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

말년에 이집트 왕을 만난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내 나그네 길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요.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험악한 세월이었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백삼십의 해가 짧다고 말한 야곱의 여정. 어쩌면 그가 말한 대로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기에 그리 짧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주마등처럼 지나간 세월을 바라보던 야곱에게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영화에  연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이 결국은 나그네의 길일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어딘가에 정착하여 사는 이들이 아닙니다. 유목민처럼 늘 떠돌아다니는 삶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어딘가에 눌러 앉아 무언가를 소유하고픈 욕망을 누구나 다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삶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늘 그대로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는 쥐고 있는 것을 놓아 주어야 새로운 것을 손아귀에 쥘 수 있습니다. 때로는 들고 있는 것을 내려 놓아야 비로소 다른 것을 품에 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어느 새 우리 삶의 행로가 새롭게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별과 떠남이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전제가 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나그네 길에 비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야곱이 현실적 욕망이나 집착이 궁극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길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그네가 정처 없이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정착이나 그 어떠한 소유욕도 주지 못하는 커다란 기쁨 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에서 믿는 이들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규정한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세상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다시 말해 세상의 욕망과 이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어진 삶을 물 흐르듯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자주 들어서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세상의 그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집착과 욕망 때문에 수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땅과 재물에 대한 욕망을 안고 살았던 야곱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온통 험악하고 궂은 일 뿐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자기가 살아온 애욕의 세월은 그저 궂은 길일 뿐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머물 곳은 세상의 그 어떠한 욕구나 갈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그네들이어야 합니다. 진리요 생명의 길인 그리스도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진정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서 우리가 지나온 인생의 여정이 참으로 험악한 것이 아니라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글쓴이: 권혁인 목사, 버클리한인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5년 4월 28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개체교회
물고기와 빵 모자이크. 오병이어 기적의 교회, 벳사이다 지역의 타브하. 사진, 야엘 알레프 2007

밥상 공동체에서 성찬 공동체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야기된 현 상황을 생활신앙을 통해 이겨낼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성찬 공동체이다.
사회적 관심
정희수 감독이 2020년 6월 25일 한국전쟁 70주년 평화기도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평화를 이루기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따라서 이제 더욱 <평화와 화해의 일>을 행함으로 “십자가 따라 가는 제자, 십자가 지고 사는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사회적 관심
21대 총선에 나선 기독자유통일당이 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여운송, 뉴스앤조이.

21대 총선과 광화문 기독교

광화문의 기독교는 성서에 면면히 흐르고, 한국 기독교 역사 내면에 흐르는 맑은 영성의 줄기와도 아주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