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세상을 사는 불완전한 존재들 1

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리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UM News.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릴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2020년이 끝나갈 즈음,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해 잔뜩 움츠려 있던 세상에 95% 이상의 면역 효과를 가진 백신이 공급될 것이라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하면,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소 시켜, 머지않은 시간에 팬테믹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내다 보았다. 우리는 단시간에 백신을 개발한 성과에 박수를 보냈고, 머지 않아 올드 노멀(old normal)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현실은 희망대로 풀리지 않았다. 백신을 먼저 확보한 선진국은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로 인해 집단 면역에 이르지 못했고,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의 감염은 계속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신 접종 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면역 효과가 사라진다는 암초에 부딪혀, 가난한 나라에 공급되어야 할 백신은 부유한 나라의 부스터 샷이 되어 버렸고, 백신 접종 부작용에 관해 보고가 시작되면서, 접종하려던 사람들마저 주저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2021년 후반에 몇 개월간 누리던 자유를 다시 내주어야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미국에서는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이 정점을 찍은 후, 신속히 잦아들고 있다. 그와 함께 경구용 치료약과 휴대용 검사 키트가 공급되면서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코로나가 ‘계절성 독감’ 수준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올드 노멀을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이런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봄꽃의 개화만큼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좌절(setback)을 경험했던 우리는 전처럼 들뜨지 않을 뿐 아니라, 파우치 박사의 “끝(종식)의 시작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말에 마음을 놓지도 못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코로나 감염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어, 과거에 누리던 자유를 온전히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과 기대에서 기인한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몇 번의 좌절을 거칠지 모르지만, 결국 이 사태는 종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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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고 “완전한” 자유를 회복하고 싶은 우리의 소망은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선한 피조 세계가 깨어진 이후, “불완전함”은 인간 실존의 기본 조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한 것은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 이전까지 완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완전하지 못한 생명과 더불어 완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미 작고한 스티븐 호킹은 “우주의 기본 법칙 중 하나는 아무것도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세상을 보나 인간 존재를 보나 이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비현실적인 소망을 마음에 담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라고 소망할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를 선택한 후, 인간됨은 불완전함으로 규정되어 버렸기 때문에, 완전한 안전, 완전한 자유, 완전한 행복, 완전한 정의 혹은 완전한 기쁨을 바라는 것은 인간 실존의 기본 조건을 망각했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창세기 3장은 그 불완전함이 인간고의 원인이 되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인생이란 깨어진 세상에서 상처 난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온갖 자연재해를 비롯해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과 질병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수많은 불행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함이 왜 인간 조건의 디폴트(default, 기본값)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완전함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함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도 솔깃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그 기본값이 전환되어 모든 것이 완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현재의 불완전함을 대면하고, 끌어안아, 현실에 체념하거나 우격다짐으로 그 상황을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것을 보게 될 거라는 소망을 품고, 현실의 불완전함을 대면하는 우리는 그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도 자유와 의미 그리고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낸다. 또한 그것조차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바랄 것은 팬데믹의 완전한 종식도, 완전한 자유도, 팬데믹 이전의 올드 노멀을 온전하게 되찾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팬데믹 이전에도 완전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팬데믹은 단지 우리가 늘 경험하던 불완전성을 극대화시켜 경험하게 해 준 것뿐이다.

머지 않아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살 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완전한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어느 정도는 무질서하며, 어느 만큼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사진, 브렌 브라운이 쓴 <불완전함의 선물> 표지.사진, 브렌 브라운이 쓴 <불완전함의 선물> 표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곧 세상과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인생에 진정성을 확보하고 자유를 얻게 된다.

브렌 브라운(Brenne Brown)은 <불완전함의 선물(The Gift of Imperfection)>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은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매일의 노력이다. 진정성을 선택한다는 말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바운더리를 정하여, 우리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용기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불완전함에 눈 뜨고, 그 사실을 인정한 채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용기는 인생 전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예수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의 “완전”이라는 단어를 영어 성경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Be perfect”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예수께서 완전함이 이 땅에서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뜻이 된다.

개역개정은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번역했다. “완전”과 “온전”은 동의어처럼 쓰이지만, 사실 어감은 약간 다르다. “완전”이 네모반듯한 벽돌에 가깝다면, “온전”은 푹신한 이불에 가깝고, 그런 의미에서 개역개정의 번역이 원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주기도문>에도 죄 용서에 관한 기도와 시험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하는 기도를 포함시키셨을 만큼 예수님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그런 분이 우리에게 완전해지기를 추구하도록 명하실 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진 피터슨이 이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번역했다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내 말은,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너희는 천국 백성이다. 그러니 천국 백성답게 살아라. 하나님이 주신 너희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시는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너그럽고 인자하게 살아라.”(메시지 성경)

역설적이지만,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깨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죄성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동시에 그 불완전함이 원래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장차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제대로 된 모습으로 볼 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웃과 다른 생명을 자비로 대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비롯해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완전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으며, 서로의 불완전함을 품고 함께 살아가며 자라기에 힘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된다.

이것은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선물 가운데 하나다. 팬데믹만 아니라 우리 생활 영역 중 그 어느 분야에서도 완전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결국 우리의 믿음은 우리 실존의 기본값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족과 감사의 비결을 배우며, 서로를 은혜로 품게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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