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개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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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살았던 뉴멕시코 알버커키는 지대가 5,000피트 높이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날씨의 변화가 아주 심한 도시였습니다. 3, 4월쯤 되면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집채가 흔들릴 정도였고,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겹겹의 모래바람이 한바탕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이 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쓰러버릴 듯이 한바탕 비가 요란하게 쏟아지다가도 금새 해가 쨍쨍 나고, 눈이 펑펑 내려서 온 도시를 꼼짝 못하게 매어 놓았다가도 한나절만 지나면 그 눈이 온데 간데 없이 녹아버리는 날씨를 매년 보았었습니다. 꽃샘추위도 얼마나 변덕스럽게 오는지 어느 때는 5월에도 눈이 내려서, 과일 나무들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많이 달렸다가도 그 꽃샘추위 때문에 울상을 짖는 모습도 많이 보았었습니다. 저는 알버커키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심한 꽃샘추위를 겪으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해가 쨍 하게 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흐린 날도 있고 또 바람이 심한 날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폭풍우가 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덕스럽고 요란한 날씨지만, 그것 후에는 반드시 해가 다시 떠올라서 개인 날이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곳 델라웨어의 지난 겨울도 어지간히 질펀 거리는 날씨였습니다. 무슨 눈이 사흘이 멀다고 오고 따뜻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기라도 하면 곧 이어 매섭게 추운 날씨가 닥쳐왔습니다. 어느 날은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이 끼어서 오늘도 맑은 하늘은 볼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오후가 되면서 밝은 태양이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날씨가 맑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마다 바람이 불지도 않습니다. 눈과 비가 오는 날이 있으면 해가 나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잠잠한 날도 있습니다. 아니 해나는 날과 잠잠한 날이 분명히 더 많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몸이 아픈 분들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소망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병이 날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예기치 않게 닥치는 어려움들입니다. 어떤 분은 그 아픈 가운데에서도 예전에 알지 못했던 세심한 주님의 손길과 섭리를 알게 된 기쁨을 어찌할 수 없어서, 병상에서 깨닫고 경험했던 일들을 열심히 들려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육신은 아프지만 그 중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아픔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아픔이 그저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속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들을 향한 또 다른 계획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님들도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곁에는 여러분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고 또한 기도하는 믿음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잠깐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천둥 치는 날쯤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밝은 해는 반드시 떠오를 것입니다. 개인 날은 꼭 돌아옵니다. 그리고 해가 비치고 맑은 날이 흐리고 비오는 날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학
조엘 마르티네스(Joel Martínez) 감독이 2011년 텍사스 엘파소에 있는 리디아 패터슨 신학교(Lydia Patterson Institute)에서 개최된 연합감리교회 히스패닉 전국 단체인 마차(MARCHA) 모임의 개회 예배에서 성찬식을 집례하고 있다.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성만찬 테이블 위에 놓아야 할 것과 놓지 말아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나요?

성만찬 테이블에 있어야 할 것은 성찬식을 거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개체교회
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 포스터. 사진 출처, universalpictures.com.

공포는 공포를 낳고…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냉전 시대 속 서로를 향한 두려움에 결국 인류를 학살할 무기를 만들어 냈던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통해, 그저 인간다움, 샬롬을 회복하자고 말한다.
개체교회
렘브란트가 죽기 직전인 1668~1669경에 그린 것으로 추측되는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의 일부분.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유작으로 미완성 작품이며,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은 전체 그림의 일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렘브란트의 탕자 이야기 3: 아버지 이야기

강혜성 목사는 렘브란트가 “돌아온 탕자”를 그리며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를 받아 천국 잔치에 참여하길 바랐다고 이야기한다. 강 목사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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