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감리교 최초의 아시안 감독 윌버 쵸이 103세로 소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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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

  • 1972년, 윌버 왕 얀 쵸이(중국 명, 黃彥才) 감독은 연합감리교회에서 선출된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이 되었다.
  • 북서태평양 연회와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를 이끌었던 쵸이 감독은 다른 지도자들에게 교회 문호를 열어준 선구자였다.
  • 그는 지난 12월 28일 시애틀에서 10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반세기 전인 1972년, 윌버 쵸이 감독은 연합감리교회의 첫 번째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으로 피선되어 전국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쵸이 감독이 자신을 위한 길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있는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더 다양한 지도자들을 위해 문호를 활짝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또한 쵸이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서부 지역총회는 1972년 중국 이민자의 아들인 쵸이를 감독으로 선출했다. 그는 1984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8년간 북서태평양 연회(Pacific Northwest)와 4년간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California-Nevada)를 이끌었고, 은퇴하기 직전인  1983-84년에는 총감독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쵸이 감독이 은퇴하던 해에 최초의 일본계 감독이자 두 번째 아시안 감독으로 피선된 로이 사노(은퇴) 감독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쵸이 감독이 모든 사람에게 주를 아는 기쁨과 은총을 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메시지는 정말 전파력이 강했다.”

쵸이 감독은 지난 12월 28일 시애틀에서 10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Bishop Wilbur Choy (right) sits next to Jeff Swenson, the late husband of retired Bishop Mary Ann Swenson, at a memorial service in September 2014. Choy ordained Bishop Swenson as a deacon and elder when he led the Pacific Northwest Conference. “The conference flourished under his leadership,” she said. Photo by Bishop Swenson.2014년 9월 추도 예배에서 윌버 쵸이 감독(오른쪽)이 메리 앤 스웬슨(은퇴) 감독의 남편인 제프 스웬슨과 나란히 앉아있다. 쵸이 감독은 북서태평양 연회를 주재하던 시절 스웬슨 감독을 집사(Deacon) 목사와 장로(Elder) 목사로 안수했다.  스웬슨 감독은 “우리 연회는 쵸이 감독의 지도 아래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사진, 스웬슨 감독 제공.

쵸이 감독은 수년에 걸친 그의 사역을 통해, 보다 민족과 인종이 다양하고 풍성한 교회로 이끌어냈다.

쵸이 감독이 섬겼던 북서태평양 연회를 포함하는 대북서지역(Greater Northwest Area) 연회의 감독인 일레인 스타노프스키는 총감독회의의 성명서에서, “쵸이 감독은 우리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을 환영하라는 성경의 인종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북서태평양 연회가 소수인종교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도 아래 다양한 인종과 민족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평신도와 목회자가 연회와 교단 내의 지도적인 위치에 올랐다.”라고 스타노프스키 감독은 말했다.

에젤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에게 감화받은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자메이카의 크리스천교회(Disciples of Christ)에서 성장한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이 북서태평양 연회를 이끌던 기간에 연합감리교회로 이적했다. 골드슨 목사는 이후 연회의 소수인종사역을 이끌다 은퇴했다.

“쵸이 감독은 친절함과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심각하지 않았고, 항상 설교로 우리를 웃게 했다.”라고 골드슨 목사는 말했다.

골드슨 목사는 쵸이 감독이 자신의 식탁에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훌륭한 요리사였다고 덧붙였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쵸이 감독이 요리해준 맛있는 오징어 만찬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쵸이 감독의 첫 번째 파송은 감독으로 섬기다 은퇴한 후, 현재 시에라리온 연회에서 임시로 감독을 맡고 있는 워너 브라운을 지방 감리사로 임명한 것이다.

