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복수가 아닌 평화를 찾고 있는 한 목사의 이야기

지난 5월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이 발표된 후 Myrna Bethke 목사는 이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묻고자 한밤중에 뉴질랜드의 한 미디어 매체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잠이 깼다.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뉴저지 Red Bank UMC를 담임하고 있는 Bethke 목사는 전 세계 TV 방송국과의 한국어, 일본어, 이태리어, 노르웨이어, 독일어, 중국어로 된 인터뷰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로 서랍이 가득하다.

911 사건 2,977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의 가족이면서 테러가 일어난 다음 해에 아프가니스탄으로 평화선교 여행을 갔던 화해 옹호자인 그녀의 견해를 미디어 매체들은 구하곤 했다.

하지만 Bethke 목사가 이번 빈라덴의 죽음으로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으리라 짐작했던 기자들은 실망했다. 911테러로 인해 가족을 잃었어도 평화를 위한 그녀의 평생 동안의 헌신적인 삶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탈레반이 사형을 집행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한 광장을 방문했을 때 빈라덴의 악행을 인정했지만, 뉴질랜드 기자에게 그날 밤, 그녀는 "난 어떤 이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녀는 보복보다는 화해를 선택했다.

테러현장(Ground Zero)에 봉헌

54세의 Bethke 목사와 오르간 연주가인 그녀의 남편 Drew Burrus는 돌아오는 주일에 열리는 911 희생자 가족을 위한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인데, 그녀는 첫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참석해 왔었다. 그녀의 교회에 그녀를 대신할 초청 설교자는 이미 여러 달 전에 정해졌다.

제비 뽑기를 통해 올해에는 그녀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도록 선택된 가족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가 부르는 희생자들의 이름들 중에서 제일 끝으로 그녀의 남동생인 William Bethke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허드슨 강에서 햇빛이 밝게 반사할 때면 그날 아침 하늘이 얼마나 파랬는지 잊을 수가 없다. 10월이면 37살이 되었을 그녀의 동생은 세계무역박람회 북쪽 건물 95층에 위치하고 있던 자문회사인 Marsh & McLennan의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American Airline 11기가 오전 8시 46분 북쪽 건물의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한 이후, Myrna Bethke 목사는 자신의 컴퓨터에서 이 엄청난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자기 동생이 그 해 초 뉴저지 프린스톤의 회사에서 맨하튼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Billy가 지금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족들 어느 누구도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슬픔에 잠긴 교회와 그 지역사회를 위해 그 당시 섬기고 있던 뉴저지의 Freehold First UMC 교회 문을 열었다.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바빌론에서 망명생활로 억압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 세기 전에 썼던 시편 137편과 같은 분노와 애통함이 담겨 있는 시편을 함께 읽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노와 모든 감정들을 다스릴 수 있는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예배 맥락에서 "분노를 표출하도록 놔두는 것"이 옳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Bethke 목사는 그때를 회상했다. "그 다음날 저녁, 형식을 갖춘 예배에서 그들은 대신 치유 과정의 시작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유법을 찾아

한 명의 여자 형제와 다른 두 남자 형제로 구성된 그녀의 가족은 이 비극을 감당해 낼 다른 방도를 찾았지만, Bill의 미망인 Valerie와의 연락은 결국 끊어졌다. "그녀의 극복 방법은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Bethke는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인 Marie는 웃음의 능력에 의한 치유법을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워크숍을 진행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2년 전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녀의 아버지 Brud는 아내와 함께 붙어 다녔다.

Bethke 목사에게 있어 911테러의 여파는 목회자로서 그녀가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공적으로 그녀의 관심과 신념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서로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서로의 이름과 이야기를 더 잘게 되어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일반화 하거나 전형화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진실을 실천하며 살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1166 Avenue of the Americas 건물에 연이은 작은 광장에 있는 묘비에는 William Bethke의 이름이 그의 복사된 서명 위로 새겨져 있다.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제 동생의 서명을 보는 것이었어요. 아주 감동적인 추모 방법이었어요"라고 그녀는 나중에 말했다.

하지만 동생 Bill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녀는 맨하탄을 결코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형제들과 4명의 가까운 사촌들이 뉴저지 해밀톤의 공립학교에 다녔을 때와 매년 8월이면 해변가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던 때를 기억한다.

아니면 성인이 된 Bill을 "전화 대화로도 컴퓨터를 통째로 다시 포맷할 수 있는" 기술 전문가로, "항상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누군가를 웃게 만들었던" 동생으로 기억할 것이다.

"아주 많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할 뿐이에요."

911 기념에 관한 기사들은 이곳에서 더 볼 수 있다.

글쓴이: Linda Bloom,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옮긴이: 김영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ykim@umcom.org
올린날: 2011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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