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레이디 두아>의 세상을 살아가는 스토너의 이야기

(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The Art of Sarah)>에 대한 현혜원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

제 머리는 악성 곱슬입니다. 외형적 아름다움이 중요한 한국 문화에서 자란 저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 머리를 펴곤 했습니다. 창포물에 감은 듯 찰랑거리는 생머리의 중요함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라면, 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생머리를 포기하고 자연 곱슬머리로 돌아갔을 때, 주위 사람들이 "너의 머리는 당연히 생머리인 줄 알았어"라며 탄식하는 말을 건넸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더니 주위 사람 모두 저를 타고난 생머리의 소유자로 알았던 것입니다.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은, 어쩌면 이렇게도 쉽습니다.

누가 가짜의 삶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런저런 거짓말에 익숙한 삶을 살아갑니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참모습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올리는 것을 생각해 보죠. 거짓이라기보다는 보이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전시'하는 것 말이에요. 그러나 그 '전시'가 지나쳐 자신의 모든 모습을 대체한다면 어떨까요?

요즈음 넷플릭스에서 화제인 한국 드라마 <레이디 두아(The Art of Sarah)>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디서나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지만 어디서도 진짜 그녀를 만날 수 없는 사라 킴의 이야기입니다. 연기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소름 끼치게 잘할 줄은 몰랐던 신혜선 씨가 사라 킴으로 나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세상은 잔인하기까지 해서, 이미 잃을 것도 없던 사라를 나락 밑바닥까지 추락시킵니다. 서울의 한 명품관에서 일하던 그녀는 한순간의 실수가 연달아 실수를 낳으면서 순식간에 5억 원의 사채가 생겨버립니다. 결국 그녀는 저수지에 몸을 던지며 이 더러운 세상을 등지기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고 살기로 결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배신한 세상을 자신도 배신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어차피 진짜인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니, 가짜로라도 세상이 믿어주는 존재가 되기로 한 것이죠.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넷플릭스.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 두아>의 스틸컷. 사진 출처, 넷플릭스.

그녀가 선택한 무기는 '이미지'였습니다. 가난하고 실패한 본모습 대신, 외국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 왕실에만 비밀리에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 '부두아'의 아시아 지사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녀의 정체도, 그녀가 만들어낸 브랜드도 모두 허상이지만, 사람들은 실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가방이 풍기는 '성공'의 이미지가 그들이 원하는 전부이거든요.

드라마는 8화 내내 긴장감 있게 달려갑니다. 이틀 만에 다 볼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섬찟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이라 끝이 몹시 궁금했고, 동시에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쩌면 <이상한 레이디 두아의 세상> 같기도 합니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더욱 쉽고, 성공의 달콤함이 진실의 투박함을 손쉽게 대체하는 세상이요. 드라마 속 세상은 결국 바뀌지 않습니다. 성공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자들이 더 성공하고, 그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세상과 너무 닮아 있는 듯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미지 출처, amazon.com.이미지 출처, amazon.com.

그 질문을 품은 채 읽게 된 소설이 있습니다. 입소문으로 명성을 얻었고 많은 사람이 인생 책으로 꼽는다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Stoner)>입니다. 읽고 나서 마음이 저릿하도록 아프고 한동안 멍하니 있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생을 끈질기게 들여다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그의 삶을 끈질기게 바라봐주는 것만으로, 스토너의 삶은 어느새 특별해집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특별하게 '봐주기' 때문에요.

스토너는 평범하고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평생을 영문학과 부교수로 일하다 은퇴를 앞두고 암으로 죽습니다. 책 한 권을 냈지만 금세 잊힐 법한 무난한 책이었고, 평생을 가르쳤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교수도 아니었습니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실패였고, 마흔 중반에 만난 사랑은 결국 헤어져야 했습니다. 삶의 빛이었던 딸마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술에 절어 시들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고요. 인생에 점수를 매긴다면, 슬프지만 아마 중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토너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너무나 사랑하고 우직하게 수행하는 신실함이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잊었습니다. 실패한 결혼도, 떠나보낸 사랑도, 시들어가는 딸도 — 그 황홀경의 순간만큼은 그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그는 나머지 삶을 기꺼이 감내하는 듯 보일 정도입니다.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의 스토너에게 한 교수가 영문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건넨 말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도 그럴 것이, 농과대학에 입학한 그가 종일 듣는 수업은 오직 영문학 과목뿐이었거든요. 그는 영문학과 사랑에 빠진 것이었지요. 그렇게 그는 평생을 자신이 사랑에 빠진 영문학과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비록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이룬 결과는 중간 정도였더라도요.

스토너는 어떤 의미로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입에 발린 말 따위는 하지 못하는 성정 탓에 학과장이 되는 등의 성공은 애초에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쓴 책 한 권은 금세 잊힐 법한, 지독히도 평범한 책이었고요.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쓰러울 정도로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일을 평생 한다는 것, 우리 모두가 얼마나 부러워할 일인가요.

사라 킴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녀가 열렬히 사랑한 것은 ‘인정’이었습니다. 실체 없는, 허무하고 덧없는 인정을 위해 그녀 자신마저 불태워버립니다. 그러나 스토너는 달랐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억해 주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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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중독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토너의 삶이 이토록 저릿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도 언젠가 한 번쯤은 세상의 시선을 잊은 채 그저 사랑에 빠진 일을 할 수 있기를. 비록 결과가 중간 정도일지라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랑일지라도 말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성공을 찬양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사라 킴처럼 살기를 원할까요, 스토너 같은 삶을 원할까요? 이카로스처럼 밀랍 날개가 녹아내리는 줄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솟구쳐 오르기를 원할까요, 아니면 순수한 사랑의 열정으로 지극히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할까요.

저는 이것이 이번 사순절 기간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미지와 허상을 걷어낸 자리에서 순수한 사랑을 찾는 기쁨이,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순수한 기쁨을 선사하는 그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인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4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Top of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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