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 기고문은 2022년 5월 25-28일 달라스에서 열렸던 한인교회총회 셋째 날 저녁 집회에서 김정호 목사가 전한 설교입니다. 본문 중 일부 내용은 연합감리교뉴스와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아십니다
에스겔 37:1-14
오늘 말씀은 마른 뼈다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뼈다귀입니다.
작년에 이런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27일로 68주년을 맞았지만, 전쟁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미국 유해 발굴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실종자확인국(DPAA)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 참전 미군 전사자 또는 실종자 가운데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인원은 7천556명에 달합니다. 이 중 북한 지역에 5,300여 명, 한국 지역에 약 950명, 그리고 중국에 20명 미만의 참전 미군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북한이 송환한 55개 유해 상자에서 신원이 확인된 병사가 총 76명에 달합니다. 가장 최근 신원이 확인된 병사는 찰스 E. 리 육군 상병으로 지난달 14일 확인이 끝났습니다.
또 북한 내 전사자 가운데 지난달 최종 신원이 확인된 미군은 제7사단 예하 31보병연대에서 복무한 옐우드 트러슬로우 육군 병장과 케네스 포맨 육군 상병으로 모두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켈리 맥키그 국장은 지난 2월, 유해 송환 문제를 핵 협상이나 제재 문제와 연계하려는 북한의 태도 때문에 공동 유해 발굴이 답보 상태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죽은 사람들입니다. 아주 말라버린 뼈다귀들입니다.
그런데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과 대화를 할 때 협상 테이블에 이것을 내놓고 북한은 핵 협상이나 경제제재와 같은 수준으로 이 사안을 거론한다는 것입니다.
70년 전 죽은 군인들의 뼈다귀입니다. 마른 뼈다귀들이지만 미국이란 나라에 귀합니다. 가족들에게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이런 나라가 되어야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이 가능한 것입니다.
매 주일 오후가 되면 교단에서 출석과 헌금 등을 보고하라는 이메일이 옵니다.
이런 보고를 철저하게 하는데 목적이 뭔가요? 기본적으로 분담금 책정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목사 파송에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그런데 교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헌금에 담겨있는 교인들의 기도 제목과 소원 등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그 데이터를 보고 받는 교단은 생각할까요?
지금 마른 뼈다귀라고 취급받는지 모르지만 나는 알아요.
아틀란타한인교회 첫 예배당 기초 작업할 때 콘크리트 붇기 전에 교인들이 돌에 가족의 기도 제목을 적고 놓은 것 저는 알기 때문에 예배당은 그냥 벽돌과 철근으로 세워진 건물이 아닙니다. 이민 와서 죽도록 고생해서 벌어놓은 돈 예배당 건축에 다 내놓은 것 저는 잘 압니다.
여기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전국에서 오신 여러분의 교회들 제가 좀 압니다.
벌써 41년 연합감리교 목사로 목회했으니 어떻게 여러분의 교회가 오늘에 이르렀는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헌신과 희생과 아픔과 슬픔이 있었는지 저는 좀 압니다.
여기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늙어버리고 상처뿐인 영광의 흔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좀 압니다.
여기 함께 있는 목사들 제가 좀 압니다. 이렇게 총회를 모일 때 오랜만에 보면 저 친구 언제 머리가 저리 희었을까? 빠졌을까?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몸과 마음에 아픔 흔적 등이 우리 몸에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고난의 흔적이 다 있습니다.
메마른 뼈다귀!!!!라고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죽었다!!!
하나님에게 저들은 살아나야 하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들이다. 우리 교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천하 귀한 주님의 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교단 리더들이 이렇게 교회들을 쉽게 망가뜨리고, 교단이 이런 혼란에 봉착하도록 만드는 것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You alone know.) 나는 이 말씀이 참 좋아요.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아십니다”했습니다. 에스겔도 몰랐고 베드로도 몰랐어요. 아니면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이 면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게 하고 소망을 주고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난 사실 내가 뭘 잘 알고 잘한다고 여기던 때를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습니다. 코로나를 통해 깨달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철저하게 무너뜨리시는 경험을 통해 그렇습니다. 어제 류재덕 목사님 설교에서 죽었다 살아났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참 부럽더라구요. 같이 전투에 참여한 동지들이 있잖아요.
