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감리교회의 태동과 분열 그리고 통합의 역사(2부)

윤인선 목사가 레저렉션교회에서 열린 리더쉽이스티튜트에서 제프 마케이 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제공, 윤인선 목사지난 9월 25-27일, 캔사스주 리우드의 레저렉션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리더쉽인스티튜트>에서 제프 마케이 목사와 윤인선 목사. 사진 제공, 윤인선 목사.

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미감리교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떠한 문제로 갈등을 겪었으며, 그 갈등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3번에 걸쳐 싣는다. 오늘은 그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미감리교회와 노예제도에 관한 글이다.

 

흑인 감리교단의 출발

미감리교회에 속한 흑인 교인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었다.

필라델피아 세인트조오지교회의 설교자인 리차드 알렌(Richard Allen)은 예배 시간에 백인 회중과 흑인 회중이 좌석을 분리해서 앉도록 한 결정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벧엘교회를 세웠다.

흑인 회중에 대한 차별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1816년 알렌은 흑인 교회 대표자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아프리카감독감리교회(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조직하고, 알렌을 초대 감독으로 추대했다.

다른 흑인 회중들도 속속 자신들의 교단을 만들었다. 

1813년 9월 18일, 피터 스펜서(Peter Spencer)와 그의 추종자들은 델라웨어의 윌밍턴감리교회에서 아프리카회중연합교회(Union Church of African Members)를 조직했다.

아프리카시온감리교회(African Methodist Episcopal Zion Church)는 주로 뉴헤이븐, 필라델피아, 롱아일랜드 그리고 뉴욕 등의 교회를 중심으로 1821년 조직되었으며, 제임스 배릭(James Varick)을 초대 감독으로 추대했다.

아프리카시온감리교회 교인들이 부활주일에 모여 찍은 사진, 1925. 아프리카시온감리교회는 1821년 뉴욕에서 설립되어, 남북전쟁 중 남부로 이동하여 새로 해방된 노예들을 보살폈다. 사진, new Georgia Encyclopedia에서 발췌. https://www.georgiaencyclopedia.org/articles/arts-culture/methodist-church-overview#African-Methodist-Episcopal-Church,-Zion아프리카시온감리교회 교인들이 부활주일에 모여 찍은 사진, 1925. 아프리카시온감리교회는 1821년 뉴욕에서 설립되어, 남북전쟁 중 남부로 이동하여 새로 해방된 노예들을 보살폈다. 사진, new Georgia Encyclopedia에서 발췌. https://www.georgiaencyclopedia.org/articles/arts-culture/methodist-church-overview#African-Methodist-Episcopal-Church,-Zion

 

노예제도와 남감리교회의 분열

미감리교회는 노예제도에 강력하게 반대해 온 웨슬리의 영향으로, 1836년과 1840년 총회에서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인은 노예제도는 종교와는 무관한 순수한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교회 또한 노예를 소유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 대한 구체적인 치리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해왔다.

리차드 알렌, 듀발의 판화, 1830. 사진 연합감리교회 교회역사보존위원회 제공.리차드 알렌, 듀발의 판화, 1830. 사진 연합감리교회 교회역사보존위원회 제공.

감독들 역시 이 문제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우려하여, 가급적이면 이 안건을 다루려 하지 않았다.

1836년 감독들은 “안전하고, 성서적이며, 조심스러운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모두 민감한 문제를 일으키는 이 주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뉴잉글랜드연회의 오랜지 스콧(Orange Scott)을 비롯한 노예제도 철폐주의자들은 노예제도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미감리교회를 비판하며, 1843년 ‘웨슬리감리교회(Wesleyan Methodist Church)’를 조직했다.

1844년 뉴욕에서 개최된 총회에서는 노예 문제에 대한 두 가지 의제가 논의되었다.

첫째는 프랜시스 하딩의 목사 자격 박탈이었다.

볼티모어연회의 프랜시스 하딩(Francis Harding)이 결혼할 때 부인이 데려온 노예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계속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로, 총회는 그의 목사 자격을 박탈했다.

두 번째는 제임스 앤드류(James O. Andrew) 감독의 정직 결정이었다.

