는 어른들께서 세상을 떠나심으로 교회가 중심과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어른들을 잃어버리면서 ‘어른들은 없고 아이들끼리 싸우고 있는 시대 ‘(Robert Bly)가 된 것입니다. 이는 보수만이 아니라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좋은 건물도 필요하고 좋은 프로그램들도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좋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시인 Robert Bly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어른이란 ‘위를 바라보는(vertical gaze)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어른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어른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