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연합감리교 목사의 여러 특권 중 하나는 교단 차원에서 권장하고 지원해 주는 연장교육의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장려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이 얼마나 큰 특혜이며 축복인가?

목회자 연장교육의 일환으로 나는 지난 10월 6일부터 17일까지 그리스를 다녀왔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항공권과 호텔 예약을 비롯한 모든 여행 일정을 내가 직접 짜고 준비했다.

여행을 다녀온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감겼던 눈이 확 띄어진 순례길이었다고 말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바울의 신학과 선교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신학교에서도 그리스어를 수강하지 않았고, 왜 그런지 바울 서신을 재미있게 공부한 경험도 없다.

바울 서신을 성경 본문으로 삼아 설교도 했지만, 내게는 늘 끝이 나지 않는 퍼즐 조각과의 씨름일 뿐이었다. 10여 편의 편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완성된 멋진 그림을 찾아보려는 열정이 없었다. 어쩌면 바울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간단하고 읽기 쉽게 정리하여 출간한 얇은 책 한 권이 내 눈앞에 탁 떨어지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나태함과 무관심은 이번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지도를 펼쳐놓고 바울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 장소에 얼마나 머무를 것인지, 숙소를 어디에 정하고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바울의 선교 여행 역사와 발자취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벌써 새로운 세계의 문, 깨달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절벽 위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을 모습.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절벽 위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을 모습.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그리스에서 방문했던 장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메테오라(Meteora)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수도원들이다.

신기하게 솟아올라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절벽 위에 세워진 그 수도원들의 역사가 600년이 넘는다고 한다. 14세기 말, 비쟌틴 제국의 침략을 피하려고 접근이 힘든 절벽 끝에 세운 20개의 수도원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도원은 5개뿐이다. 신앙과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동방정교회 수도사들의 처절한 노력과 뜨거운 열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주일 아침, 대 메테오른 수도원(Monastery of Great Meteoron)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마치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가슴이 뛴다. 발걸음도 가볍다. 예배당에 앉아 설교를 ‘듣는’ 예배가 아닌, 돌계단을 오르며 몸으로 ‘드리는’ 예배-  내가 늘 추구하던 예배를 드린 것이다.   

‘절벽 위에 세운 수도원’을 묵상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지극히 높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귀 그리고 영광을 표현하고자 고안해 낸 중세 기독교들의  고딕 건축 양식!  

메테오라 수도원들은 어쩌면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올라간 고딕 성당의 기둥에서 영감을 받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 위에 예배당을 지은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 했던 수도사들의 지극한 신앙심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바울이 갇혔던 감옥 앞에선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바울이 갇혔던 감옥 앞에선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사도 바울의 자취를 가장 감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빌립보(Philippi)다.

빌립보는 바울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선교지였다. 사도 바울이 유럽의 첫 여성 기독교인이 된 리디아에게 세례를 베푼 곳으로, 그녀의 가족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진, 바울 선교의 전초 기지 같은 곳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장소이자, 지진이 난 후 간수의 가족들을 모두 믿게 한 곳이기도 하다.

실라, 디모데와 함께 처음 발을 디딘 주 후 49년부터 64년 겨울, 그가 트로아에서 잡혀 로마로 후송되어 순교하기 전까지, 바울은 다섯 번이나 빌립보를 방문했다.    

광활한 옛 로마 시대의 장터와 바실리카교회의 기둥, 바울의 감옥과 같은 유적지를 거닐면서 나는 바울의 심장을 헤아려 보았다. 틈만 나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방문했던 교회 사랑의 심장과 힘들게 영적 전쟁을 하던 교인들에게 편지를 통한 격려와 항상 기뻐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교인 사랑의 심장 말이다.

나는 과연 어떤 심장을 가지고 목회를 하고 있을까? 

최고의 기술로 만든 최신 사진기로 찍은 옛 성인들의 발자취는 인터넷을 통하여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내 발로 찾아가 그 자리에 서보고, 걸어보고, 만져보고, 그 공기를 마셔보며 얻은 깊은 감동은 인간의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발품팔이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일반 여행과 달리 성지순례는 역사 기행으로, 모든 유적지는 방문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걷고, 보고, 생각하는 동안, ‘왜’라는 단어가 계속 나를 자극한다.

고대 상업 도시로서 커다란 두 대륙을 잇는 길목에 있는 고린도운하를 보며, 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일치(Unity)’를 이야기했는지, 서양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고 철학과 문학 및 예술의 중심지이자 막강한 해군으로 고대 지중해를 호령했던 작은 도시국가 그리스가 어떻게 오늘날은 이토록 힘이 없는 나라가 되었는지, 또 오늘날 그리스정교회는 어떤 사명으로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지 등 말이다.

찾아가는 수도원과 교회마다 우리를 반겨주던 그리스정교회의 독특한 교회 건축양식인 아코노스타시스(iconostasis 회중석과 제단 사이에 세워진 막)와 화려한 성인들의 이미지(icon)를 통해, 내가 철저히 서방 교회 중심의 신학과 생각에 길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알고 보면, 동방정교회가 바울이 세운 초기 기독교 교회의 정통 계승자다. 나에겐 이 깨달음이 이번 순례의 가장 큰 수확이다.

글을 마치며, 가슴을 뜨겁게 지피는 기도문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951년 6월 17일, 그리스정교회와 그리스대학 신학교 교수들의 제안으로 <사도 바울의 그리스 방문 1,9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었다. 276명의 순례자가 카발(Kavala)에 모여  빌립보(Philippi)로 (추측건대 걸어서) 이동하여 기념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 예배 중 드려진 기도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고발자 앞에 당당히 서 있었던 당신이여,

피나는 채찍질에 고통당했던 당신이여,
믿음의 당당한 순교자 당신이여 . . .
 
우리의 생각을 내면의 감옥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발이 묶여있었고  한밤중에 당신이 주님을 향해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렸던
그 감옥으로 말입니다.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불행한 중에서도 주님을 찬양해야 함을 배우고 하시고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통까지 감수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옛날 감옥의 기초를 흔들어 놓았던 거대한 지진을 느낍니다. 
용기를 얻고 고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내면의 지진을 허락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오셔서 우리와 함께 서 계셔주시옵소서.
우리의 순례길과 영광송 위에 왕관을 씌워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전 세계로부터 모여든 이 사람들,
당신의 땀과 피의 열매 – 즙이 풍성한 열매 같은 이 사람들을 축복하시옵소서.
이 특별한 날, 당신께 한마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서약합니다.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나 권위나, 현재나 미래나,
 그 어떤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어떤 창조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음을 믿노라.’

오직 주님의 이름이 영원토록 축복받을지어다. 아멘!!

Originally from St Paul’s Arrival at Greece 1,900th Anniversary Festschrift, Athens 1953, pp. 151-152. 인용과 번역 from “Saint Paul the Apostle and Philippi” unknown publisher. p.14-15.

 

이형규 목사는 뉴잉글랜즈연회 소속으로 버몬트주에 위치한 Grace United Methodist Church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615-742-5470 또는 newsdesk@umnews.org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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