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1 미터만 앞으로 나와 있어도 지구의 모든 동식물들은 다 타 죽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1 미터만 뒤에 있어도 모든 것들이 다 얼어 죽습니다. 그러니까 태양과 지구는 가장 적절한 거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태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자기만의 적정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를 지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아무리 텔레비전이 좋아도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가서 시청하게 되면 시력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도 서로 간의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같은 방향이라고 좋아서 너무 붙게 되면 서로 부딪쳐서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슴도치들도 서로 간에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서로 반갑다고 너무 붙게 되면 서로를 자신의 가시로 찌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중한 사이인데도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낳게 됩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하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가게 되면, 지나치게 익숙해지고 격이 없어져서 서로를 막 대하게 됩니다. 반대로, 그런 것이 무섭다고 해서 멀리 거리를 두고 팔짱만 끼고 있다 보면, 서로 간의 이질감이 심해져서 평생 친해질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친구하고 사이 좋게 놀아라”하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사이 좋게”라는 말은 “사이”와 “좋게”라는 두 단어의 합성입니다. “사이”는 두 사람 간의 거리를 의미합니다. “좋게”라는 말은 원만한 관계를 지칭합니다. 즉, 서로 간의 거리를 잘 유지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친구 지간에도 좋은 거리를 유지해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적정거리를 잘 유지해야 건강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무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성도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거룩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되어 길거리에 버려지게 됩니다. 반대로, 세상과 등을 지고 신령하게만 살려고 해도 문제가 일어납니다. 무가치한 망령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사람은 사람 냄새가 나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주소는 “우주”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말처럼, 신앙인은 한 눈으로는 세상을 바라보고, 또 다른 한 눈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골고루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는 적정거리가 있습니다. 왕과 신하 사이에도 거리가 있고, 친밀한 부부 지간이라도 거리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그리고 목사와 성도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적정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를 무시하게 되면 항상 후회하는 일이 생깁니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너무 엄하게 되면 남처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반대로 너무 가까이 하면 손주가 버릇이 나빠져서 나중에는 할아버지의 수염을 뽑고 상투를 잡아 흔들게 됩니다. 항상 적정거리를 간파하고 그것을 함부로 뛰어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GA
올린날: 2015년 7월 1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