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어떤 이들은 할로윈이라고 분주하고, 또 어떤 이들은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는 국경 도시인 텍사스 주 엘파소(El Paso)시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미국과 멕시코를 나누는 높다란 벽에 가로막힌 두 나라 사이에는 리오그란데(Rio Grande)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수백 명이 양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국경에 가로막혀 오랫동안 가족과 만나지 못한 멕시코 사람들이었습니다. 멕시코 쪽에서 온 사람들은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해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미국을 방문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 쪽에서 온 사람들은 서류 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들로 가족이 있는 멕시코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국경경비대가 신호를 보내자 양쪽에 선 사람들은 일제히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은 흐르지 않지만, 진흙과 쓰레기가 가득한 바닥을 드러낸 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기쁨에 젖은 이들에게 바닥이 지저분한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경경비대는 이들을 구분하고자 미국 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파란색 티셔츠를, 멕시코 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하얀색 티셔츠를 입히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일순간에 뒤엉켰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은 서로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십수 년째 못 본 가족을 만나기 위해 700마일을 달려왔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만났고, 형제와 자매들이 부둥켜안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을 껴안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헤어져 살아야 했던 부부가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나누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180초," 딱 3분이었습니다. 국경경비대의 신호에 따라 180초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행사는 이민자들의 권익 옹호 단체인 "인권을 위한 국경 네트워크(Border Network of Human Rights)"에서 주최하는 "장벽을 허물고 안아 주세요(Hugs Not Walls)"라는 캠페인의 하나로 열린 행사였습니다. 지난 8월 10일 열렸던 첫 번째 행사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행사였습니다. 비록 3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만남의 기쁨보다 헤어짐의 쓰라림이 더 큰 시간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감격했고 흥분했습니다. 가족을 만날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만남은 놀라운 선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행사에서 발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180초짜리 희망!" 짧은 시간이었지만 희망은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뿌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금세 자리를 잡았습니다. 희망은 그런 것입니다. 희망은 한 번도 완전한 보장과 완벽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불완전한 모습으로 '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과 더불어 다가옵니다. 그래서 희망의 사람은 항상 희망의 끝자락만 붙잡는 것처럼 보입니다. "180초"라는 짧은 시간도 겨우 희망의 끝자락을 붙잡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부도 정치인도 모두 희망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교회도 희망을 주지 못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러기에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희망은 길이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희망의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희망의 길을 내기에 인생의 길을 함부로 걷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서산대사의 시로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했다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시가 있습니다. "눈 덮인 들길 걸어갈 제/함부로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희망이 소중한 것은 작은 가능성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에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할 때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큰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엘리야가 본 손 만한 작은 구름은 바로 희망의 구름이었습니다.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하기에 오히려 희망을 찾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잡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희망이 주인공입니다!
글쓴이: 이창민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6년 11월 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