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문을 연 아씨시의 성 프랜시스

오랫동안 ‘중세 시대’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주제였다. 동기도 관심도 없었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고 감리교 목사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중세 시대라는 주제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 때문이다. 바로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시오노 나나미 지음, 서울문화사)다. 책을 읽는 중에 전광석화처럼 가슴에 꽂힌 구절이 있었다.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황제 프리드리히 2세야말로, 중세에 살면서 르네상스의 문을 연 사람들이다.”(상권, 27쪽) 이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고 신기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그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를 뛰어넘어 시대를 앞서가는 삶을 살게 됐을까?

책으로는 부족하다. 그래! 가봐야 한다. 직접 보고, 걸어보고, 느껴봐야 한다.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아씨시를 찾아가게 되었다.

보스턴을 떠나 24시간 만에 도착한 움브리아의 작은 마을 아씨시 기차역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800년 전 한 수도사의 겸손하고 소박한 삶이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이윽고 거대한 파도가 되어 새 시대를 예고했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례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음을.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산등성이로 올라가니 좁은 옛길들 사이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순례자들을 환영하는 숙소와 식당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단 오늘 저녁은 쉬자.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제공해 준 간단한 조식을 먹고 아씨시 대성당으로 향했다. 800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옛 도시의 뒷골목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성 프랜시스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좁은 골목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로구나! 마을의 서쪽 끝, 아래로 드넓은 평원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대성당이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벌써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현재의 바실리카 대성당은 3층으로 되어 있다. 지하에 자리한 성 프랜시스의 무덤 위에 1층과 2층, 이중 교회 형태로 축조한 것이다. 대성당은 예수의 생애와 성 프랜시스의 생애를 그린 벽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중세 시대에 일반 평민들은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성경 이야기를 전하려 했던 것처럼, 그림을 통해서 이 지역이 낳은 성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그래도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없다. 간혹 단체 순례자들이 조용히 부르는 챈트는 그 장엄한 공간을 더 거룩하게 하고, 순례자들의 마음을 더 정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공간에 서서 성인의 삶을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사해지는 느낌이랄까? 그 순간 깨달았다. 아하! 이것이 바로 면죄부 효과로구나!

예루살렘 성묘교회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완전한 면죄부를 주겠다는 교황의 선언은 그것의 정치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자들만 느낄 수 있는 영적 체험은 그 자체로 특별하니까.

그 벽화들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침묵의 메시지는 언어로 표현 불가능하다.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대성당을 ‘움브리아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직접 방문한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는 진실임에 틀림없다. 황홀한 아름다움이다. 일종의 감각적 환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순간 도발적인 선언을 해야겠다. 나의 아씨시 방문 하이라이트는 대성당이 아니고, ‘성 다미아노’(San Damiano) 채플이라고 말이다.

성 다미아노 채플은 성 프랜시스가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을 들었다는 곳이다. 대성당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단체 방문자들은 아예 없고 소수의 사람만이 뜰 앞에서 오후 관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채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소박함에 놀랐다. 내부 장식이 거의 없다. 공간도 아주 협소해 기껏해야 2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본당이다.

그런데 그곳은 신비로운 영적 기운이 꽉 차 있어 저절로 무릎 꿇게 만드는 공간이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아 ~ 하나님! 이곳이 진짜 순례길이군요. 이렇게 소박하고 초라한 공간에서 세상을 바꾸는 당신의 일이 시작되었군요!’

성 다미아노’(San Damiano) 채플 내부 전경.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다미아노’(San Damiano) 채플 내부 전경.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성 다미아노 채플은 아씨시에 있던 몇 개의 작은 채플 중 하나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미아노 채플은 주후 287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시대에 순교당한 시리아 기독교인 내과의사 다미안(Damian)과 그의 형제 코스마스(Cosmas)에 헌정된 건물이다. 성 프랜시스 생전에도 미사가 집전되기는커녕, 찾는 이도 거의 없었고 지붕이 거의 무너질 듯 황폐하고 버려진 공간이었다.

오직 하나―제단 위에 비잔틴 양식의 큰 나무 십자가만 달려 있었다. 무명의 시리아 수도사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십자가는 오늘날 아씨시와 성 프랜시스 순례길의 상징물이다. 성 프랜시스는 십자가 하나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그 쓰러져가는 채플에 자주 드나들었다. 마음의 평안을 찾아 그곳에 갔을 것이다.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 대부분의 사람은 질병과 가난에 짓눌려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방황하던 성 프랜시스는 그날도 채플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존재 안에 가득한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내려 주십사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알게 해달라고.

