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한 마리 양이라도 평안하지 못하다면...

지난주, 미국 대부분의 뉴스 채널들은 인종 문제를 둘러싼 보도와 토론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온 한 후보가 백인 극우단체인 KKK의 지지 선언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과거에도 KKK는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명서가 나오기가 무섭게 해당 후보는 그들의 지지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었습니다. 그만큼 이 단체가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지향하는 국수적이고 편협한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지지 선언을 받은 이 후보는 “모르겠다”라는 말로 대답함으로 자신의 입장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의 이 애매모호한 입장이 도화선이 되어, 지난 한 주 미국은 인종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지난주, 인종 문제를 둘러싼 과열된 토론과 보도를 지켜보며 하나 의아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토론에서 아시아 이민자들, 특히 한국 이민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토론을 주도해가는 목소리는 백인과 흑인들일 뿐 아시아계, 남미계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민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다른 소수 인종들에 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생각나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소수 인종 이민자들과 비교할 때,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는 이름표가 하나 더 붙어있습니다. 바로, ‘성공한 이민자’ ‘모델로 삼을 만한 소수 인종’(Model Minority)이라는 이름표가 그것입니다. 북부 뉴저지에 살며 우린 아시아계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을 꽤 오랫동안 보아왔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최고의 대학에 진학했고, 쉽게 가질 수 없는 훌륭한 직장을 가졌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사업에서도 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을 발휘하여 아주 훌륭한 사업체를 이루었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아시아계 이민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 이민자들이 이런 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에 사는 소수 인종 중, 우리는 소위 ‘잘 나가는’ 소수 인종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한 이민자, 모범적 소수 인종이 되다 보니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다른 소수 인종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곤 합니다. 미국에서 논쟁이 되는 거의 모든 사회 문제들은 항상 인종이라는 문제에 한 발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민, 가난, 고용, 교육, 주거 등 첨예한 사회 문제를 다룰 때 그 안에서 인종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충분히 토론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성공한 이민자, 모범적 소수 인종인 우리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종종 인종 문제와 그와 연관된 사회 문제가 불어질 때 그것을 마치 남의 일 보듯이 해왔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퍼거슨(Ferguson)을 비롯한 최근에 있었던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에 참여하는 아시아계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흑인의 목숨이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처절히 외치는 그 외침에도 우린 좀 무관심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감옥에 지나칠 정도로 흑인의 비중이 많다는 사실에도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아무 신경도 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마 아시아계 수감자가 가장 적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겠죠. 또한, 국경 근처에 억류되어있는 이민자들이 비인간적인 처사를 당했다 해도 남의 일 보듯 합니다. 심지어 뉴욕에 있는 한인 불법 체류자가 강제 추방을 당했다고 해도 별로 그것을 문제 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는 혹시 이것이 성공한 이민자, 모범적인 소수 인종으로서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가진 “무관심의 병”이 아닐까 심히 걱정됩니다. 세상엔 아직도 정의롭지 못한 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특히 다른 것도 아니고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편견과 부당함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같은 이민자, 소수 인종으로서 우리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혹시 우리가 이 “무관심의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책임 있게 자신과 자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먹고살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빼앗기고 있는 나의 이웃이 있다면, “나 혼자 먹고 살기 바빠 당신이 쓰러져감을 돌보지 못했다.”는 그 말은 과연 좋은 변명이 될 수 있을까요?

이즈음 되자 저는 예수님의 아흔아홉 마리 양의 비유를 설명한 박재순 목사의 설명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의 아흔아홉 마리 양의 비유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한 마리 양을 구하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버려두는 이 목자가 얼마나 현명치 못한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한 산수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선택, 더 이익이 되는 선택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하지만 한신 대학교 신학과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던 박재순 목사는 이 비유를 설명하며 이르기를, 이 비유는 우리 중에 한 마리 양이라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도 아직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비유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우리 중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사람, 부당하게 억압을 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머지 아흔아홉 사람이 누리는 평화도 실상 거짓 평화, 금방이라도 깨어질 수 있는 헛된 평화를 것이죠.

최근 벌어지는 인종 문제를 보며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우리는 솔직히 앉아 이 질문을 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이 평화는 정말 참된 것인가? 내가 평화를 누림으로 남의 평화를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평화를 누리는 이 순간에도 내 주위엔 이 평화를 갈망만 한 채 쓰러져가는 이웃은 없는가?”

모든 양들이 그리스도 안에 평화를 누릴 때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 세상, 그 푸른 들판 위에 사는 ‘똑같은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한명선 목사, 요벨한인연합감리교회, NJ
올린날: 2016년 3월 29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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