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말을 걸다.

욥의 고통, 무고하게 찾아온 고통이다. 그래서 고난이라 부른다. 욥으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큰 고난인 것이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까? 이런 경우에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가? 기도하여 해결이 되는가?
이렇게 죽은 예수님이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성경은 십자가의 고통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죽음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고통과 죽음에도 희망이 있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고난 이야기는 욥의 후편인 것처럼 보인다.

고통은 누가 뭐래도 아픔이다. 그런데 그 고통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 희망 속에 고통을 초월하는 답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욥의 고통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욥은 모르지만 ‘사심 없는 신앙’을 밝히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욥의 고통 속에는,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 무엇 때문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욥인가? 그 고통이 하필이면 남이 아닌 나에게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무고한 고통은 없다. 나만의 고통도 아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누구나 누군가를 위한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발생한 고통을 통하여 모르는 고통을 알아가는 것이다. 초월해 가는 것이다. 아직 누구를 위한 고통인지를 모를 뿐이다. 내가 잘못하여 발생한 고통이 아니라면.
(사순절에 욥기를 읽으며)

글쓴이: 이선영 목사, 덴버연합감리교회, CO
올린날: 2016년 2월 1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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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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