이 자리를 빌려 전국평신도연합회에 설명을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아틀란타한인교회 케이스는 다루지 말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내가 관계된 케이스는 류재덕 이성현 김낙인 목사님들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신앙 양심 지키다가 고난당하는 성자들이고 내가 관계된 것은 천하 도둑 파렴치한 더러운 목사로 고소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내 케이스는 철저하게 재정 감사를 통하고 교단법으로 다루어야지 여론몰이나 정치적으로 해결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누가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정치적 제안이 무엇이겠나요? 원래 당신 진보이니 그런다고 해도 뭐 어떠냐 그런 제안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연회 감독에 의해서 범죄자가 되는 일이 있어도 이 나이에 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겠다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비겁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요.
나는 올해 감독 회장이 된 뉴욕 연회 감독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고소당했을 때 감독에게 부탁드린 것이 있습니다. 나는 건드려도 후러싱 제일교회는 건드리지 말라고요. 감독과 감리사 두 분이 잘 지켜주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앞으로 감독회장으로서 그분이 우리 교단에서 교회를 지켜내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패망한 자기 민족의 미래 소망을 보고 싶었던 에스겔의 입에서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 베드로에게서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이 말을 나오게 하시는 예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 마른 뼈다귀들이 살아나겠느냐?” 물어주시는 것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
제가 지난 일 년 큰 어려움 당할 때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밥같이 먹어주는 한 사람 그리고 나에게 와서 이게 뭔 소리냐고 물어주는 사람 너무 고맙더군요.
코로나도 코로나이지만 목사 자신의 문제가 거론되니 교인에게 전화도 못 하겠더라구요. 혹시라도 내 편 들어 달라고 정치나 하는 것으로 오해당할까 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치사한 꼴 보이는 것인데 정말 사람 우스워지고 초라해지더군요. 그래서 혼자 말없이 지내는 훈련 했습니다. 그리고 걸었습니다. 한번 나가면 10마일 걸었습니다. 포리스트 검프 생각도 나더군요. 모임도 거의 안 가고, 내가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냥 아내하고 지난 1년간 열심히 걸었어요.
“해결책을 찾으려 말고 하나님을 찾아라.”
웬만한 일은 사람들이 노력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 찾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나는 교단의 문제도 사람들이 무대에 나서서 뭐 하는 것 분명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역사가 더욱 분명한 것 믿어요. 살아계신 하나님 믿고 무덤 문을 여시고 살아나신 부활 주님을 믿어요.
망한 민족, 소생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메마른 뼈다귀가 즐비한 그 현장에서 그 민족이 어떻게 살아나는가요?
에스겔이 한 일은 하나님 말씀을 마른 뼈들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에게 마른 뼈다귀들에게 불어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뼈들이 연결되고 뼈에 힘줄이 생기가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고,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하니 하나님이 치밀하게 치유와 회복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아무것도 못 하는 때 오직 기도하고 기다릴 때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닥에 떨어지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거꾸러져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 만났으니까요. 바닥에서 보아야 잘 보인다고 하잖아요. 철저하게 외로워지는 경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주 마른 뼈다귀가 나 자신이더군요.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주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존재가 바로 나예요. 난 언제부터인지 기도하는 시간이 두려워요. 하나님이 소록소록 나의 잘못을 생각나게 하세요.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 무엇보다 내 가족, 내 교인들에게 잘못한 생각을 계속 생각나게 하세요.
이 자리 평신도 지도자들 계시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목사가 목사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 목사가 되어 장로님들 사랑받고 장로님들이 나를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3살 어린 나이에 목사 안수받고, 24살 보스톤한인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이 안식년 가시고 장로님들이 나 목사로 키워주셨어요. 아는 것 없으니 자존심만 내세우고 실력 없으니 고집만 피울 때 내 손을 잡고 “목사는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엉엉 우신 장로님 계세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나 이리 착한 장로님 실망시키는 못난 목사 되지 않게 해주세요.”
