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휴 형을 추억하며

이재형 목사, 사진 제공, 이재형 목사.이재형 목사, 사진 제공, 이재형 목사.

달포 전 한상휴 목사님으로부터 그가 개척한 필리핀 한인연합교회 50주년 행사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5월 초 한 목사님의 아내인 조명지 목사님이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필리핀에서 병에 걸려 돌아온 우리 목사님이 이상해졌어요. 소파에 앉아 말도 안 하고 뭘 먹지도 않아요. 5 년 전 돌아가신 박선용 목사님 사모님 전화번호를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이런 행동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요.”

그다음 주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는 다시 조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박선용 목사님 사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끄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차를 돌려 박 사모님 댁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는 박 사모님에게 저의 전화기를 건넸습니다.

조명지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박 목사님도 돌아가시기 전에 곡기를 끊으셨나요?”

대충 그런 질문과 답이 오갔고, 며칠 후 수요일, 다시 조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전 12 시 반에 우리 목사님이 돌아가셨어요.”

한상휴 형이 귀천했다는 소식을 듣자, 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모래 둔덕을 넘어(Crossing the bar)>가 생각났습니다.

해지고 저녁별 뜰 때
나를 부르는 분명한 소리 들었네!
내가 바다로 나갈 때
모래 둔덕이 울지 않길 빌며,

깊은 바다에서 들어온 밀물이
다시 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물살 가득해 소리도 거품도 없이
잠자듯 고요하길 비네.

황혼에 저녁 종소리 들리고,
그러곤 어둠이 내리네!
내가 배에 오를 때,
이별로 슬퍼하지 않길 비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파도가 나를 실어 멀리 보낼지라도
내가 저 모래 둔덕을 넘으면,
나를 인도하실 분을 뵙게 되리라.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날저날, 알프레드 테니슨/모래 둔덕을 넘어)

나의 신학대학 8년 선배인 상휴 형을 알게 된 것은 1985년 형의 57학번 동기들과 애틀랜타에서 가진 모임에서입니다.

그 당시 애틀랜타에는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박성용, 최원택, 김관련, 박성상 형들이 애틀랜타한인교회와 에모리대학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었지요.

상휴 형은 그들 중 후발 주자였는데, 당시 형은 필리핀에서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협성대학에서 구약학 교수와 교목으로 섬기다 에모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 상휴 형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습니다. 기골이 장대했고, 통뼈에 키다리! 그리고 씨익하고 웃는 일품 미소가 인상적이었지요. 우리는 한국인 특유의 지연과 학연을 통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고향이 같은 충청도라서 이미 절반은 통과한 셈이었고, 벽은 금방 허물어져 가까워졌습니다.

형의 고향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대천입니다. 형은 대천감리교회의 충성스러운 한인수 권사님의 아드님인데, 후에 그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형과 아버님이 똑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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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충청도 특유의 어눌한 말투를 가졌지만,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글쎄!! 그래요! 그래 봅시다!”라고 말하던 흡인력이 강한 스펀지 같은 사람이었지요. 그렇다고 흐물흐물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언중유골이라고, 변죽을 울리면서도 뼈 있는 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성품의 소유자였고, 곁에서 지켜본 형의 인내심은 그저 경이롭기만 했습니다.

2000년대에 형은 한인연합감리교회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섬겼고, 저도 형을 따라 일을 거들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일주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주일, 몽골에서 이 주일, 캐나다 재스퍼에서 일주일 등등, 그러고 보니 형과 함께 동숙하며 지낼 기회가 많았습니다. 보통 인연은 아니었지요. 일생에 한 달 반을 함께 숙식한 사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마도 형과 저의 사이는 보통을 뛰어넘는 특별한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틀랜타의 57학번 형들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소풍 기간이 길었지만, 85세에 귀천하신 상휴 형! 두 달만 더 있으면 생신인데! 버릇없는 아우가 형의 평소 보여주시던 일상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저는 형의 소탈함에 반했었지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시카고 근교 애스베리 연합감리교회 목회협력위원회에 선보이러 가던 날, 형은 평상복을 입고 초라한 차림으로 가시려다가 제게 들키셨지요. 저는 그때 제 와이셔츠와 명품(?) 넥타이를 벗어 드리고는 형에게 야단을 쳤었습니다.

그때 형은 저에게 “이 목사! 나는 이렇게 좋은 넥타이는 생전 처음이야.”라고 하시면서, “참, 미안해요!”라고 하셨지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그날 저녁 참으로 저 자신에게 부끄러웠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 명품 넥타이와 흰 와이셔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주님 앞에는 소탈하고 진솔한 형 같은 모습이 최고지요.

저는 형의 인내심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첫 목회지였던 강원도 선유지리부터, 교동, 고양, 마닐라에서 목회하시며, 극심한 가난과 가족의 질환으로 고난을 겪으면서도 인고하셨던 목회담을 나누었던 몽골의 밤하늘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물론, 오늘을 사는 후배 목회자들의 삶의 정황도 녹록지 않지만, 선배들의 성미(誠米) 몇 되의 사례비와 가족의 치료 가망 없는 병마와의 전쟁에 비할 수 있겠나요? 형의 대단한 인내심을 존경합니다.

저는 형의 충성스러운 목회 철학을 알리고 싶습니다.

전공하신 성서신학을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쉽게 알리고 적용할까를 늘 고민하셨지요?

끊임없는 연구와 구약 연구논문을 꾸준히 쓰시던 형을 저는 기억합니다. 정말 성실한 학자셨지요.

가끔 전화할 때마다, “목사는 진실해야 해!”라고 하시던 말씀도 기억합니다.

그래요! 믿음이 있으면 진실하고, 진실하면 충성스러워지겠지요.

형은 행복한 분이세요. 형의 레가시(legacy)가 계속되잖아요. 사모님이 목사님이시고, 두 따님 중 한 분도 목사님이며, 다른 한 분은 변호사이고요.

어제 저는 형의 제자들이 쓴 카톡을 읽어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인자하신”, “겸손하신”, “어지신”, “사랑이 많으신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썼더군요.

저는 이렇게 쓸게요.

착한 상휴 형! Not goodbye! But see you again!

형은 먼저 떠났지만, 저는 형을 잃지(lose) 않을 것입니다. 비록 제 입술이 작별을 고한다고 해도, 저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다시 봐요, 상휴 형!

이재형 목사는 디트로이트 중앙 한인연합감리교회를 비롯한 여러 이민 교회를 섬겼고, 미시간 연회 메트로폴리탄 지방감리사로 섬긴 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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