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단순한 절차를 넘어 공동체의 영성과 민주주의의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같은 인식 속에서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질서 있게 이끄는 대표적 기준서이자, 교회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지닌 『새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Robert’s Rules of Order Newly Revised, RONR) 제12판』이 김찬희 박사의 번역으로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간됐다.
연합감리교회 은퇴 목사이자 미 의사진행전문가협회(NAP) 회원인 김찬희 박사는 2009년 『회의진행법 입문: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 개요』를 번역∙출간한 데 이어, 2025년 『로버트의 의사규칙 제12판에 따른 회의진행 길잡이』를 펴냈다. 그리고 같은 해, 본문 약 750페이지와 부록 135페이지에 달하는 제12판 완역본을 선보이며, 한국 교회와 사회에 로버트 의사규칙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김 박사는 연합감리교회 내에서 오랜 기간 회의 전문가로 섬겨 왔으며, 이번 번역은 방대한 원서를 한국어로 체계적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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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헨리 마틴 로버트(Henry Martyn Robert) 장군이 처음 집필한 이후 150여 년간 발전해 온 이 책은 2020년 제12판으로 개정되며 전자회의와 전자투표 등 현대적 환경을 반영했다. 이번 개정판은 민주적 의결 과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버트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명확하다. 서로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회의에서 혼란과 비효율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회의를 위해 “표준화된 규칙”을 체계화하여 하나의 매뉴얼로 정리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민주적 원칙이다:
- 다수의 권리 보호
- 소수의 발언권 보장
- 공정한 토론 절차
- 질서 있는 의결 과정
이러한 원칙은 교회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앙 공동체라 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갈등은 오히려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2판은 기존 규칙을 더 명확하게 정리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확장했다.
주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한부 연기(제14절): 관련 규칙을 정리하고 토론 및 표결 방식을 명확히 함
- 토론 제한 또는 연장(제15절): 다양한 형태의 적용 결과를 구체화
- 보류(제17절): 규칙을 더욱 체계적으로 재정리
- 규칙 발언(제23절): 지속적 규칙 위반에 대한 대응 강화
- 보류 철회(제34절): 시간제한 및 처리 절차 명확화
- 표결재심(제37절): 관련 규칙을 전면 재구성
- 회의록(의사록) 및 임원의 보고(제48절): 기록 방식과 승인 절차를 상세히 규정
- 전자회의: 부칙을 통해 본보기 규칙 제시
팬데믹 이후 교회와 기관들은 온라인 회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면 너머의 회의’에서도 공정성과 질서를 유지할 규칙이 필요해졌다.
제12판은 디지털 시대의 현실을 담은 전자회의 규정을 포함한 본보기 규칙을 제시한다. 이 규정은 디지털 환경 속 회의의 공정성과 질서를 강화하는 중요한 변화로 평가된다.
규칙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 발언권 요청 및 부여 방식
- 온라인 투표의 공정성 확보
- 참석자 확인 및 정족수 유지
- 기술적 문제 발생 시 대응
이러한 규정은 회의 공간이 바뀌더라도 민주적 절차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제7장 “우선동의(Privileged Motions)”는 현재 논의 중인 안건보다 더 시급한 사안을 처리하기 위한 동의로, 회의 진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동의는 회의의 흐름을 즉각적으로 전환할 힘을 가지며, 다른 모든 동의보다 우선권을 갖기 때문에 회의의 긴급성과 질서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우선동의는 다음과 같다:
- 당일 일정 촉진
- 특권 문제 제기
- 휴식
- 폐회
- 속회 일시 결정
제12판의 또 다른 강점은 부록에 포함된 “종류별 동의 일람표 및 순위 동의들의 적용 규칙”으로, 실제 회의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로 기능한다.
이 표는 복잡한 절차를 한눈에 보여 주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공한다:
- 어떤 동의가 우선하는가?
- 어떤 동의가 수정 가능한가?
- 토론이 가능한가?
- 어떤 표결 방식이 필요한가?
또한, 다음과 같은 기본 용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원동의 (Main Motion)
- 보조동의 (Subsidiary Motions)
- 우선동의 (Privileged Motions)
- 부수동의 (Incidental Motions)
- 재상정동의 (Motions that bring a question again before the assembly)
이 책의 최초 저자인 헨리 로버트는 “법이 없고, 각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곳에는 진정한 자유가 희박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김찬희 박사는 이를 회의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의결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 사회가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실제 의결 과정의 문화와 기술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 책이 그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같은 통찰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적 의사결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새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은 국회나 기업뿐 아니라 개체교회에도 필요한 지침서로 평가된다.
김 박사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질서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도록 돕는 틀이다.”
회의가 감정에 의해 좌우될 때 공동체는 쉽게 분열된다. 그러나 공정한 절차가 마련되면,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으며 하나의 방향으로 모일 수 있다.
『새 개정 로버트의 의사규칙』 제12판은 단순한 회의 매뉴얼이 아니다.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며,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전자회의 시대와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다음과 같은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 공정성
- 참여
- 질서
- 책임
이 네 가지는 건강한 교회와 사회를 세우는 기초가 된다.
김찬희 박사의 번역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워진 이 책은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적 의결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질서 있는 회의는 단순한 효율성을 넘어, 공동체가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함께 분별해 가는 과정이다. 그 길 위에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한 나침반으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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