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큰 아이가 지난 주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사춘기를 어렵게 보낸 아이인지라 많은 아픔과 미안함 그리고 감사가 있었던 졸업식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보다는 큰 아이에게 제가 특별히 미안한 마음이 가는 이유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 없음과 조급함으로 첫째를 키우며, 아이 입장에서보다는 남에게 보이는 목사의 입장에서 그 아이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또래끼리 싸울라치면 언제나 저는 제 아이를 먼저 나무랬습니다. 아이끼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언제나 “너는 목사 아들인데…” 하며, 아이를 다짜고짜 먼저 혼냈던 일이라든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아이가 잠자리에 자주 실례(?)을 하였는데, 그것이 탈장으로 인한 증세임을 모른 체 무턱대고 아이를 혼냈던 일. 나중에 소아과에서 건강 검진하던 중 탈장을 발견하고 수술하면서 제대로 아이의 상황을 살피지도 못한 채 아이에게 상처만 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뜨기 아빠가 아이를 잡았다는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큰 아이가 중고등학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공부 잘해야 하고, 싸우지 말아야 하고… 이런 강요에 드디어 반항하면서 많은 경우 저의 바램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몸이 커지면서 더 이상 말이나 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단계가 되면서, 저의 매일의 기도 제목은 바로 큰 아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더 반항의 강도를 높이는 아이를 대하면서 당시 저의 목회가 무너질 정도로 안타깝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새벽마다 엎드리며 아이를 위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도가 반년쯤 되어 가던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제게 와 닿았습니다. “그 아이는 내 아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내게 맡겨라.” 그 날 이후로 아이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하여 저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내가 걱정하고 난리를 치는가…” 아마 그때부터 아이가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아이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와 간섭이 아니라, 그 아이를 책임져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순간부터 아이를 대하는 저의 태도도 변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둘째에 비해서 첫째 아이에게 더 미안했던 것이 바로 부모로서 경험이 없는 미숙함 때문에 준 상처였는데,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이런 저의 미련함을 채워 주시고 책임져 주신 하나님이, 제 아이의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이렇게 번듯하게 대학을 졸업하여 건강한 사회인으로 발걸음을 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센터빌에 부임해 온 지 어느덧 일년이 되갑니다. 20년간 청년 목회만 하였기에 장년 목회에서는 풋내기 목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고 성숙하지 못했던 일 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방향 잃은 열심과 말들로 교우들에게 상처를 드리지는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벽마다 엎드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이 교회의 주인은 오직 당신입니다. 당신께 온전히 맡깁니다.”

한인총회는 5월 개최하기로 한 2020년 정기총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2019년 총회의 강대상 모습.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단신) 한인총회 5월 총회 연기하기로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는 5월 18-21일로 예정되었던 한인총회를 연기했다.
다문화 섬김
이성호 목사(뒷줄 오른쪽 끝)가 교인들과 점심을 함께한 후. 사진 제공, 이성호 목사.

타인종 목회를 CRCC Ministry Network라고 부르자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어 열방의 아버지 되었고, 사래가 사라가 되어 열방의 어머니 되었으며,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가 되었듯이, 다양한 목회를 하는 한국계 목회자들도 이름을 바꾸고 교단의 주역이 되고 미국의 주축이 되기를 바라며 이 제안을 드린다.
사회적 관심
도은배 목사가 예배 중 설교하는 모습. 사진 제공, 도은배 목사.

나에겐 불편한 <타인종>이란 말

우리는 하나님처럼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타인종>이란 배타적인 느낌의 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