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는 두 가지 모습

"아무런 위험도 없이 안전하고 평탄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으면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좋다.' 주님과 누리는 교제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뒷짐지고 물러서서 그리스도와 가벼운 교제만 나누며 기계적으로 교회에 드나드는 그리스도인이 허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게 살면 안전할 뿐 아니라 세상의 미움을 사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신화를 좇는 기독교는 세상과 충돌할 일이 없다."(래디컬, p.223)

지난 주에 나누었던 [래디컬 투게더] 연속설교 중의 한 부분입니다. 말씀 자체도 강력한 도전의 내용이지만, 잠깐 졸거나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떠나는 것이 좋다' 라는 말만 들은 분은 오해를 할 만한 본문입니다. 가뜩이나 이래 저래 힘든데 이제는 떠나라니, 게다가 어떤 분은 그야말로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들었으면 "어, 이거 뭐지?" 섭섭한 마음까지 들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아니 믿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로, 아니 생각하지도 못한 일로 시험드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 "마귀 중에 가장 머리 좋은 놈이 '섭섭 마귀'랍니다" 하면 그냥 웃었는데, 가만보니 그렇게 틀린 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해하려고 하면, 그래서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될려고 하면, 정말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가고 그렇게 됩니다. 설교 중에 어느 목사가 "여러분,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였더니, 예배 후, 설교시간에 졸았던 아빠가 아내에게 "왜 목사님은 뜬금없이 주일아침에 '라면 세 개를 어떻게 삶아야 합니까?' 라고 묻지?" 했답니다. 부인이 안 졸아서 다행이지 정신없는 목사가 될 뻔 했습니다.

이번 새해 기도제목에 "목사님, 올 해는 정신 바짝 차리고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여 살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갔는데, 그 바로 뒤에 "목사님도 그러시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 때문에 다시 정신 차리게 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가만보니, 신앙생활이나 섬김은 일의 종류나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고 시간을 많이 쏟아도 사역은 그 자체로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는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분간이 안 되고 헷갈리면서 부터입니다.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이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란 의미일 것입니다. 이것만 분별이 되면, 즉 귀와 입만 할례를 받으면 섬김이나 사역은 그 자체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더욱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우리가 섭섭하여 시험에 드는 대부분의 이유가 아무 것이나 다 듣고, 아무 것이나 다 얘기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로 교회를 떠나게 하는 일이 생기고, 이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떠나 신앙까지 잃게 되는 일로 연결되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겉으로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결국 아이들에게나 일어날 일들이 어른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남입니다. 요즘같이 이메일이나 셀폰의 대중화로 인해, 그냥 아무 말이나 다 보내고, 또 다 받아야 하는 때는 더욱 분별이 필요합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카톡도 처음에는 재미로 하지만 지나치면 공해가 됩니다. 집단 이기주의와 편갈이가 가능해집니다. 어느순간 근거없는 정보를 전하는 메신저가 됩니다. 잘 듣고 잘 말해야 맑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떠나는 정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 때문입니다.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로 인해 결국 교회까지 떠나는 것과 뜬금없이 '선교'로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무슨 관계일까요? 그것은 바로 선교는 그 동안 잘못 듣고 잘못 말한 것을 청소하고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지는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합니다. 이상하게 잘못 듣고 잘못 얘기하는 분은 교회를 떠나 방황하는 삶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 방황을 종결하는 선교지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잠시 교회와 가정을 떠나 선교지로 가는 것은 겉으로는 그냥 며칠 휴가를 내고 떠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우리 삶의 현장이지만, 끊임없는 말과 들음으로 인해 오염되어 있는 공해지역입니다. 그런데 선교지는 말과 귀가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선교지는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무공해 지역입니다. 필요 없는 논쟁, 시시비비, 이런 저런 섭섭함, 오해, 갈등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할 수 없습니다. 멍들은 입과 귀를 무공해 지역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씻어내야 합니다.

올 한해, 어디든 가까이로 멀리로 잠시라도 '교회를 떠나' 선교지로 가십시오. 영양가 없는 얘기를 듣고 말함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시시한 삶이 아니라, 다시 주님의 일에 동참하고 맑은 영혼에로 다시 회복하기 위해 '교회를 떠나는' 위대한 삶을 사십시오.

글쓴이: 장찬영 목사, 남부플로리다한인연합감리교회 FL
올린날: 2013년 1월 16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관련

선교
정희수 감독이 샌디에고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한인목회강화협의회 2018년차 회의 개회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Photo by Thomas Kim, UMNS

가라 하신 깊은 곳

"깊은 곳, 그곳은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 알았던 모든 공식이 통하지 않는 변혁적인 도전 앞에서 주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정희수 감독의 한목협 2018년 연차회의 개회예배 설교전문.
사회적 관심
백두산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두손을 잡았다. KBS 화면 캡쳐

우리 시대에 평화? 한국의 진전을 축하하며

위스콘신 연회의 정희수 감독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요청하다. "Peace in Our Time" by Bishop Jung in English and Korean.
사회적 관심
Goodbye-reunion at Mt. Diamond in N. Korea in 2018. MBC TV screen capture.

희망의 시작 '작별 상봉(作別 相逢)'

'180초짜리 만남'이나 '작별 상봉'은 헤어짐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만남이 될 것이다.