“쵸이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직분을 정직하게 감당했던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유행을 뒤따르는 데에 서두르지 않았다.”라고 워너 브라운 감독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장벽을 허무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우리가 핵심 가치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브라운 감독은 또한 쵸이 감독이 과거처럼 인재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윌버 왕 얀 쵸이는 수많은 사람이 출신 국가 때문에 차별을 당하던 시절인 1918년 5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서 중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불과 40년도 안 되는 1882년의 미국은 10년 동안 중국인의 이민을 중단하고 중국인의 귀화를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통과시켰고, 1924년 그가 6살이 되던 해에 미국은 아시아인 이민을 완전히 배제하는 이민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자신이 살던 스탁턴에 소재한 중국인 감리교회에서 자란 후, 대학과 신학교를 다니던 1943년에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는 스톡턴 초급대학(Stockton Junior College)과 퍼시픽 대학(College of the Pacific)을 졸업한 후, 퍼시픽 신학교(Pacific School of Religion)에 진학하여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처음에 그는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캘리포니아-동방 잠정연회에서 장로 목사로 섬겼다. 그리고 1952년에는 잠정연회를 지역으로 구분된 감리교 연회와 통합하는 작업을 주도했던 통합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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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스탁턴에 소재한 중국인 감리교회와 백인과 흑인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던 세인트마크 감리교회를 통합시켰고, 다인종 교회가 된 그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

다른 교회로 파송 받은 그는 자신이 속한 캘리포니아주와 지역사회 활동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다 1967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 원목으로도 섬겼고, 1969년에는 백인이 주를 이룬 지방의 감리사가 되어, 연합감리교회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감리사가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감독으로 피선되었을 때, 그는 평신도, 여성, 청소년 및 소수인종에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말하며, 자신이 속한 연회의 소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감독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은퇴 감독인 메리 앤 스웬슨은 쵸이 감독이 북서태평양 연회를 주재할 당시 안수받은 목회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쵸이 감독이 수양회와 목회자 수련회에서 연을 날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쵸이 감독은 연날리기만큼이나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도 잘했다. 스웬슨 역시 쵸이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나 사람들의 배꼽을 빠지게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은퇴 후 세계교회협의회의 운영 부의장으로 섬기고 있는 스웬스 감독은 “쵸이 감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연회를 이끌 강력한 감리사회와 지도자 그룹을 형성했고, 그의 리더쉽 아래 연회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쵸이 감독의 삶에는 슬픔으로 얼룩진 시기도 있었다. 1977년 12월 26일, 그의 아내인 그레이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쵸이 감독이 주재하던 연회의 사역위원회 총무였던 밥 와드 목사는 “쵸이 감독은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일을 개방적이고 진실하게 처리했다. 그 때문에 그와 함께 동역한 사람들은 기쁨과 특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와드와 여러 교회 지도자들은 쵸이 감독이 1982년 연합감리교 목사인 낸시 아타치-오사와 목사와 결혼을 자기일처럼 기뻐했다.  

1984년, 쵸이 감독이 은퇴하자 그들 부부는 시애틀로 이사했다. 그리고 쵸이 감독의 청력 상실로 인해 총감독회 모임과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쵸이 감독 부부는 시애틀에 있는 제일연합감리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했다. 지난 5년간 그들 부부의 목사였던 유명 교회 블로거이자 그 교회의 담임인 제레미 스미스 목사는 쵸이 감독과 아다치-오사와 목사가 2020년 3월 팬데믹으로 대면 예배가 중단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스미스 목사는 자신이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기억 중 하나는 쵸이 감독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교인들이 "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렀을 때, 그가 혼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쵸이 감독으로부터 목사로 안수받은 그랜트 하기야 감독은 자신이 대북서지역(The Greater Northwest Area) 연회를 주재하게 되었을 때 쵸이 감독의 새로운 면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캘리포니아-태평양 연회와 남서부데저트(Desert Southwest) 연회를 주재하고 있는 하기야 감독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쵸이 감독은 항상 겸손하면서도 확고한 태도를 취했고, 은퇴한 감독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롤모델이기도 했다. 쵸이 감독에게 길고 풍요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쵸이 감독의 유가족으로는 39년간 함께한 아내와 네 명의 자녀 그리고 22명의 손자/녀와 증손자/녀 및 고손자/녀가 있다.

한은 연합감리교뉴스의 부편집장이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로 이메일 또는 전화 630-797-6848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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