어린 시절 철없던 목사가 훗날 보스톤 지역 연합집회 강사로 갔을 때 귀가 안 들리는 90세 장로님이 매일 오시기에 “장로님, 한 번만 오셔서 만나셨으면 된 거지 어찌 매일 오세요. 듣지도 못하시면서.”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김 목사님, 나는 목사님 설교 귀로 안 들어. 마음으로 들어.” 하시더군요. 오늘날 목회의 현실에 그런 어른들이 너무 귀하고 그리워요.
목사의 약점과 아픔을 품어주는 지도자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목사인 우리들 평신도들 실망시키는 못난 목사 되지 말아야죠. 목사들 긍휼히 여겨 달라고 머리 깊이 숙여 부탁드립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간들이겠습니까?
파송 제도가 좋은 것도 있지만 목사 가족들에게 주는 아픔이 많아요.
제가 오래전 시카고에서 파송 문제로 난리 났을 때 떠난 교회는 돌아가지 못하고 파송 받은 교회는 갈 수 없었던 우리 아이들 참 힘들었더라구요.
나중에 제가 아틀란타로 혼자 먼저 오고 자기들이 자라난 교회에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아이들이 전화해서 “아빠 우리 다시 한마음교회 가면 안 돼?” 안 된다고 하니 그다음 주에는 “그러면… 예배는 아니고 친교실에 가서 친구들과 놀아도 안 돼?” 울면서 묻더군요. 나중에는 아이들이 머리를 짜내서 “아빠가 목사라서 안 되면 맥도날드에서 일하면 안 돼?”라고 하더군요.
내가 참 아이들에게 못할 짓 했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전화를 했어요. 아이들이 회의하고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면 안 되냐고 그러더래요. 그렇게 어려서부터 자라난 교회에 다시 가고 싶었던 거예요. 파송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이 당하는 아픔과 억울함, 아이들만이 아니라 목사 사모가 당해야 하는 어려움 등을 나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냥 목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가족들도 잘 이해할 것이라고 전제를 했어요.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억울함, 부모에게도 말 못 하고 자기들끼리 견뎌야 했던 아픔들이 많았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는 교인들 기가 막힌 말들, 우리 목사에게는 엄청난 파괴적인, 평생 따라다니는 어려움이라는 것 알아주면 좋겠어요. 교인들은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도 되지만 목사는 해명할 기회도 없고 대꾸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목사가 뭘 좀 잘못하면 어찌 그리 야박한지요.
요즘 세상 참 못됐어요.
내가 사랑하는 후배가 암에 걸려서 항암치료 끝나고 교회에 돌아왔더니 목사 바꿔 달라고 했다더군요. 감독은 갈 자리를 찾지도 않고 후임자 발표하고요. 우연일까요? 이 바보 같은 친구 초기부터 WCA에 참여했어요. 정말 그래서 그런 것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다귀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난 것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서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회하다가 발견한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뭐였나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물었더니 성령이란 말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아볼로의 제자들입니다.
고전 4:20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보수니, 진보니, 이거 사람들이 틀 만들어 놓고 장난들 치는 겁니다.
교회 다 죽어가는데,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잃은 영혼 구원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 나라 선포되지 않고 아픈 자들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데 지금 사탄이 역사하는 것은 ‘동성애 목사 안수’ 이거에 빠져서 목사들 목회 열심히 안 해도 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동성애자들이 동성애자 목사 안수해주는 교단에 몰려드는가요?
아닙니다. 복음주의 교회에 갑니다.
신학적으로는 전통주의 신학 그러나 실천은 과감한 사랑의 진보적인 실천이 있는 열린 교회에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데 진보면 뭐하고 보수면 뭐하나요. 살리고 사랑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쓸모없는 종교 장난질 들 하는 것입니다.
난 정말 속상한 것이 다른 것 아니에요.
우리 이런저런 문제 조금씩 다 있지만 정말 열심히 목회했잖아요.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주신 소명인 줄 알고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한인 교회들이 교단에 무슨 큰 죄를 지은 무식하고 교화시켜야 할 암적인 존재 취급하는 현실을 보면서 참 기가 차고 숨이 막혀요.
