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사람

흔히 '아무개 참 잘 살더라' 하면 사람들은 그가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큰 집에 비싼 가구를 드려놓고 사는 사람, 메이커 옷만 입고 최고급 차를 모는 사람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 사는 것과 못사는 것을 단순히 물질적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진정 잘 사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6:10)

즉, 잘 사는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해도 용기와 웃음을 잃지 않고 항상 기뻐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굳게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잘 사는 사람은 비록 물질은 없어도 절대 위축되지 않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삽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 전도의 삶을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삶고 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잘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의 ‘말씀대로’ 살고 주께서 맡기신 ‘사명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하는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22:22). 여기 “마음에 둔다"는 의미는 "피와 심장이 움직이는 곳 즉 생명의 중심에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한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장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2010년 12월 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송씨에게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손님 머리를 깎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앞문을 부수며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이발소 앞에 있던 승용차 운전자가 실수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아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CC 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보면 당시 송씨와 머리를 갂고 있던 손님, 소파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차가 이발소 안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순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흥미로운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정신을 차린 송씨가 손님에게 다가가 이발을 마무리 한 것입니다. 후에 송씨는 "머리를 반만 깎은 상태로 손님을 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 그 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사업장이 무너졌지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머리를 반만 깍은 상태에서 밖으로 나갔을 때 손님이 느낄 그 황당함을 생각해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는 사건을 당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송씨가 그렇게 차분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하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중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그는 정말 잘 산 사람입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9).

어떤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까? 참된 의미에서 잘 사는 것은 외적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단지 돈과 권력, 명성이 있다고 그런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대로 사명대로 살아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살다 오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잘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은 절대로 나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눈을 감는다면 제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삶이라도 그것은 결코 잘 산 인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결코 “나처럼 살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삶의 중심을 붙잡아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사명감입니다.

개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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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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