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에 나타난 기독교윤리 1

(편집자 주: 이 글은 기독교 윤리학자인 김영일 박사가 영화 <장미의 이름>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으로 해석한 글로,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와 윤리’ 시리즈 1-1편으로, 글의 길이 때문에 두 번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1. 영화의 줄거리

김영일 교수, 사진, 필자 제공.김영일 교수, 사진, 필자 제공.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가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1980년 이탈리아에서 된 움베르트 에코(Umbert Eco)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이 원작이다. 1327년 11월 이탈리아의 어느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벌어진 기이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원제:  Der Name der Rose, 1986, 
감독: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출연:  숀 코너리(Sean Connery), 크리스찬 슬레이터(Christian Slater), 머레이 에이브러햄
수상:  세자르상 외국어 영화상(1987), 독일 영화상(1987),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과 남우주연상(1988)  

이 영화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수도회, 즉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베네딕토 수도회 사이의 청빈에 대한 사상적인 갈등과 논쟁이다. 그런데 이 논쟁의 근저에는 철학적 이론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잘 이해하려면 다음 Section에 소개되는 철학적·신학적인 분야를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1327년 11월 이탈리아에 있는 한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아델모라는 수사가 사망한 채 발견된다. 아델모는 채식 장인 수도사로 베렝가리오와 동성애 관계의 사람이다. 그 일로 시끄러운 가운데 영국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인 윌리엄이 그의 시자인 아드소와 함께 수도원에 도착한다. 아드소는 이 소설/영화의 화자이다. 즉, 이 소설/영화의 이야기는 늙은 아드소가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수기이다. 그가 회상하는 1327년 당시 그는 18세 소년이었다. 수도사이긴 하지만, 젊은 청년이라서 때로는 연애소설의 구절을 읊다가 윌리엄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 우연한 기회에 마을 처녀와 애정을 나누고, 그 후에 상사병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윌리엄은 강한 학구열과 호기심을 가진 박학다식한 수도사이다. 이성과 지식을 중시하며 뛰어난 통찰력과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다. 성직자이지만 신학뿐만 아니라 수학과 천문학, 약초학 같은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자신의 식견을 총동원하여 수도원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 간다.

윌리엄이 아드소와 이 수도원에 온 이유는 이 수도원에서 청빈을 강조하는 프란시스코 수도회와 그것을 반박하는 교황청을 포함한 베네딕토 수도회 간에 토론회가 열리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그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그 일로 분주한 수도원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수도원장인 아보(Abo of Fossanova)는 윌리엄에게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청한다. 이를 수락한 윌리엄이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살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수도원은 공포의 분위기가 감돌게 된다.

수사를 해가던 윌리엄은 이 사건의 중심에 수도원 도서관이 있다고 보고 수도사들을 탐문한다. 윌리엄은 수도원에서 나이가 많은 수사 중 한 사람인 호르헤 수사와 웃음의 신학적인 의미와 태도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호르헤는 젊었을 때 눈이 멀어서 시각장애인으로 살았으나 명석한 두뇌를 소유했기 때문에 그 수도원의 거대한 도서관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웃음을 악마로 간주하여 웃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한편, 윌리엄은 죽은 수사마다 혀와 손가락 끝에 검은 잉크 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연쇄 살인과 수도원의 도서관이 관련이 있음을 간파한 그는 도서관에 진입하려고 애쓴다. 수도원 도서관에는 온갖 고귀한 고서가 즐비한데, 그래서인지 수도원의 수도사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도서관의 비밀 구역은 저주가 걸려 있어서 누구든 그곳에 들어가면 죽게 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성적인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무장한 윌리엄이 그런 소문에 영향받을 리는 만무했고, 결국, 그는 그 비밀 구역에 비밀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책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군가 그 책에 독을 묻혀놓았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으로 그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웃음을 허용하는 것은 사회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고, 그리고 진리를 웃음과 같은 경박한 것으로 추하게 만들 수 없다는 노파심과 광기 때문에, 호르헤 수도사는 <시학 2권>이 종교와 사회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그 책에 독을 묻혀놓은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2. 영화 속의 윤리

<장미의 이름>은 난해하고 역사적이며 철학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다음의 질문들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 도대체 왜 살인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는가?
  2. 그들은 왜 그토록 진지한 논쟁을 벌였나?
  3.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은 중세 시대와 그 전후의 종교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위의 질문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1번 질문에 대해서는 영화의 줄거리에서 대충 그 이유가 밝혀졌다. 그러므로 우선 영화 속에서 대립하는 가톨릭 내의 두 종파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다음에는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된 사유의 철학적· 신학적 근거인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이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프란치스코회와 베네딕토회의 차이

우리가 우선 알아야 하는 사실은 중세 시대는 이단 논쟁과 미신,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비이성적 측면이 강한 사회였고, 또한 당시 수도원들은 대부분 평민으로부터 세금(돈, 재산, 곡물 등)을 걷어 유지한 탓에 권위와 신앙으로 포장된 오류라고 지적받기도 한다.