아틀란타한인교회 건축 도중 분담금이 힘들어 그것 좀 줄여달라 했다가 거절당해서 결국 15만 불 은행 빚내서 전액 연회로 보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고생하면서 헌금하는 교인들입니다. 서류미비자들이 제일 많은 동네예요. 그러나 한 번도 빠짐없이 100% 뉴욕 연회에서 분담금 제일 많이 내요. 그런데 마른 뼈다귀 취급당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요즘 교단 돌아가는 일 보면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예수 십자가 보혈, 부활 승리의 능력이 우리 교회들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진보나 보수나 모두에게 예수 능력이 드러나기만 바랍니다.
저는 왔다 갔다 해요.
한교총 친구들 보면 여기가 좋고, 평화위원회 친구들 보면 거기가 좋고 그래요.
한교총 핵심 권력에 있는 분들은 저에 대해 섭섭한 때가 많을 거예요. 저는 교단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같은 식구들이라는 생각 변함이 없어요.
제가 한교총 입장을 두둔하는 것 알고 누가 페북에 댓글을 올렸더군요.
“김 목사님은 절대로 보수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이 먹어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시려고 비겁하게 교인들을 선동해서 나가려고 하시나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나이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비겁하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인들 선동한 적 없다. 그리고 이런 것 페북에 올리지 말고 만나서 밥이나 먹자.”
이제는 아무나 함부로 막 이야기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어요. 얼마 전에 교단 탈퇴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분으로부터 내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물타기 하지 말라고 공개적인 비난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고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실 장로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그랬어요. 총회가 연기되고 어려워지니까 이제는 아군끼리 총을 겨누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에스겔을 찾아오신 하나님, 여기에 소망을 봅니다.
누가 그러네요. 기막힌 현실에서 기적의 현실을 이루자!

노래 하나 하죠.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여…”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안 되는 일은 영적인 전쟁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령님이 임하셔야 승리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영적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쓴 딘 셔만이 오래전 집회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음부의 권세를 물리칠 능력을 주셨는데 왜 사용하지 않나요?” 하더군요.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당당히 말하라고 하십니다. 성령에게 향하여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할 수 있잖아요.
성령이 역사하니 무덤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른 뼈다귀들이 하나님 군대가 되어 일어났습니다.
나는 설교할 때 관심이 한 가지입니다.
예배 가운데 교인들이 갇혀있는 무덤 문이 열리고 지옥이 열리고 감옥이 열리는 것입니다. 죽음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는 성도들이 예배 가운데 부활 주님 만나야 하는데 세상 시시하고 쓸데없는 일로 교회 엉성하게 만드는 일들 그만해야 합니다.
성령은 살리고 사랑하는 영입니다.
교회가 죽이고 미워하는 일에 쓰임 받으면 불행합니다. 성령이 임하니 어린이가 예언하고 청년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저는 UMC 고 GMC고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말씀으로 자라나고 젊은이들이 비전을 잃지 않도록 징검다리 디딤돌 되는 일들 해야 합니다. 그리고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것 이런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명을 가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중동분쟁 평화협정을 이루어낸 ‘캠프 데이비드 협상’의 주역들이 모두 늙은이들이었어요.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이스라엘의 이삭 라빈 수상 그리고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입니다.
협상이 결렬되어 각자 돌아가려고 할 때 각각 이들이 카터 대통령을 찾아와서 한 말이 있습니다.
“내 손주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못난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늙은이들이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미래를 가로막지 말아야죠.
그리고 영적 전쟁은 손들어 기도하는 어른들이 있어야 승리합니다.
나는 아멜렉 전투에서 늙은 모세가 손을 들고 더 늙은 아론과 홀이 그 손을 양쪽에서 바쳐주고 그것도 어려우니 밑에다 장돌을 놨다는 성경 말씀이 기가 막혀요. 아니 출애굽 대민족 해방 역사의 지도자로 모세를 세우셨으면 하나님이 그 인간의 손을 타이타늄으로 만들거나 해서 절대로 기도할 때 힘들지 않고 손이 영원히 내려오지 않아서 승리했다고 해야 멋있는데 아니에요. 늙은 모세 손에 힘이 약해져서 떨어지면 젊은 여호수아 장군이 싸우다가 전투에서 진다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적군의 창칼에 죽어가면 안 되니까 늙은이들이 손을 내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서 이루어내야 할 목표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에스겔 골짜기는 어디인가요?
저는 이 답은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말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릴리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유다) 변두리입니다.