갑자기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두 눈이 살아서 그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거룩한 음성이 들렸다. 아주 선명한 예수의 말씀이었다.

“Francisce, vade et repara domum meam! “프랜시스! 가서 무너져가는 내 집을 수리하라!” (Arnaldo Fortini: Francis of Assisi, 216 쪽). 

성 프랜시스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쇠한 사제를 찾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건넸다. 십자가 앞의 등불을 다시 밝혀달라고 하면서.

성 다미아노 채플에서 조우한 강렬한 영적 에너지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성당과 비교하면 찾는 이 별로 없는, 참으로 작고 소박한 채플에서 나는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가 떠올랐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구세주가 비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역설 말이다. 공생애 동안 예수가 직접 보여주셨듯이, 우리 하나님은 그토록 낮은 곳, 더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곳, 그러나 간절한 열망이 있는 곳에 더 강력하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영적 진리 말이다.

눈을 감은 채로...  성 프랜시스가 보여준 평화 운동의 근원을 묵상해 보았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가 뇌리를 맴돈다.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를 연 그의 정신세계의 정수는 무엇일까? 청빈, 순종, 섬김 - 이 세 가지 덕목이 성 프랜시스가 펼친 평화 운동의 대성공 이유일까?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대학 도서관 서가를 뒤졌다. 신학과 신앙의 관점이 아닌,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행적을 평가한 자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낸 대답은 바로 ‘the Third Order’이다. ‘제3계급’이라는 뜻으로 가톨릭 기록에는 ‘The Order of Penitents’로 되어 있다. 이 ‘제3계급’(Tertiaries)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성 프랜시스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평신도 그룹을 지칭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인용한 성 프랜시스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수도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수도사가 된다면 사회는 존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동의하더라도 수도사가 되는 데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속인의 생활을 계속하길 바란다. 이 사람들을 ‘제3계급(테르자 오르디네)’이라고 부르자. 세상에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있음을 항상 잊지 않고 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신적∙물질적으로 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평소에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공업과 상업에 전념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모은 조직이라는 의미다. 이윤 일부를 우리 수도원에 기부해 주면 신자의 의무도 다하는 것이다. 또 시간이 생기면 근처 수도원에 가서 일주일쯤 수도사 생활을 한다면 ‘제3계급’의 일원으로 충분하다.”(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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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랜시스는 어떻게 이 새로운 계급을 생각해 냈을까? 간단히 말해서, 영주 밑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크고 작은 전쟁에 가담하도록 계약되어 있던 가신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전쟁을 줄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 제3계급은 첫째, 무기를 갖지 못하고; 둘째, 그 어떤 서약도 하지 못하며; 셋째, 신앙인이지만 속세에 살면서 교회 지도자에게만 복종할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이 계급은 남녀 구별 없이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물결은 당시 유럽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후 불과 몇십 년 만에 이탈리아인의 절반이 이 제3 계급 주위에 몰려들었다.(Hilarin Felder: The Ideals of St. Francis of Assisi, 293쪽) 1221년 12월 16일, 교황 호노리우스 3세는 칙령을 공표해 ‘제3계급’을 공인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감독(Bishop)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궁금증이 풀리면서 나는 성 프랜시스의 깊은 사고력과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이 성인의 위대함은, 모범적인 삶을 실천하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탄생시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선포하고, 그들이 세상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에 바탕한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 낸 것이다.   

혁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떤 학자는 ‘민주적 표준’(democratic standard)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본주의는 13세기 성 프란체스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까지 고백한다.(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권. 377쪽)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평화 운동을 일으킬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겸손, 청빈, 순종의 미덕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이고 강력한 힘은 ‘하나님의 심정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The Doctrine of Love”이다.

우리 시대의 평화 운동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거룩한 존재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행동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교회야말로 그런 신학과 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사도 바울의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빌립보서 1:8)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핵심이다. 오직 예수가 가졌던 심정으로 매일 주어진 목회와 삶을 살아낼 수 있을 뿐.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성 프랜시스가 모방했던 예수의 ‘심장’과 ‘심정’을 가슴에 새기며 목회 현장으로, 삶의 현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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