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현종이 쓴 ‘방문객’이란 시의 전반부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풀리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가 지고 오는 그의 일생이 ‘짐’이 되면 막히는 것이요, ‘힘’이 되면 풀리는 것입니다. 요즘 고국에선 자살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의 만남이 큰 짐이 되는 정치인들이 좌불안석입니다. 그들은 성회장이 남긴 유서에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단지 인간적인 이해관계 안에서 자의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때, 그 만남이 ‘힘’이 되지 않고 ‘짐’이 되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기업인과 정치인의 만남에는 반드시 이권이 개입됩니다. 그 이권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칠 때, 그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그 만남의 뿌리가 이해관계로 엮어진 것이기에 이해 당사자 간에 ‘주고받는’ 균형이 깨지면, 그 순간부터 그 만남은 서로에게 ‘힘’이 아니라 ‘짐’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십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십니다. 성령이 연결시켜주는 만남은 서로에게 짐이 되는 법이 없습니다. 힘이 되어 주의 일이 되게 합니다. 이점에서 성령 하나님은 탁월한 중매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방법은 이런 Networking을 통해서입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는 Networking 안에 엮어지는 것입니다. 사르밧 여인과 엘리야 선지자의 만남,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만남은 성령 하나님께서 연결시켜 주신 대표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만남은 그들 서로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는 만남으로, 그들은 그 힘을 가지고 주께서 기뻐하시는 주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차인홍 교수가 쓴 <휠체어는 나의 날개>라는 자전적 간증서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차교수는 하반신 불구자로 태어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기회를 주신 분으로 강민자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강민자 선생님은 그가 소년시절 재활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 오는 과정과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힘이 되신 분이십니다. 차 교수가 언젠가 강민자 선생님께서 왜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강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차 교수는 그때 참 눈빛이 남다른 아이였어. 수업을 하면서 차 교수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지. 저 아이는 정말 나를 기다렸구나.”
다윗은 시편40:1 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40: 1). 강 선생님이 소년 차인홍의 눈빛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선생님에게 소년의 마음을 보게 하셨고 그런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 두 분의 만남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당신을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이런 만남이 성령 하나님이 이어주는 ‘힘’이 되는 만남입니다.
글쓴이: 이철구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5년 5월 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