곡창지대이기에 열심히 농사를 하지만, 로마제국은 물론 예루살렘 높은 사람들을 위해 다 빼앗기는 땅이 갈릴리였습니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예루살렘 엘리트들로부터 ‘거친 성격을 가지고 반기를 잘 드는 인간들’이라는 평가받았습니다.
UMC의 현실은 제가 보기에 거대한 제도(institution)적 리더십을 바라보게 만드는 문화입니다. 영적인 리더십이 존중되는 문화가 아니라 행정적이고 제도적 리더십 사다리를 타려는 가치관이 팽배합니다.
문제는 우리 한인 교회 목사나 평신도들이나 대다수는 이걸 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저는 하나님이 이런 못난 한인 교회를 귀하게 이 시대를 위해 쓰실 것이라고 믿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를 거쳐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가고 싶지 않은 땅입니다. 어려운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 사마리아를 찾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마리아는 어디이고 누구인가요?
한교총이 이번에 내놓은 고백과 결의’에 보니 2년간 백만 불 모으자고 하네요. 합시다. 교회가 살아나고 전도와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보자구요. 그렇다면 ‘사마리아’를 통해서 갈릴리로 가는 교회 개척도 하고 부흥도 시켜보면 좋겠습니다.
2019년 특별총회에서 전통주의 장정이 고수되면서 저는 그 주일에 우리 교단이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불허하는 결정을 했으니 우리는 불가능해 보여도 동성애자를 교인으로 환영하는 교회 되자고 했습니다.
UMC에 남아서는 물론이고 GMC에 가도 한인 교회들은 ‘동성애자’를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교회 만드는 기적 일으켜 보면 어떨까요? 결과에 너무 빠지지 말고 부활 주님이 가라고 하니 가는 겁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 디딤돌과 징검다리를 만드는 일 해야죠.
그리고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누가 비판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우리 한인 교회의 ‘원죄’가 있잖아요. 어떻게 해서라도 여성 목회자들이 존중받는 교회 되도록 해야죠. 이런 일에 100만 불 아니면 200만 불이고 만들어서 투자해야죠.
그리고 오늘 에스겔 본문 말씀 바로 뒤에 하나님이 잘린 막대기를 붙잡아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한인 교회는 분열의 역사에서 통일을 이루어내는 기적을 만드는 교회 되면 어떨까요?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미래 기독교의 위기를 두 가지로 진단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형식화된 기독교로 변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가 없는 세속화된 교회로 전락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연합감리교회만이 아니라 대부분 기성 교회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교회 내부의 보수라는 사람들은 보수 우파 정치 어젠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진보 좌파 정치 어젠다에 대한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거 예수 믿는 거 아닙니다. 교회가 뭔지 교회론과 구원론이 결여된 망조 들린 이 시대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요. 우리 한인 교회 목사들이나 교인들은 교단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인 능력이 너무 미약하고 부족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것이 어쩌면 이 시대 교회를 살리도록 남겨두신 ‘남은 자’의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바알에 머리 숙이지 않은 남은 자들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힘없는 자들을 들어 힘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고요.
우리 한인 교회들이 참 초라해요.
총회 총대도 몇 명 없고, 교단 권력 잡은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아요.
한교총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보면 뭘 제대로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모르니 답답하고 두려움이 보이고 그래요. 그래서 어떤 때 눈물이 나요.
나는 처음 한교총이 만들어질 때 반대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이거 힘을 모아내지 못하면 우리 한인 교회 분열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요즘에 보면 교단 권력의 그림을 보면 여기가 갈릴리 같아요. 그리고 교단 총회가 연기되면서 한인 교회들이 사마리아 취급당하는 조짐도 보입니다.
훗날 역사가 평가할 때, 이 초라한 사람들, 갈 바를 제대로 모르고, 코너에 몰리고 있는, 실제적 힘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교회들이었다는 평가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초라해져도 좋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힘이 없고 실력이 없다고 해도, 아주 마른 뼈다귀 같은 존재가 되어도 좋아요. 성령의 역사하심의 증거가 있는 교회들로 평가받으면 되니까요.
하나님이 마른 뼈다귀 같은 우리들의 교회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성령의 생기를 받아 거룩하고 위대한 하나님 나라 군대 되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로 이메일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