제임스 앤드류(James O. Andrew) 감독이 그의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부인이 소유하던 두 명의 노예를 상속해서 소유한 일과 두 번째 부인 역시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앤드류는 자신이 결코 노예를 사거나 판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사정상 가족 소유의 노예들을 해방해주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오랜 논쟁 후, 총회는 앤드류의 감독직 수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남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의 분리

하딩의 목회자 자격 박탈과 앤드류 감독의 감독 직책 수행 정지 결정이 내려지고 며칠 후, 뉴욕 총회에서는 교단 분리에 관한 계획안이 상정되었다.

이 안건은 노예제도가 합법인 주에 있는 연회들은 그들만의 지역을 조직하게 하고, 노예제도를 합법화하는 주와 금지하는 주의 경계선에 있는 연회나 개체교회는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목회자들도 자유롭게 어느 연회에 속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했다.

총회에서 교단 분리안은 암묵적으로 통과되었고, 노예 소유를 허용하는 주에 속한 연회의 대표들은 1845년 켄터키의 루이빌에 모여 미감리교회로부터 분리하기로 했다. 그들은 새로운 교단의 이름을 남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로 정하고, 계속해서 미감리교회와 형제 교단 관계를 유지하기 원했다.

그들은 미감리교회 직전 총회에서 감독직 수행 정지를 당한 제임스 앤드류(James O. Andrew) 감독과 죠슈아 소울(Joshua Soule) 감독을 그들의 감독으로 추대했고, 첫 번째 총회를 1846년 버지니아의 피터스버그에서 개최했다.

남감리교회는 자체적인 교리와 장정 및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했다.

1848년에 개최된 미(북)감리교회의 총회 대의원들은 남감리교회가 교단을 탈퇴하여 새로운 교단을 창립할 수 있도록 허락한 1844년 총회의 결정을 성토하고, 지난 총회에서 결정된 교단 분리 계획은 교회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언하며, 남감리교회와의 형제 교단 관계를 단절하기로 했다.

 

자유감리교회(Free Methodist)의 출범

1860년 뉴욕주 페킨(Pekin)에서는 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노예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미(북)감리교회의 여러 그룹이 모여 ‘자유감리교회(Free Methodist)’를 조직했다.

이 그룹은 노예제도와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류층이 소유한 회중석이 가난한 사람들과 농부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를 들어 회중석(Pew)의 사유화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같은 이유로 약정헌금(pledge)을 반대하고,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헌금(free will offering)할 것을 강조했다.

한편, 남감리교회에서는 미(북)감리교회의 총칙(General Rules)에 포함되어 있던 노예매매 금지조항을 폐지했으며, 노예 문제는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다루어야 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3부에서 계속)

 

관련 기사 보기:

미감리교회의 태동과 분열 그리고 통합의 역사(1부)

미감리교회의 태동과 분열 그리고 통합의 역사(3부)

윤인선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1988년)와 동 대학원(1991년)을 졸업하고 도미하여 드루신학교에서 교회사로 박사학위(2008년)를 받았다. 한국 기독교감리회에서 안수를 받았고, 지금은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연회 소속으로 시카고 근교에 있는 다우너스그로브의 훼이스연합감리교회의 담임으로 섬기고 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615-742-5470 또는 [email protected]로 하시기 바랍니다.

인종차별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적인 행위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 격화되고 있다. 사진, 연합감리교 총감독회 웹사이트.

연합감리교 총감독회 브루스 오 감독의 인종차별 반대 성명서에 지지를 표하다

연합감리교 총감독회는 브루스 오 감독의 인종차별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맞서 싸우자는 성명서를 지지했다.
신학
벨린메모리얼 연합감리교회 부목사(오른쪽) 월터 캔트웰과 청소년사역자 오스틴 본드(왼쪽)가 마샬 그린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사진, 벤자민 코이.

연합감리교회는 세례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다고 이해하나요?

연합감리교회는 세례를 초대교회부터 이해해 온 “물과 성령”에 의한 세례로 이해하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베풀고 있습니다.
개체교회
김정호 목사가 자신을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써 달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김정호 목사.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자

우리 변화의 목표는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으로 돌아가고, 십자가로 돌아가고,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종교개혁과 감리교운동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