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화가 중에 이공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말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닭을 소재로 지은 두보의 "박계행(縛鷄行)"이라는 시에 감동하여 닭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감동을 준 두보의 박계행이라는 시입니다.
작은 종놈 닭을 묶어 저자로 팔러 가니
묶인 닭들 다급해 시끄럽게 다투누나
집에선 벌레 개미 물리도록 먹겠지만
팔려가면 도리어 삶아질 줄 어찌 아나
벌레와 닭 내게 어찌 후박이 있으랴만
종놈을 꾸짖고서 묶은 것을 풀어주네
닭과 벌레 득과 실은 그칠 때가 없으리니
찬 강물 바라보며 산 누각에 기대노라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책에서 정민 교수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옹색한 살림에 닭이라도 저자에 내다 팔까 싶어 꽁꽁 묶었다. 그러자 묶인 닭들이 안 죽겠다고 푸드덕 난리를 친다. 저것들이 팔려 가면 나는 몇 끼 밥은 먹겠지만, 저놈들은 또 삶아져 남의 밥상 위에 오를 것이 아닌가? 저것도 목숨이라고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치는 꼴이 꼭 내 처지를 보는 것 같아서 그만 풀어주고 말았다.’
지금부터 고민은 화가의 몫이 되었습니다. 저자로 팔릴 운명의 닭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화가는 많은 시간 고민했을 것입니다. '묶여서 파드닥대는 닭을 그릴 것인가? 아니면 닭을 묶어 보겠다고 달려드는 하인들을 그릴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이 닭들과 애처롭게 바라보는 주인을 그릴 것인가?' 결국, 화가는 이 그림에서 닭을 빼 버리고는 차가운 강물을 바라보며 누각에 서 있는 두보의 스산한 표정만을 그렸습니다.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당장 시장기는 어떻게 달랠 것인가? 아이들은 또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닭 한 마리 풀어주고 또 다른 세상의 고민에 빠져버린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서 화가는 닭을 뺐지만, 더 또렷하게 보이는 닭을 그려 넣었습니다. 화가가 그린 닭 없는 닭 그림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실상보다 더 또렷한 형상을 볼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해 줍니다.
우리 인생에도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더 또렷하게 보이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우리 인생의 중심에 두고 바라볼 때 우리는 육신의 눈 보다 더 또렷하게 그분을 뵐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눈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때는 삶이 풍요롭게 편안할 때가 아니라 고난과 시험으로 얼룩져 있고, 죄와 번민의 광야를 걸을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광야로 부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광야 생활을 거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욥, 다니엘, 바울 등 수도 없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을 광야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이 광야로 사람을 부르실 때는 분명한 이유를 갖고 계십니다. 광야로 부른 사람들을 쓰시겠다는 뜻입니다. 광야는 부족한 곳입니다. 물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잠자리가 부족합니다. 무엇하나 풍족한 것이 없습니다.
인생은 광야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이민생활은 척박한 광야와 같다고 말합니다. 불경기에 경제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때 인생은 광야로 변합니다. 언어적으로 문화적인 차이로 생기는 광야도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 가정의 문제로 가정이 척박한 광야로 바뀌기도 합니다. 영적으로도 지친 영혼이 쉴 곳을 잃어버릴 때 그야말로 그 인생은 광야로 변해 버립니다. 하지만 광야는 세상적인 것이 부족하기에 하나님을 더 또렷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그들을 먼저 광야로 불러내십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또렷이 바라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영혼의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재산과 자녀와 아내, 친구와 건강 등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던 욥은 인생의 광야를 지난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광야를 지나면서 믿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을 또렷하게 바라본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민의 광야를 걸으며 세상의 부족한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또렷이 볼 수 있는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글쓴이: 이창민 목사, LA 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7년 1월 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