한 예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와 베네딕토회 간의 중요한 대립이 바로 소유에 관한 신학적인 견해차이다. 작은형제회가 주장하는 요지는 “예수는 지구상에 있을 때 스스로 소유한 재산이 없고 모두 빌린 것”이라는 명제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의 모든 수도회는 예수의 뜻대로 청빈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회의 정식 명칭은 ‘Ordo Fratrum Minorum(OFM)’, 즉 ‘더작은형제회’로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가 사용한 이름이다.

그러면 두 수도회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프란치스코 수도회

베네딕토 수도회

창시연도

1209년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525~540년경 이탈리아 카푸아 몬테카시노의 수도원

창시자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

성 베네딕토/St. Benedict

신학/정신

청빈 정신

‘작은형제회’로 출발

이성을 강조

웃음을 허용

금욕 생활과 기도 생활 강조, 재력과 권력 허용, 노동과 자기 향상에 바탕을 둠; 부 축적; 계시, 경건, 순종 강조 웃음은 불경하다며 금지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차이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철학과 윤리를 배경으로 한 신학적 토론이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철학과 윤리의 배경은 바로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사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인과 행복이 중심이고, 옳은 삶 혹은 선한 삶이 초점이지만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들의 접근 방법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몇 가지 요소의 혼합체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이성, 정서, 그리고 욕망의 세 요소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이성의 지배를 통해서 정서와 욕망을 인간의 삶 속에 불러들여 이 세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제공하는 주간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플라톤은 ‘2층의 세계관’(1)을 주장했는데, 2층의 세계관이란 완전하고 불변하는 세계가 저기 있고(이데아의 세계),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변화하고 불완전하다는 것(현실 세계)이다. 저세상이 원본이고, 이 세상은 그 완전한 세계의 그림자라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이성이 정서의 세계와 욕망의 세계를 통솔한다’라는 말은 완전한 저세상의 상징인 정의와 선함을 따르고 순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여러 가지 차원에서 그의 스승과 달랐다. 그의 철학적 윤리관을 보면,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며, 자아실현이 최고의 선으로 간주된다.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얻고 자아실현을 성취하려면 각자의 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타고난 기능을 찾아서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한 삶이 곧 선한 삶인데, 선한 삶이란 행동하는 삶(life of doing)이며, 그것은 ‘선한 원칙’(good principles)들에 의해서 주관되는 삶의 활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선한 원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양극단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인데, 이를 ‘중용의 교리’(the doctrine of the Golden Mean)라고 한다. 윤리적인 덕목은 행위에 있어서 양쪽의 극단을 피하고, 그 대신 양극의 중위를 취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예를 들면, 용기의 덕은 양극인 경솔도 비겁도 아니라 그 중간이라는 것이다. 비겁은 위험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이고, 경솔은 위험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너그러움의 덕은 인색함과 낭비의 중용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철학적 윤리 사상을 비교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플라톤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방법론

Top down/위로부터 아래로

Bottom up/아래로부터 위로

시발점

Rationality/ Idea

Reality/Substance 본질

세계관

이상 세계

이데아가 영원불멸의 실존

현실 세계

기초적인 존재는 바로 개체적인 존재

 

 

 

 

 



(2편에서 계속)


[1] 이 ‘2층의 세계관’이란 표현은 필자가 붙인 이름이다.

[2] Purtill, Thinking About Ethics, pp. 132-133.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인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선교
2025년 4월 23일, 정희수 감독이 이끄는 오하이오 감독구 지도자들이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아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와 그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사진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제막된 윌리엄 밴턴 스크랜턴 선교사와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 기념비.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오하이오 지도자들 스크랜턴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을 방문하다

연합감리교회 오하이오 감독구 지도자들이 미감리교회가 1885년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턴과 메리 스크랜턴의 선교 발자취를 밟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개체교회
영화 <Her(그녀)>의 트레일러 갈무리.

인공지능 HER의 사랑과 외롭고 불완전하고 서툰 인간의 사랑과…

현혜원 목사는 인공지능 시대에 AI와의 사랑을 나눈 영화 HER를 리뷰하며, “하나님은 완벽한 기계의 논리 속이 아니라, 때로는 미숙하고 불안정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거하십니다.”라고 말한다.
개체교회
지난해 4월 21일, 로스펠리즈 연합감리교회에서는 21명의 새 교우가 입교식을 가졌다. 사진은 입교식 후 열린 환영식 모습. 사진 제공, 로스펠리즈 연합감리교회.

잿더미에서 피어난 불사조, 로스펠리즈 연합감리교회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로스펠리즈 연합감리교회(담임 이석부 목사)가 교단 탈퇴의 여파로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고, 21명의 새 신자 입교와 영어 목회 시작 및 다문화 사역 확대 등으로 다시 힘찬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is an agenc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2025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